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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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쓸 수 있지만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 있다. 매혹적이지만 음험하며 달콤하지만 치명적이어서, 한번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고 터지기 시작하면 핵폭탄 같은 말이 있다. 경이로울 만큼 유혹적인 이 금단의 언어는 제어장치도 불허하며, 지옥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가운 특성마저 가지고 있다. 은밀하지만 소란스럽고, 내밀하지만 요란한 이 말의 봉인을 풀겠다고 한 사람이 나섰다. 누가 봐도 샌님이고, 본인도 자신이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만한 주제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용기는 비가시적이며, 사랑의 밭에서만 배태된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운명을 선택한 남자. 이 시대의 금기어인 '욕망'이란 단어의 봉인을 풀고 그가 등장했다.

 

김두식. 전직 검사이자 변호사이며 현직 법대 교수이다. 그가 누구도 시도하기 주저하는 욕망이란 단어를 들고 소통의 자리로 나왔다. 조근조근 조심스럽게, 그러나 한치의 양보도 없이 김두식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독자들은 열광했다. 사람들 속에 내재한 욕망은 이미 오래전부터 끓어올랐으며 이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그가 총대를 메겠다며 성큼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차마 말하기 힘든 얘기를 김두식은 서슴없이 언급한다. 작정하고 얘기한다는 것은 단어에서 뿜어나오는 결기로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남녀 성기를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용기는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 제목으로도 드러난다. 욕망을 통해 문명은 출현했고, 욕망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번성했다. 그러니 욕망은 음지에 있어야 할 단어가 아니라, 양지로 나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발현되는 단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시도를 그는 매우 자연스럽고 세련된 방식으로 구사한다. 김두식은 먼저 자신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설명한다. 자신이 얼마나 속물적 근성의 사람이며, 너나 구별없이 욕망의 동일선상위에 우리가 올려져 있음을 직시하게 만든다. 김두식은 자기 과시와 타자로부터의 인정을 향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비난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욕망이 있음을 수긍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그래야 희생양을 양산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욕망이 건전한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우리안의 욕망은 타인에게 투사되어 우리를 비추게 된다. 그러나 미련한 우리는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임을 모르고 타인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남을 비난하고 감시하는 서슬 퍼런 시선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찌를 것이며, 이 악순환은 욕망을 수용할 때에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김두식은 욕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소년의 자취를 찾아내어 과거의 아쉬움을 달랠수 있도록 위로한다. 너무 일찍 철들어 버렸던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그 시간이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중년 남성의 내면에 남아있다 일러준다. 일명 '지랄총량의 법칙'은 소년들이 지랄이라 불리는 성적 에너지를 다 쓰지 못하고 묻어두었을 때 사라지지 않고 잠복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남성들이 불륜이라는 일탈에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이 쉽지 않은 상황을 그는 자신의 경험을 근간으로 설명하는데, 이름도 근사한 '정신 승리의 법칙'이다. 남이 큰 의미없이 하는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현실을 냉정히 파악해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변화하고, 변화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인정하라는 쿨한 법칙이다. 특히 그는 젊은이들의 은밀한 고민인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살의 소통에 주목하라 말한다. 몸의 욕망을 억압하지만 말고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쉽지는 않은 문제이다. 몸의 소통이 야기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되 행동에 따른 결과 또한 진지하게 생각한후 행동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김두식의 이야기 중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하바드대 교목이자 신학자였던 피터 고메즈 목사에 대한 언급이다.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고메즈 목사는 외부에 비쳐지기 원하는 이미지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진짜 자신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고메즈 목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했을 때 진짜 자신을 알 수 있다며, 존재 정체성의 확인을 자신의 얼굴을 통해 드러냈다. 김두식은 고메즈 목사를 힐난하며 질문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얼굴 보다 고메즈 목사의 얼굴에서 깊은 평안을 보았다며 또 다른 각도로 사유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했다.

 

40년이 넘도록 김두식은 계(戒)의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색(色)의 세계로 발을 넓히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탈에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인생을 충일하게 살기 위해선 자신안의 욕망을 인정하고 다독여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겸허하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욕망의 인정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을 때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성적 에너지를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욕망을 인정하는 길이 결국 나를 인정하는 길이었다. 욕망을 가진 나를 수용했을 때 내 제 2의 인생을 새롭고 충일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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