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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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자신도 모르게 묻어나는 성별 특징이 있다. 학습이나 관습 때문이 아닌 성의 차이 때문에 드러나는 특성들은 숨길래야 숨겨지지 않고 감출래야 감춰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김려령이다. 만약 그녀의 약력을 접하지 않고 '완득이'를 읽었다면 필연 남자 작가의 글로 알았으리라. 어디서 그런 작법을 익혔는지 그녀의 글은 능청스럽다. 미끼를 툭하고 던지며 모른 체 하는 그녀의 눙치는 솜씨 또한 만만찮다. 숨겨놓은 보따리를 풀 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녀의 글 재간은 여간해선 흉내내기 힘들다. 그녀도 자신의 그런 재능을 알고 있는지 책 여기저기에 슬쩍슬쩍 맛보기를 깔아둔다. 우리는 그녀가 안내해 주는 길로만 따라가면 된다. 궁시렁대며 따라가든지 아니면 얌전히 따라가든지 그건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완득이'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쓰여진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이 흔히 갖는 다분히 회고적인 색채와 간간이 보여지는 비장미,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지난 추억등이 이 책엔 없다. 통속적 스토리의 전개를 기대했다면 초장에 깨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로 얼개가 짜여져있다. 도시 빈민과 장애인, 국제 결혼과 이주 여성, 홀부모 가정등 문제적 상황으로 보여지는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그녀는 이런 위험한 선택을 했을까.

'완득이'에는 하나같이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엄마가 누군지도 모른채 8할을 시간의 이름으로만 키워진 천부적 쌈꾼 도완득. 생색내기를 밥 먹듯 하며 학생들보다 더 욕을 잘하는 조폭 담임 똥주 이동주 선생. 후반부나 돼서야 이름이 등장하는 완득이의 난쟁이 아버지 도정득. 외모만 충실한 말더듬이 가짜 삼촌 남민구. 입이 걸기론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동네 욕쟁이 아저씨 박두식.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완득이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완득이를 따라다니는 여자 친구 정윤하. 완득이를 커서야 만나게 되는 이름 모를 베트남 엄마등.

똥주 선생과 정윤하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삶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유쾌할 수 없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산뜻하리만치 가볍게 터치하는 김려령의 글 솜씨가 놀랍다. 김려령이 주인공으로 설정한 완득이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계 엄마를 부모로 둔 아이다.
완득이네 집은 다문화가정에 속하지만 엄마는 완득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 곁을 떠나버려 완득이는 엄마 얼굴도 본 적 없고 엄마에 대한 얘기도 들은 적 없으니 오히려 다문화가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편부 가정에 가깝다. 키 작은 어른인 완득이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살기 위해 카바레의 바람잡이를 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카바레가 콜라텍으로 전업하며 일자리를 잃게 된 아버지와 이웃 삼촌 남민구는 시골 장을 떠돌게 되고 홀로 남겨진 고등학생 완득이는 옆집 옥탑방에 사는 똥주 선생의 반갑지 않은 간섭하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런 완득이에게 어느날 사랑이 찾아온다.
눈치 하나로 세상을 살아온 전력과는 달리 완득이는 사랑에는 젬병이다. 정윤하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첫 날, 똥주 선생이 있는 구치소로 윤하를 데려가 함께 면회한 후 아르바이트 때문에 가야한다며 팽겨쳐 두고 가버린 완득이다. 사랑에 둔감한 완득이. 알아서 매를 번다. 이 일로 윤하는 완득이와 말을 안하고 완득이는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다. 글을 읽을 때 마다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그 순박하달지 어리버리하달지 한 남자주인공이 떠오른다. 남자들은 원래 그렇게 늦된가.

그 후 완득이는 똥주 선생이 임시 전도사로 있는 교회에서 윤하와 화해를 하게되고 윤하는 킥복싱대회를 앞둔 완득이의 매니저를 자청한다. 귀찮은 척 하지만 완득이의 기분은 매우 좋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행복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을 알게 된 윤하의 엄마는 가만 있을 수 없게 되고, 완득이를 찾아와 만나지 말아달라 간청한다. 자기는 뚱뚱한 애는 싫어한다며 완득이 알았다 한다. 비록 지기위해 나가는 대회였다지만 그 후부터 영 운동에 몰입이 안된다.

한편, 똥주 선생의 배려로 모자 상봉을 하게 된 완득이와 엄마는 간간이 만남을 이어간다. 틈 날 때 마다 싸오는 도시락이 알고 보니 아빠를 향한 엄마의 마음이었음을 완득이는 뒤늦게 알게 된다. 그 많던 눈치 이럴 땐 어디로 갔을까. 생계를 위해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던 아빠와 난닝구 삼촌은 더이상 함께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이별을 고한다. 삼촌의 자리가 의외로 컸던지 아빠는 힘들어하고, 부자 아버지 덕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똥주선생의 배려로 아빠는 똥주선생이 매입한 교회의 한 곳에 댄스 교습소를 연다.

이제 엄마도 집 근처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고, 윤하는 엄마의 감시를 피해 시간 되는대로 완득이를 만나며 종군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입시를 준비한다. 완득이에게 유일한 스승 같았던 킥복싱 관장은, 완득이의 정식 데뷔날 TKO패로 누워있는 완득이의 모습을 지켜본 후 원래 계획대로 강원도행을 택한다.

소설 '완득이'는 희망의 부재속에 사는 사람들이 좋은 만남을 가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런 만남으로 최종 목적지가 어떻게 달라질수 있는지를 그려주는 책이다. 김려령은 이 모습을 통해 결국 인간 안에서만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같은 공간, 다른 현실의 자리에 있었던 윤하와, 진정한 만남을 위해 자신을 낮춰버린 똥주 선생과의 조우는 더 이상 완득이를 외로움에 파묻히지 않게 했고,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며 양지를 향해 나가는 자리로 이끌게 되었다. 이제 완득이는 하루도 흘려보내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지만 평범한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은 것이다.

이런 교훈적 주제가 도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생생하고 감칠맛 나게 전달하는 김려령의 글 조리법 때문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묵직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김려령은 아무렇지 않은듯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무게에 눌릴만도 하련만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드물게 만나 보는 대형 여성 작가다. 물론 이 책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갑자기 등장하는 베트남 엄마와, 엄마가 아빠를 떠나게 된 직접적 이유는 개연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신파의 냄새도 물씬 풍긴다. 하지만 그 정도는 눈 감아 주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도 그녀가 풀게 될 이야기 보따리를 보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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