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다이도 다마키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의 특징은 사소하다 못해 하찮은 삶의 터럭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 간다는데 있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한 줌의 이야깃거리도 안되는 내용을 붙잡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들을 보면, 참 밥 먹고 할 일 없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책 전반에 나른하게 깃든 권태로움은 읽는 사람마저 힘이 쑥 빠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 지극히 일상적이며 따분하기까지 한 이야기들 속엔 감춰진 흡입력이 있다. 재미는 없는데 술술 읽혀지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저 너머에 어떤 뜻이 담겨있을 것 같은 그 의미심장함에 나는 때때로 포로가 되고만다.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는 일본인들의 일상적인 나날을 마치 사진 찍듯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 실제 일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런 류의 책이다.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WorldcupLove 전형적인 일본 시골의 풍경

 

이 책은 2003년도 아쿠다가와 상 수상작이다. 선정평은 이 책이 왜 수상작이 됐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 후보작 중 인간의 모습을 확실히 그려 낸 것은 다이도 다마키의 작품 하나였다고 해도 좋다. 주인공과 노년의 남성 쓰쿠모 씨의 연애에 떠도는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엔 비교할 수 없는 저력이 느껴진다."

 

이 책엔 3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는 이 책의 표제작이자 다이도 다마키의 색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경제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는 노인과 노처녀의 만남이 이야기의 주를 이룬다. 흔히 생각하기는 그들이 나이를 떠나 아름다운 우정을 쌓거나 나이를 초월한 사랑을 해야 하는데 이 이야기는 이도 저도 아니다. 그래서 더 실감난다. 삶이란 이러하다고 딱 잘라 규정할 수 없으니까. 그 모호함이 바로 삶이 가진 매력일 것이다.

 

화자인 나는 어릴 때 부터 아버지와 오빠가 호구로 알고 등을 친 쓰쿠모씨를 만나고 있다. 나 또한 그를 우습게 여긴다. 때론 돈을 빌리고 안 갚기도 한다. 쓰쿠모씨는 오빠가 신용보증을 부탁했을 때도 거절하지 않고 기쁘게 서준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쓰쿠모를 측은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러나 그는 좋은 기억을 선물해 주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쓰쿠모씨에게 함께 살자고 말한다. 쓰쿠모씨는 젊은 여자가 자신 곁에 있는게 좋은 가 보다. 옆에서 자고 있는 쓰쿠모씨의 머리를 본다. 그의 머리가 비어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나는 쓰쿠모씨의 머리를 만져준다. 그가 더 나이들면 좌약도 넣어줄 생각을 하며.

 

'M자형 이마' '민들레와 별똥'도 줄거리는 다르지만 흐르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중학교를 다니다만 이즈미는 집에서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녀는 일터에서 오가다 부딪친 스모 선수와 잠자리를 같이한다. 잠자리는 앞의 글이나 뒤의 글에도 한결같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 또한 일상처럼 작가는 그려낸다. 스모 선수도, 이즈미도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미성년자와의 성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스모 선수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또한 선배 선수의 밑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비대해진 몸 때문에 일을 보고도 뒷처리를 못하는 선배 선수의 뒤를 군소리 없이 닦아줘야 하는 그에게 도덕은 너무도 먼 얘기다. 주어진 삶이 자신의 생이기에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못한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스모 선수들이 좋아하는 우동 가게다.

 

'민들레와 별똥'은 마치 굴종적인 삶을 운명처럼 순순히 받아들이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분노가 흘러야 할텐데 분노는 보이지 않고 느슨한 지겨움만이 남아있다. 어릴 때부터 마리코라는 동급생에게 마치 하녀처럼 부림을 당하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그녀의 자장안에서 벗어나기로 마음 먹고 동경에 직장을 정한다. 마리코는 집요하리만큼 집착을 보였다. 동경으로의 입성도 대단한 해방은 아니었던 듯 나는 또 좋다 싫다를 말하지 못하고 직장 연하남에게 끌려다닌다. 마치 성격인 것처럼 굳어버린 수동과 피동적인 삶의 양태에 나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나였던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인의 삶을 거울로 비춘 것처럼 상세하게 그려냈다.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 일본 독자들의 공감을 꽤 샀다. 지금까지 소소하고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린 일본 소설들을 제법 읽었다. 그런데 담담함이 아닌 답답함으로 느껴진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재미있진 않았다. 그러나 삶이란 이름 앞에 놓여진 시간은 결코 화려하거나 변화무쌍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는 어디나 동일하지 싶다. 우리는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야 하고 지리함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달갑진 않지만 삶의 일상성을 지극히 일본식으로 구현해 낸 수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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