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의(定義)묻는 질문을 받으면 갑자기 머리가 띵해진다. 함축된 질문의 묵직함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답을 달 준비가 되었다면 나는 이미 관련 책을 읽었을 것이고, 준비가 안됐다면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맞다. 만약 답을 달 수준이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의미를 갖는 책이었다.

 

나는 무언가로 살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그래서 30대 초반 까지 나는 늘 허기를 느꼈다. 내 배는 너무 고팠다. 굳이 만 시간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최소한 어떤 분야를 기웃이라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이 글로 밥을 먹었다. 그 사실을 나는 늘 부끄러워했다. 그나마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괜찮은 경력이었지만 가장 부끄러운 경력이기도 했다. 당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녹화 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 그 직전까지 글을 쓰느라 거반 죽었다가 글만 넘기고나면 다시 살아나는 나를 혐오했다. 그 생명력이 내겐 견딜 수 없을 만큼 치욕적으로 느껴졌다. 참 달라지지 않았다. 늘 제 자리였다.

 

그 후 나름대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 나름이라는 기준은 얼마나 모호하고 어리석은가. 그런 지지부진한 삶을 살았다. 그래도 실날같이 쌓이는 것들이 있었다. 오로지 시간 때문이었다. 먼지를 뭉쳤더니 먼지도 힘이 되었다. 그 먼지같은 녀석들의 힘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근 10년을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몇 몇을 제외하고는 소설가들이 많이 낯설었다. 김애란의 소설을 작년에 읽어보았다. 그녀의 글이 내겐 편치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어떤 구질구질한 정서가 싫었던 것 같다. 교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보다 나은 것이 어느 하나라도 있다고 구질하다라는 말을 감히 붙일 수 있겠는가. 리뷰어의 대단한 권세다. 기가 막혀 웃고 만다.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좋았다. 소설가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고, 그들의 고충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과대 평가한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도 있었고, 자신을 감옥 속에 가둔 채 스스로에게 구형하는 작가도 있었다. 문학 안에서의 삶을 쿨하게 즐기는 작가도 있었고, 공부하듯이 파는 작가도 있었다. 다양성의 매력을 나는 글 안에서 즐겼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까지 덤으로 누렸다. 그 분이 알면 불같이 화를 낼지 아니면 기가 막혀 껄껄 웃을지 모르겠다. 열 일곱 분의 소설가 중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분들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종광, 심윤경, 윤성희는 그들의 조심스런 사유의 행태가 마음에 들었고, 전경린과 한창훈은 이름 석자만 알던 차여서 더 반가운 만남이 되었다. 지금껏 내게 함정임은 김소진의 아내였는데 이번에 누구의 아내가 아닌 소설가로 보이지 않는 대면을 하였다. 윤영수, 서하진, 이혜경은 같은 느낌과 다른 정서로 다가왔다. 나이들어도 그들만이 가지는 아우라가 멋졌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만남은 김경욱과 김훈과의 만남이었다. 김경욱의 글은 마치 한 편의 평론을 읽는 느낌이었다. 작가와 주인공과의 거리, 문학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 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잘 녹아져있었다. 권영민이 왜 그의 글을 맨 앞에 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전체 주제를 통괄하는 멋진 글이었다. 다른 글이 각론이라면 김경욱의 글은 총론이었다.

 

또한 김훈은 그만의 사유를 보여주었다.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인 것 같은데, 인칭의 문제를 화두로 자신의 소설론을 풀어냈다. 느낌은 많이 달랐지만 고종석이 떠올랐다. 그가 가진 유럽의 정서를 사랑했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김훈은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러웠다. 너무 좋은 물건은 때론 안팔리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그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또한 좋은 책이 아니라는 말도 아니다. 김훈이란 사람이 그렇다는 거다. 그의 고뇌가 전달됐다. 무겁게 태어난 사람은 무겁게 사는 법이다. 그를 위해 조용히 외쳐본다. '브라보'

 

세월이 흘렀다. 20대에 원치도 않는 직업으로 피를 흘리던 내 청춘도 사라지고 없다. 언젠가부터 흰머리가 나더니 이제는 볼도 쳐지고 주름은 온 얼굴을 덮고 있다. 글로 밥벌이를 시작했던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고자 싸워왔던 시간들이었다. 감히 작가는 꿈도 꾸지 않았고 나는 문학소녀 출신도 아니다. 왜 내 시작이 글로부터 됐어야 했는지에 대해 끝없는 자문을 했었다. 나만의 觀이 서지 않는다면 절대 글이란 걸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에 내 평생 다시는 글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지금 힘들어도 행복하다.

 

사진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