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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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태'가 났을 당시, 나는 한 신학대학원의 학생으로 적을 두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TV화면에는 쌍둥이 센터를 향해 돌진하는 비행기의 모습이 반복해 비춰지고 있었고,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내 눈과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부랴부랴 학교로 갔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사람들로 교정은 뒤숭숭했고,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수업종이 울리자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수업에 들어갔다. 첫 수업은 이 시대의 선지자라 불리는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사태에 대한 명확한 진단조차 아직 언론사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전문가의 논평보다 더 예리한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는 테러가 일상화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로 인해 우리는 불안감을 안고 살게 될 것이라 하셨다. 이제 테러는 근원지와 무관한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도심뿐 아니라 일반 아파트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하셨다.

 

 

몇 십년 후를 예견하신 그 교수님도 대단했지만, 내가 예전 일했던 곳에서도 비범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 같아도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딱 부러지게 해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깔렸다 할 정도였다. 언론고시라 불렸던 일터에서 뿐 아니라, 십여년 넘게 출석했던 교회도 반경 10미터 안에 서울의 국립대를 비롯, 내로라하는 직업과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이 곳만 벗어나면 가물에 콩나듯이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았던지, 덕분에 내 청춘은 시들은 과일 꼭지처럼 열등감에 쩔어 살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배울 것도 많고 좋은 기회였는데, 그 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듯 싶다.

 

 

인정하건 안하건 지금 세계는 인재 전쟁중이고, 그들의 리더쉽에 의해 세계 지도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세상인데 우리는 아직도 정치라는 거대 그물에 갇혀 참으로 소모적인 싸움을 길게도 하고 있다.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올해 우리는 중요한 정치적 기로에 서있는데, 감정의 폭증을 냉철한 논리와 가치관으로 얼마나 객관적으로 점검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향후 대권주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안철수에 대한 관심은 지대할 수 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지도자가 나라의 흥망성쇄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도자를 배출하는 토양인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언제나 저급이었고, 개중 나은 사람들이 몰려든 곳임에도 바닥의 정수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모습을 신문 지면에서 보자면 혹여 외국인이라도 볼까 부끄러웠다. 왜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물이 드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비록 손가락질을 할 망정 그 곳에서 지도자가 배출되니 이런 현실에 저절로 눈물을 머금게된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사태를 수습하고자 미친 듯이 날 뛸 정치판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정치판에서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야 되는 처지가 딱하지만, 그래도 굳이 하자면 당을 떠나 이제는 출중한 개인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런 희망적 인물의 한 명으로 안철수를 들 수 있겠다. 이 책은 2010년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서 그가 가진 강연회를 서울대에서 펴낸 것이다. 안철수에 관해서는 그간 펴온 책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여러 책에서 그가 가장 강조한 부분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실 책이라기 보다는 모음집의 성격에 가깝다. 이 강연회에서 안철수는 자신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결단의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크기는 그가 가진 생각의 크기라는 말을 절감한다. 만약 삶의 질을 따질 수 있다면 안철수 만큼 고도의 질과 밀도있는 삶을 과연 어느 누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였던 7년의 시간들과, 미국 유학 당시 이틀에 한 번 꼴로 잠을 잔 탓에 누적된 피로로 인해 심각한 지경에 처했을 만큼 그는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그는 여전히 덤덤하게 전한다.

 

 

사회적 기업을 꿈꾸었고, 사회적 기업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왔던 그는 현재, 교육의 최일선 현장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자신의 계획대로 된 적이 거의 없었던 경험을 살려 주어진 오늘에 늘 최선을 다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계획도 딱히 세우지 않는단다. 단지 논리적으로 점검하고 점검한 후 늘 후회없는 결정을 한다고 했다. 아직 어떤 발표도 없다. 주변 사람들만 바쁠 뿐이다. 그의 행보로만 볼 때 그는 아직까지는 믿음직스럽다. 도덕적으로도 하자가 없어 보인다. 지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성실도에 관한한 말이 필요 없고, 인간미도 좋아보인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다 못해 혐오까지 이르렀지만 나는 지금 이 책을 다각도로 읽는다. 비록 집에 있는 아줌마일망정 지도자가 될 재목을 찾아야하기에, 마치 시부모가 미래의 며느리감 보듯 조근조근 짚어가며 읽을 수 밖에 없다.

 

 

그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제발 그만은 '브루투스 너마저'가 되지 않길 바란다. 밉건 곱건 정치에 기댈수 밖에 없는 운명적 공동체안에 내가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있는 그대로 읽힐 수 없었던 내 첫 번째 책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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