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의 꿈 푸른숲 역사 동화 5
배유안 지음, 허구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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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제발 죽지 마라."

 

전쟁으로 아비와 남편과 오라비를 잃은 여인은 어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어떤 대의 명분보다 아들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전쟁터에서 나간 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야했습니다. 어머니를 더이상 슬프게 할 순 없었거든요. 동화 '서라벌의 꿈'은 삼국 시대말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 부소라는 어린 소년의 눈으로 그 시대를 그려주는 책이랍니다. 부소는 후에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집에서 춘추공의 딸 고타소와 아들 법민을 보살피는 시종입니다. 부소의 아비는 부소가 여덟 살 때 낭비성전투에서 서른셋의 나이로 전사한 장수였습니다. 아비는 춘추공에게 풀밭같은 벗이었고 신라를 위해 명예로운 죽음을 당했지만, 그로 인해 부소는 늘 아비가 그리운 아이였 어머니는 그 후로 웃음을 잃었습니다.      

 

 

 

"전쟁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지만 신라를 지키려면 적과 싸워야지. 백제가 자꾸 쳐들어오는데 전쟁을 하지 않으면 신라가 망하고 말잖아."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고구려, 백제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하셨어."

 

후에 문무왕이 되는 법민의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이라면 넌더리가 났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전쟁은 협상이라는 말로는 끝낼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멸망이라는 말로 종지부를 찍을 때 까지 치뤄야하는 숙명적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아직은 고타소와 법민, 부소의 것이 아니었을 때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신분의 차이는 있었지만 법민은 부소를 형이라 불렀고 고타소는 부소와 예쁘게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부소는 법민에게 동생의 정을 느꼈고 고타소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순정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어미처럼 모전(양털로 두텁게 짠 양탄자) 기술자가 되어 춘추공네 집사로 살았으면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진골일망정 고타소와 법민은 왕족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왕족으로 태어났기에 그들에게 정해진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고타소는 왜를 상대로 큰 무역 상단을 운영하는 집안의 자제인 품석과 혼인을 합니다. 춘추공은 결혼과 함께 품석에게 대야성 성주라는 직책을 맡깁니다. 품석은 훤칠한 키에 잘 생기고 무예도 출중합니다. 그러나 성품은 얼굴에 미치지 못했던 듯 합니다. 품석은 부하의 아내를 빼앗았는 등 방종한 행실로 인심을 잃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백제에게 성을 빼앗기게 됩니다. 성의 함락으로 품석과 고타소는 목베임을 당하고 시신은 목이 없는 채로 거두어집니다. 부소가 전쟁터로 나가기 전 고타소는 부소에게 예쁜 새가 수놓아진 비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부소 또한 고타소에게 나무로 만든 새를 선물로 줍니다. 이것이 마지막일 줄 그누가 알았을까요?

 

한편 전쟁터에서 제대로 된 싸움도 못하고 고구려군에게 붙잡힌 부소는 동료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신라군의 비밀을 털어놓게 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배신자로 찍혀 신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어미에게만은 알려야겠다 싶어 부소는 아무도 몰래 집에 들리고 그 후 3년 여를 여기 저기 떠돌게 됩니다. 어미가 모전을 짜던 모습을 보고 자란지라 부소는 모전이 가장 편하게 느껴집니다. 부소는 단양의 모전 공방에 들어가고 거기서 정성을 다해 모전을 짭니다. 그래서 고타소의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소식은 고구려의 사신으로 가던 춘추공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예쁜 웃음과 고운 마음씨를 가진 고타소에게 닥친 참혹한 죽음에 부소는 눈물을 멈추지 못합니다. 살아 생전 고타소는 미덥고 안심이 된다며 고타소에게 풀밭같은 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말을 들었을 때 고타소는 기뻤습니다. 부소는 아비처럼 법민에게는 풀밭 같은 벗이 되고 싶었고 고타소 곁에는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바람은 영원히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부소에게 어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고통을 잊으려고 모전을 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을 채우려고 모전을 짠다구요.

 

"잊으면 가슴이 텅 비지 않겠니? 내겐 아버지 어머니도, 오라비도, 네 아버지도 모두 살아있다. 그분들과 행복했던 기억을 고운 문양으로 놓는 거란다."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세월이 힘을 준다고 하지 않더냐? 시간이 지나면 너도 그럴 수 있을 게다."

 

세월이 흐르면 부소도 어미처럼 그렇게 되겠지요? 참 아름답고 슬픈 동화를 읽었습니다.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릿하게 합니다.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해야하는 아이러니에 콧끝이 찡해집니다. 역사책에 이름도 적히지 못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갔을까요?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갔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삼국통일을 잘했니 못했니 하는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네요. 역사는 많은 말을 하지만 또 말이 없기도 하니까요. 단지 저는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이 있었네요. 그리고 오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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