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읽기를 권함 - 우리시대 어느 간서치가 들려주는 책을 읽는 이유
김무곤 지음 / 더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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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았으면 싶은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내겐 책이다. 책은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하며 때론 친구로, 때론 스승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바란다한들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고 책도 예외가 될 순 없을 것 같다. e-book이 등장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런 추세로라면 전자책이 종이책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여진다. 아......

 

그 긴 시간의 폭염과 추위, 비바람과 습기를 견디고 연하여 사람들의 부주의함과 무관심을 포함한 지극한 애정까지, 그 모든 극단적 거리속에서도 책은 꿋꿋이 버티어왔다. 그런데 이제 책의 운명이 바람앞의 촛불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런 책의 운명이 이 책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비감어린 애정이 출산한 '종이책 읽기를 권함'은 내게도 아련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좀 더 빠르거나 늦더라도 그 언젠가, 역사의 한 장으로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예감이 김무곤을 부추켰고, 그 예감은 무언의 무게가 되어 나를 재촉케했다. 어서 이 책을 읽어 보라고.

 

약간의 우울함으로 시작한 책읽기였다. 한데 읽어갈 수록 내 감정의 신파적 요소는 책 읽기의 기쁨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맛볼 수 있는 종이책만의 매력이 김무곤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읽어달라 대놓고 주문했고, 책 내음을 즐기며 책의 감촉을 맛보라 청유했다. 그의 손길을 따라가 보았다. 종이책의 운명을 거슬러보려는 한 간서치의 회고조의 독백이나 한탄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책 속엔 기쁨만이 난무했다. 책 속에서 타자를 만날때의 기쁨, 그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기쁨, Reader가 Leader가 되는 기쁨,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 쓸모있는 사람을 만드는 기쁨, 책 읽기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쁨, 전문 서적이 주는 기쁨, 책 속에서 좋은 문장을 만나는 기쁨, 묵독의 고요를 즐기는 기쁨등.등. 이 책은 책 읽기가 축제이자 향연임을 전하고 있었다. 책 안에 이렇게도 많은 기쁨이 있었다니, 거기까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이렇게 감탄에 감탄을 연발할 즈음, 김무곤의 글이 갑자기 바뀌고 있었다. '당신은 책읽기가 마냥 즐겁기만 하냐'고. 언제는 책이라면 죽고 못살것 같더니 이 무슨 소리. 이리 시치미를 떼도 된단 말인가! 김무곤의 말은 계속된다. '책 읽을 때 우리는 세상과의 소통과 단절을 동시에 경험하며, 책 읽을 때 우리는 완전한 단독자로 세계와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에 책 읽기는 구원과 동시에 좌절이다.'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고, 믿었던 사람이 돌변한 느낌이었다. 그의 좌절이 즉각 나의 좌절로 다가왔다. 책에는 없는 것이 없었지만 내 것은 아니었고, 책 읽기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숙이 들어갔지만 책으로 말미암아 더 커져버린 세상을 향한 열망.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장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문제를 주었으니 답도 주겠지. 계속해 읽어갔다. 나는 김무곤의 이 말에서 답을 찾았다. '책 있는 곳은 다 학교다.' 결국 책을 통해 모순을 해결해나갈 뿐 아니라, 두 세계를 내 안에서 통합하고 각자의 자리도 만들어주어야 했다. 즉 나와 타자, 나와 세계는 별개이면서 하나가 되어야 했다.

 

유학 시절 책을 팔아 책을 샀던 간서치의 글은 책 자체의 느낌과, 의미와, 가치를 오롯이 담고 있었다. 책과 함께 살아온 김무곤의 반생이 아름다운 추억이자 소중한 선물로 다가왔다. 그 시간들이 오늘을 만들었을 거라는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함께 한 책 속에는 단지 책만 있지 않았으니까. 책으로 인해 만나게 됐던 시간이 있었고, 공간이 있었으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가운데는 독자인 나도 포함된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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