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코끼리는 멜론을 좋아해! 푸른숲 작은 나무 16
하이리 슈트룹 글.그림,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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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새처럼 하늘을 나는 상상이 비행기를 출현케 했고, 말처럼 내달리는 상상이 자동차를 만들었다. 상상했을 때 지금껏 없었던 무언가가 현실로 나타났고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이런 놀라운 상상의 힘을 키워주는데 동화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놀랄텐가? 현실에서 상상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고, 시간과 공간이 임의로 바뀌며, 동물과 사람이 얘기하고 공감하는 그런 세계는 동화 속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동화는 경계와 구분을 헐고 각기 다른 것들을 통합하는 힘이 있다. 게다가 책을 읽고 나면 이미지가 남는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상상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레 접목된 동화책 한 권을 읽었다. 나치 정권 때 만들어진, 육십도 훨씬 넘은 나든 책이다. 출간 당시 여러 출판사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눈 밖에 난 작가의 책이라, 판매되지 못하고 이제서야 빛을 보게되었다. 내용이나 구성이 신선하고 코믹해서 시간차를 느끼지 못했다. 단순하지 않은 구성에, 교훈을 주되 스치듯 지나가는 점이 마음에 든다. 교훈이 확연히 드러나는 책은 왠지 모르게 부담스럽다. 책의 소재 또한 다양해 읽는 맛이 그만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정원사와 바다코끼리다. 추운 곳에서도 식물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원사가 멜론과 제비꽃 씨앗을 들고 북극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곳에서 정원사는 바다코끼리를 만나게 되고 서로 도와가며 지낸다. 바다코끼리는 맛있는 멜론과 제비꽃 향기에 흠뻑 빠졌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새 도시로 돌아간 정원사를 찾기로 한다. 사실 정원사라기보다는 멜론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인 셈이다. 도시로 가는 중에 바다코끼리는 별별 일을 다 당한다. 그러나 타고난 긍정성으로 힘든 일들을 이겨내고 쥐들의 도움으로 정원사를 만나게 된다.

 

 

한편 정원사는 바다코끼리를 다시 만나면서 자신이 받았던 오해를 풀게 된다. 정원사는 북극에 가기 전 어떤 교수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당시 그는 북극에서도 멜론과 제비꽃을 키울 수 있다고 했고, 교수는 따뜻한 곳에서만 자란다고 했다. 정원사는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북극에 갔었고, 자신의 바람대로 그곳에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워냈다. 그러나 증명할 길이 없었는데 바다코끼리가 오면서 오해가 풀리게 된 것이다. 멜론을 먹는 바다코끼리는 도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둘은 모인 돈으로 다시 북극으로 돌아간다.

 

이 책에 이들 외에도 다른 친구들이 등장한다. 남을 속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북극여우와 남을 도우려는 북극곰, 남을 해쳐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기꾼들과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쥐 한 마리와 그의 친구들이 있다. 다양한 만남 속에서 바다코끼리는 이용 당하기도 하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한 권의 동화책이 마치 잠언집같다. 게다가 사람과 동물, 육지와 바다, 도시와 한적한 곳을 가리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되어 아이들이 생각을 제한없이 펼칠 수 있게 한다. 요즘처럼 통합이 시대의 화두인 때에 시.공간과 종(種)을 넘나들며 나누고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사고를 유연하게 할 것인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폭소가 아닌 은근한 미소를 짓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생각할 때마다 웃게 만드는 것은 재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책 한 권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동화책이야말로 상상력을 키우는데 제일이라는 서두의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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