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아이들 -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 김영사 모던&클래식
한스 모라벡 지음, 이인식 해제, 박우석 옮김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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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환희에 가까운 기쁨이었다. 달라진 세상의 편리함은 생각만 해도 좋았고, 온갖 현대적 시설이 구비된 곳을 마음 껏 뛰노는 내 모습은 상상만이라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되고보니, 다가올 미래가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미래를 환상적으로 그리기엔 내가 산 세월이 있었고, 인간의 본성 또한 그럭저럭 알게 됐기에 유토피아는 그릴래야 그릴 수 없는 먼 그대가 되어버렸다. 크게 거슬러 갈 것도 없이 20세기 유럽의 역사만 봐도 미래는 환상적으로 그릴 수 없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19세기 유럽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20세기가 어떤 식으로 다가왔는지 우리는 이미 세계사를 통해 배웠다. 유럽의 역사야말로 미래는 행복이 아닌 절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했다. 그러니 미래를 어찌 알고 싶겠으며 왜 꿈꾸겠는가. 지혜의 임금 솔로몬도 아는 것이 많아지면 고민도 많다고 했다. 나는 미래가 딱히 알고 싶지 않았고 이 정도의 세상에 충분히 만족했다. 

 

그러나 때때로 미래가 궁금하긴 했는데, 바로 그 미래가 내 미래와 연결돼 있고 내 딸의 미래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미하게나마 미래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여러 통로 중, 영화의 힘을 빌려보았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미래는 대개의 경우 현실로 구현됐다. 영화 뿐 아니다. 영화의 모체가 되SF 소설의 경우 미래를 꽤 구체적으로 예언했다. 십 여년전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톰 크루즈가 투명한 플라스틱 판 같은 화면에 각종 자료들을 손으로 터치해 끌어오는 장면은 무척 신기하고도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가벼운 터치 하나로 자료가 화면에서 이리저리 움직여지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했다. 그런데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영화 상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내 삶에서 이뤄졌다. 터치폰의 등장이야말로 미래가 내 삶으로 내려온 날이었다.  

 

'마음의 아이들'은 앞으로 로봇이 우리의 후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이종교배나 인간복제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하물며 로봇이 우리의 후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결코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미래가 어찌 될런지 조금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방향을 조금만 부정적으로 틀면 인간이 로봇에게 종속되어 사는 모습도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에 의해 창조된 로봇에게 노예처럼 봉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한스 모라벡은 생각이 다른가보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로봇이 아닌 로보 사피엔스를 말한다. 그는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를 넘어서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로봇이 2050년 경에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때가 되면 호모 사피엔스의 자리는 로보 사피엔스에게 넘어가게 될 거라는 거다. 즉 지구의 주인이 인류가 아닌 로봇이 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덧붙여 한스 모라벡은 이 로봇이 인류의 정신적 자신이 담긴 소프트웨어를 송두리째 물려 받았기 때문에 자식이라 불릴 수 있다며 '마음의 아이'라 명명했다.

 

'조만간 기계가 아무런 도움 없이 자신의 유지, 생식, 개선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유식해 질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새로운 유전적 인계가 완성된다. 그 때가 되면 우리 문화는 인간의 생물학이 지니는 한계에서 벗어나 현재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 아닌, 더 유능한 지능형 기계가 전달의 책임을 맡는국면으로 진화할 것이다.' 21p 서문

 

인류가 자신의 문화적 변화에 의해 사라지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자손, 즉 로봇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세계를 한스 모라벡은 인류의 미래로 그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두뇌에서 컴퓨터로 옮겨지는 '마음 이전'을 그는 해방이라 표현하며, 마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으로부터 구출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로봇으로 이식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영원한 삶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새로운 몸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부딪치는 반론에 대해 패턴-동일성이라는 입장을 제시한다.

 

'몸-동일성은 한 인격체가 인간의 몸으로 구성된 물질에 의해 규정된다고 가정한다. 오직 신체 구성 물질의 연속성을 유지함으로써만 우리는 하나의 개별적 인격을 보존할 수 있다. 역으로 패턴-동일성은 한 인격, 예컨대 나 자신의 본질을 내 머리와 몸 안에 일어나는 패턴과 과정으로 정의하고, 그 과정을 지지해주는 기계로 정의하지 않는다. 만일 그 과정이 보존된다면, 나는 보존된다. 나머지는 젤리에 불과하다.' 203p  

 

그의 진화론적 생사관이 드러난다. 그는 우리 몸의 보존과 신체의 상실이 일상 생활의 정상적인 일부로 보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로봇으로 이전돼도 인류가 지속된다는 견해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그의 견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몇 년 뒤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1998년에 나온 이 책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고 로봇공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진지하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려주는 인류의 미래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고 두렵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따라가면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 같고 그 방향으로의 연구가 얼마나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당신은 한스 모라벡이 제시하는 미래가 마음에 드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싶은가? 책을 덮고 나니 한숨이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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