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싸울 동지들이 다시 해방 강당에서 시계탑 방송을 재개하는 날까지 일시적으로 이 방송을 중지합니다."

- 1969. 1. 19. 동경대 야스다 강당, 전국학생 투쟁회의-



이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사람들의 의식도 달라졌다. 전공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랐던 청년들은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며, 그들은 체제에 편입돼 나른한 일상을 구가한다. 한때 그들의 피를 뜨겁게 했던 이념은 잠시 잠깐 타올랐던 마지막 불꽃의 찬란함이 되었고, 그들의 열정은 젊은 날의 홍역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이 이대로 잊혀져도 되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답변서이다.

'우리들의 7일 전쟁'은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의 실종으로 문을 연다. 종업식이 거행되던 날 1학년 2반 남학생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다.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도 아이들이 오지 않자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어른들만 몰랐을 뿐 아이들은 더 이상 말 잘 듣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세상의 부조리와 어른들의 위선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의 양태가 가출을 통해 한꺼번에 표출되었을 뿐이다.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보기로 한 아이들의 시간에 부모와 학교 당국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이들이 왜 해방구를 마련해 어른과의 전쟁을 선포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곳은 아이들의 해방구다. 아이들은 이미 한달 전부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그 작은 학생 운동의 중심엔 도루와 에이지가 있다. 도루와 에이지는 이 거사를 암암리에 진행하며 학생들을 모았다. 24명의 급우 중 체육 교사에게 벌을 받다 다친 친구와 종업식날 납치 된 친구를 제외하고 반의 모든 남학생이 참여했다. 여학생들을 배제한 이유는 이 거사가 불온한 이성간의 모임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폐업한 공장의 한 켠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시작한다. 도루의 지휘하에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평소에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마음 속의 상처들이 깊은 밤의 대화를 통해 이뤄지고 서로간의 벽은 허물어진다. 너무도 친구들을 몰랐다는 자각은 특히 에이지에게 큰 내면의 변화를 겪게 한다. 에이지는 모든 친구에게 각자만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타인을 인정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한편 아이들의 부모들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왜 집을 놔두고 공장에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지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사실을 잊은 부모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자신들의 뜻을 강요하고, 자신들의 바람을 아이들의 꿈에 투사한 부모의 행위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역으로 생각하게 한다. 위선과 겉발림, 자랑과 비굴이 혼재된 부모의 현주소는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이 부정하고 싶은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실망하고 등돌리는 것은 부모의 이그러진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그들 나름의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그룹은 제도권 학교의 선생님들이다.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어진다 생각하는 교장 선생의 교육관은 치졸하기까지 하다. 교장 선생의 비호하에 아이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체육 선생, 그리고 이 사태의 근원이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부모에게 있다는 생활지도 주임의 모습은 아이들이 왜 해방구를 만들어야만 했는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양호 선생의 헌신과 섬세한 배려는 아이들이 7일간의 전쟁을 지혜롭게 치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아직도 교육의 핵심적 권한과 영향력이 여전히 교사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7일간의 여정 속에 납치된 친구를 구해 주고, 노숙자 할아버지와도 교류하며 스스로를 키워간다. 아이들은 편견이 서로간의 거리를 얼마나 내는지 알게 됐으며,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서로를 풍성하게 채워주는지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시간은 결코 길수 없으며 어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도 냉정하게 인지하고는 7일간의 전쟁을 마무리한다.

책을 덮었다. 아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테고 아이들의 우려대로 한동안은 학교나 집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7일간의 전쟁을 통해 주체적으로 사는 법을 익혔고, 친구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자신들의 미니 방송국과 해방구를 통해 어른들에게는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었다. 니혼 대학의 전공투에 참여한 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도루의 부모는 아들을 통해 그 시간이 유효함을 느끼며, 자신들의 헌신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그간의 모든 아픔을 씻어낸다.

소다 오사무는 아이들의 도전을 어른과의 대결이라는 재미있는 구도로 가볍고 신나게 그려냈다. 숨겨져 있다 드러난 어른들의 추악함은 상상 이상이었지만 어린 친구들은 그에 함몰되지 않고 이겨내는 지혜를 보인다.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로 들려주는 해방구의 이야기는 이제 메아리가 된다. 이는 그 이야기가 전설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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