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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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잡아보려 몸부림 친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레이스를 달리고 있는데 나는 아직 출발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방향성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진지한 고민 없이 나는 근심만 했고, 소신껏 살지 못하고 상황에 나를 맞추기만 했다. 그래놓고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렸다. 변명과 핑계를 도피처 삼았던 나는 시간이 부담스러워 어서 가기만을 바랐다. 나는 시간을 방기했고 그 댓가는 혹독했다. 다 늦은 나이에 나는 출발선 상에 다시 서야만 했다. 제대로 된 생을 살려면 지나간 시간 만큼의 시간을 내 삶에 재투자해야 했다. 무언가를 알만한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고통스런 일이었다. 마치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의미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은 무척 힘들었다.

 

시간이 세월로 덧입혀지자 그 힘들었던 시간의 힘으로 나는 다시 한 걸음씩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치 무언가를 다 이룬 사람처럼 지난 시간들을 잊고 지냈다. 어렴풋하다 못해 흔적도 찾기 어려워졌을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여덟 살 짜리 소녀 온조다. 온조의 아빠는 소방관으로 온조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불의의 사고로 급작스레 돌아가셨다. 온조는 그 일로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온조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시민단체서 일하는 엄마도 도울겸 또 아빠가 못다한 시간까지 잘 살아내겠다는 마음에 '시간을 파는 상점'이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한다. 닉네임을 크로노스로 정한 온조는 몇 가지 조항을 달아 스스로 선을 긋는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나 옳지 않은 일은 받지 않고, 의뢰인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줄 수 있는 일, 그리고 시간이 돈이 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일을 맡기로 한다.

 

온조는 '네곁에'란 의뢰인의 부탁으로 누군가가 훔쳐간 PMP를 제 자리로 되돌려 놓는 일을 비롯해, 자신의 할아버지와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해달라는 '강토'의 부탁들을 받는다. 온조는 덜덜 떨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책임감있고 성의있게 잘 처리한다. 그 일을 통해 혹여라도 생길지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막아내고, 붕괴된 한 가족의 아픔 또한 잘 보듬어 준다. 온조는 강토를 대신해 만나게 된 할아버지를 통해 크로노스의 시간이 어떻게 카이로스로 전환되는지를 배우게 된다. 시간을 통해 아픔이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은 온조에게도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온조는 그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단순히 시각에서 시각 사이의 거리가 아니었다.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 멋진 순간들의 연합이었다. 

 

온조는 그외에 천국의 배달부가 되기도 했고, 단짝 난주에게는 짝사랑 상대인 정이현에게 친구의 마음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도 되어주었다. 이런 마음 때문인지 온조의 인터넷 카페는 입소문을 타게 되고 온조는 불곰이란 별명을 가진 담임 선생님의 걱정도 듣는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온조는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엄마의 웃음이 잦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환경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엄마와 담임 선생님이 만나게 됐고, 엄마의 감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건만 온조의 감정은 매우 흔들린다. 

 

그 나이 때 아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들이 삽화와 같이 계속 이어진다.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힘들어하고, 끊임없이 우정을 갈구하며, 이성을 향한 추제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행복하고도 애가 타는 경험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성장통을 동반했지만 결국 아이들을 성장케 했고, 후에는 생을 지탱해 나갈 자양분으로 자신안에 놓여지는 선물이 되었다. 시간 안에서 아이들은 방황하고 좌절하며 힘들어했지만 그 시간은 결코 피해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크로노스가 있어야 카이로스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느슨했던 최근의 내 시간들이 떠올랐다. 일상의 작은 귀퉁이일 망정 의미로 변화시키 위해 애썼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나태하게 변한 내 모습만이 여기에 있었다. 이 책은 내 안일함을 비추고 있었다. 잊고 지냈던 시간을 수면에 뜨게하고는 내 부패한 마음을 들춰내어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소리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내게 남겨진 순간들을 잘 채워나가는 시험이 주어진 듯했다. 시험을 잘 준비한다면 내게 멋진 선물이 될 터이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룬다면 카이로스는 사라지고 크로노스만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선택은 내게 주어졌다. 내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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