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결혼 - 어느 검사의 결혼 이야기
정원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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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녀는 아픔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났다. 그 위에 놓인 분자는 분노라는 이름이었고, 그들을 부부라는 운명 공동체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만남은 오로지 운명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운명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만날 일도, 더더군다나 함께 살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사였던 형을 조직폭력배에 의해 잃어야 했던 남자, 태윤. 그에게 형은 우상이자 모든 것이었다. 고지식하고 답답해서 싫은 소리를 했었어도 형만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 형이 있었기에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형이 실족사로 죽었단다. 자신 앞에 누워 있는 형에게 태윤은 다짐한다. 형을 이렇게 만든 자들을 결코 용서치 않겠다고.

 

혜나는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지금껏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고, 법 없이도 살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사람을 죽였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혜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혜나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혜나는 피켓을 들고 법원 청사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인다.

 

그런 혜나를 누군가 주시하고 있다. 저렇게 하다 무슨 일이 날텐데. 가만히 보고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검사도 실족사로 위장해 죽여버린 그들이 아니었던가. 검사인 태윤과 고등학교 3학년생인 혜나는 이렇게 만났다. 그리곤 일사천리로 혼인신고를 한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혜나를 법적으로 보호할 길이 없다.

 

이렇게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그들은 서로 바빠 얼굴을 마주 할 일이 별로 없다. 식사를 같이 한 적도 몇 번 없었으니까. 혜나는 태윤에게 지고 있는 신세가 너무나 미안하다. 잘 곳이 있고 먹을 것도 해결됐는데 용돈까지 준단다. 그럴 순 없다. 자신에게 들어가는 최소한도의 용돈은 자신이 벌어야한다. 그건 혜나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자니 죽을 맛이다. 그래도 해야했다. 아빠를 구하자면 자신이 법대를 가서 검사 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둠의 힘으로 낮에 기생하고 있는 조직폭력배는 곳곳에 자신들의 손을 뻗치고 있다. 삼선 국회의원이란 뺏지를 달고 있지만 그의 또다른 이름은 밤의 황제다. 김석환. 그에게 무서운 것이 있을까? 그와 패거리들이 혜나 아빠를 살인자로 몰아 사형수로 만들었고, 태준을 죽였으며, 적잖은 사람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과연 이들과의 싸움에서 태윤과 혜나가 이길 수 있을까?

 

 

한편 미모의 변호사 선영은 태윤바라기다. 화려한 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 뭐 하나 빠질 데 없는 재원이다. 그런데도 태윤에게 선영은 친구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선영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선영은 태윤에게 여자가 아니었다. 아직은 어리고 쪼그만 사내녀석 같지만 태윤의 가슴 한 구석에 혜나가 들어온지는 제법 됐고 생각외로 깊었다. 그에게 여자는 혜나 밖에 없다.

 

한 집 안에서 젊은 남녀가 지내는 건 행복한 고문이다. 어찌 되었건 명색이 부부인데 풋풋한 신혼은 커녕 변변한 데이트도 못해 봤다. 혜나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고, 그녀의 곁에 왠 멸치같은 녀석이 쫓아다닌다. 자신도 못가져본 시간을 다른 누군가와 보내고 있는 혜나가 신경 쓰인다. 혜나는 어느덧 숙녀가 되었다.

 

세월은 아픔도 무디게 한다던가. 그러나 무뎌지지 않는 아픔도 있고 잊어서 안되는 아픔도 있었다.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제 그 시간만 오면 되었다. 태윤은 그 시간을 위해 살았고, 만일 혜나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먼저 괴물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혜나를 지켜주리라 맹세하고 지나온 시간이었건만 돌이켜보니 오히려 혜나가 자신을 지켜준 시간이었다.

 

일망타진. 고통을 가슴으로 삭여온 그들에게 생이 준 선물이었다. 이제 저 하늘에 있는 형도 편히 웃을 수 있겠지. 혜나도, 누명을 벗은 장인도 앞으론 마음껏 만날 수 있다. 납덩이에 눌리고 어깨에 얹혀졌던 가슴속의 짐이 비로소 벗겨진다. 하늘이 푸르다.

 

아픔이란 공통분모를 가졌던 태윤과 혜나에게 이제는 사랑이 공통분모가 되었다. 분노란 분자는 어느새 행복으로 바뀌었고. 사랑이란 분모 위에 이제 또다른 분자가 태어날 것 같다. 쉿! 이건 비밀이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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