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읽기는 쉽고 쓰기는 어려운 책이 있다. 아니다. 읽기는 재미있고 쓰기는 어려운 책으로 바꿔야 맞다. 그런 책을 읽었다. 그런이라는 말을 최제훈의 책은 충족시켰다. 최제훈은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선보이더니 이번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네 편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픽스업 소설의 형태를 취했다. 읽을 때는 '대단하다'는 말로 고개까지 끄덕였지만 막상 쓰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난감하다.

 

 

이 책엔 인공이 딱히 없다. 등장 인물이 많아서다. 그러나 설사 누군가를 주인공이라 여긴다해도 그에게 고정되기는 힘들다. 주변부의 이야기가 주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보통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 알긴 했지만 최제훈은 독창성에 관한한 거의 독보적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여섯 번째 꿈'의 첫 장을 넘기며 나는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전작으로 최제훈의 글에 대한 감을 잡은데다, 추리소설의 전형인 밀실살인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차례로 죽어가는데 범인은 누군지 알 수 없고, 게다가 내부 분열로 서로에 대한 의혹은 증폭되니, 오로지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만 범인의 흔적을 좁혀갈 수 밖에 없다. 분명히 범인에 대한 정보는 나오는데 범인의 발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연쇄 살인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실버해머'의 열혈 회원 6명은 카페 주인장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모인 것이다. 이들을 초대한 카페 주인장의 모습은 계속 감감 무소식이다. 그러면 누가 범인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최제훈은 범인에 관심이 있지 않다. 생존자 둘은 이제 어떻게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가 보다, 어떻게 해야 살인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염려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침과 동시에 살인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자들.

 

 

살인 사건은 분명히 일어났는데 범인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죽은 자들은 꿈속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꿈을 꾼 자들이고, 그들은 이제 말이 없다. 살아있는 자들은 직감한다. 잠을 자면 안된다는 것을. 누가 악마일까? 카페의 주인장일까? 아니면 자신들 안의 살인 욕구일까? 최제훈은 이미 딜레마를 통해 답은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복수의 공식'에는 자그마치 5편의 이야기가 대기하고 있다. 5편의 이야기는 연쇄적이다. 1과 5가, 2와 4가 연결되어 있고, 3은 다른 중편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과 연결되어 있다.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틀어놓고 죽음을 미리 선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남자, 나비문신의 건달에게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생을 망친 남자, 샛강모텔에서 눈을 뜬 무명의 여배우와 킬러, 코스모스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자, 평생 되는 일 하나 없는 남자에게 끔찍한 우연으로 날아든 새로운 인생 등, 각각의 이야기 속에 담겨진 진실은 이야기하는 화자에 의해 조금씩 왜곡되고 변형되어 진짜를 가늠할 수 없는 상상의 늪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출판사 리뷰

 

이 이야기들 속에도 죽음은 짙게 깔려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제거해버리고 싶은 그 죽음이 결국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종착지이며, 생과 사를 나누는 결정적 요인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삶의 허망함을 최제훈은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상황이 너와 나라는 거리를 통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고 취급되는지를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자세히 보여준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자웅동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거리는 지극히 가까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최제훈은 사실화처럼 그려낸다.

 

 

세 번째 이야기는 'π'는 중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화자인 M은 번역자로 어느 날 부터 책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 갈수록 자신의 행위는 대담해 지고 그로 인해 언젠가부터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자신이 번역하는 책 속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 그로부터 발생된 이야기등 몇 개의 이야기가 혼재돼 미로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π'의 화자인 M은 '여섯번째 꿈'의 등장하는 폐쇄미로라는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 또한 자신의 책에 흔적을 남겼었다. 이야기를 다 읽고나도 결론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르겠다. 장자의 호접몽을 여기서 만나고 있다.

 

 

네 번째 이야기는 표제작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이다. 앞서 봤던 인물이나 상징이 여기서도 슬금슬금 나온다. 책 안의 책에 나오는 미미라는 삼류 배우는 '복수의 공식' 3에 나오는 여자를 연상케 한다. 살로메를 연기하는 미미는 한물 간 연극 배우다. 이제 나이도 적잖고 더 이상의 희망도 없이 연극판을 기웃거리다 잡은 역이 살로메다. 그녀에게도 팬이 있었다. 그녀가 모르는 팬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던 팬이라 불리는 스토커는 더 이상 아름답게 피어나지 않는 그녀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미미가 운전하는 차에 뛰어들어 그녀를 유인해 집으로 데려온 후, 성폭행하고 죽이려 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다. 한편 화자인 나는 중간 중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서관에 연체를 하게되면서 책을 빌려가지 못하게 된 이야기부터 망막 박리로 21일 동안 앞을 못보게 된 이야기까지.

 

 

최제훈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끝이면서 또 다른 시작이고, 개별적 이야기면서 연결되고 확장된다. 꿈에서 일어난 살인으로 사람이 죽고, 살인자가 피살체가 되며, 그 꿈을 조종하는 존재 또한 나인지 타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열린 결말은 과연 최제훈 답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고도 최제훈은 닫혀 있던 세상의 봉인을 풀어준다. 현실과 꿈이 만나며, 안과 밖이 하나 되고, 책 안의 책과 바깥의 책이 우리 몰래 나누는 밀약을 우리는 들을 수 있다. 놀라운 한 이야기꾼의 탄생을 통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