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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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된 말보다 표현되지 않은 말이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애초에 말은 사람의 마음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했다. 이 책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었다. 가슴으로 쓴 책이기에 가슴으로 읽어야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끌며 이 책을 펴지 않아도 될만한 변명거리를 독백처럼 뱉어냈다. 굳이 불편한 상황에 나를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송경동의 이야기에 다 동조하지 않음에도 가슴이 쓰렸다.

 

상처 많은 글이었다. 분노와 울분, 때로는 집어삼킬 듯한 증오까지 내비치는 글이었다. 그러나 그렇기만 했다면 아마 나는 중간에서 책을 덮었을 것이다. 끝까지 읽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꾸역꾸역 밥을 입에 밀어넣듯 글을 읽었다. 참 슬픈 책이었다. 핏발 선 눈과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갈라지고 탁한 음성은 언제부터 그의 것이 되었을까? 왜 그는 속죄양처럼 타인의 짐을 짊어져야 했을까? 분명 그와 나는 동시대인이건만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괴리를 느꼈다. 세상 어디도 만만한 곳은  없지만 그가 맞닥뜨려야했던 세상은 마치 무법지대와 같은 이질감마저 불러왔다. 그런 세상에서 송경동이 살았다.

 

물론 내가 속했던 세상도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그곳에서도 일어났다.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그곳은 차가웠다. 다들 자기 일에 바빠 누군가를 돌보거나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20대의 나는 늘 가슴이 얼어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제작 여건은 자유로웠으나 그에 비례한 책임을 져야하는 곳이었다. 심적 부담과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업무 때문인지 그 직장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다른 곳보다 짧았다. 그래도 업무는 견딜만 했다. 더 어려운 것은 비교 대상들의 탁월함에서 오는 상대적 열등감과 열패감이었고,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을 다칠 때 였다.

 

그런 상황이 송경동에겐 일상처럼 반복되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늘 불화했던 부모님과 특히 시장터의 세치 처세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했던 아버지, 깨진 유리 파편처럼 날 선 가족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모멸감에 젖게 했다. 그랬건만 세상은 그를 품어주지 못하고 무지막지하게 대했다. 인격이 아닌 체력으로 그의 존재 가치를 인정했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를 악물고 참아도 하늘아래 보금자리 하나 얻기 힘들게 만들었다. 또한 함부로 대했으며 검게 탄 얼굴과 손톱 밑의 때가 부끄러워 버스 손잡이마저 잡지 못하는 쓰라린 소외감을 갖게 했다. 그럼에도 주저앉지 않고 송경동은 자신의 상처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타자기가 되어 열악한 노동 현장의 친구들을 위무해주었다. 

 

그러나 웃을 일보다 울 일이 더 많았다. 산재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김씨, 이씨, 박씨 형님의 죽음 앞에서 '남의 불행을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서 감사해야 하냐'며 송경동은 처절하게 절규해야만 했다. 이름을 놔둔 채 성씨로만 존재했던 그들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장의 모습은,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죽어도 되는 목숨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그만 나오라'는 통고를 사전고지도 없이, 어느날 아침 문자로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도 결코 남의 일일 수 없었다. 절망을 숙명인듯 받아들이며 체념하고 사는 것은 이미 지난 시간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송경동은 희망을 연대하며 노동자가 제대로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고 그 일에 자신을  밀어넣었다.  

 

송경동. 꿈꾸었기 때문에 잡혀갔고 꿈꾸었기 때문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그의 꿈이 내 꿈이라는 입에 발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의 과격한 투쟁구호에 다 동의하지도 않는다. 희망버스가 아니었다면 송경동이 누구인지도 나는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그가 가는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가 바랐던 '외뢰움보다 더 간절한 삶에 대한 예의와 청춘의 욕정보다 강했던 어떤 신뢰와 환대의 시간들'만은 내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삶 속에서 그것을 지키며 살고 싶다.

 

거칠고 고함 가득했던 책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히려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이곳에 있는 내가 저곳에 있는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 시밖에 없다. 이 시는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소통의 또 다른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쁘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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