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정치학
아브람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S. 허먼 & 데이비드 페터슨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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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권리란 대등한 힘을 가진 상대들 사이에서만 들먹일 수 있을 뿐이다. 강한 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약한 자는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투키디데스-

대규모의 학살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유사 이래 인간이 자행해 왔던 학살은 부지기수였고, 인간의 역사는 살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성의 입구를 봉쇄해 성 안 사람들을 굶어죽게 하거나 불을 질러 아비규환을 만들거나 한 마을 전체를 도륙해 버리는 일도 있었다. 살륙의 광분이 휩쓸었던 때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떤 아픔도,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통절감이라도 느껴야 하건만 그런 기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살을 하고서도 이리 당당한 것은 위장된 명분의 정당성 때문이며 단순한 광기에 의해서라기보단 보이지 않는 손의 전략적 지원이 다각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살륙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배제되거나 증폭되며 대량 살상은 목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그리하여 이 시대는 영혼의 불감증도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학살의 정치학'은 학살의 현재적 상황과 이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그물망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전세계의 경찰 국가를 자임하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기치를 높이기 위해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노암 촘스키와 에드워드 S.허먼, 데이비드 페터슨은 상세하게 일러준다. 특히 이 책에서 3명의 공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행태에 언론이 직간접적으로 어떻게 관여되어 있으며 어떤 형태의 편향적 기사로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이다. 즉, 이 책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고발임과 동시에 그들의 행위를 교묘하게 덧칠하여 다른 이미지로 변조하고 방조한 언론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질타이다 .

현지 정세를 알 수 없는 일반인들이 가치 판단를 내릴 수 있는 실제적인 근거는 언론의 보도 자료이다. 그 보도 자료를 믿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 자료에 대한 암묵적 신뢰를 나타내며 이는 언론의 근본적 기능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편파 왜곡까지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이며 직권 남용이다.

그런 행태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언론사의 대주주가 기득권 부류에 속한 자들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이윤에 맞추어 기사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으며 세계 정세의 판도에 따라 정치적 편향성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이익에 맞춰 실리는 기사들은 사람들의 판단을 오도한다. 현재 미국내 미디어는 학살에 관한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사보다는 자국의 정책에 따라 취합하여 선택된 기사를 싣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이처럼 추악한 미디어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라 일러준다.

'학살의 정치학'은 건설적인 학살과 사악한 학살, 몇 가지 자비로운 학살과 가공의 학살, 이렇게 4 부류의 학살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학살을 나누는 기준은 전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이다. 따라서 살해된 사람의 수의 많고 적음은 별개의 문제로 치부되고, 중요한 것은 단 몇 천명이라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면 기사거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 기사는 과장과 왜곡을 거쳐 신문지면에 올려지게 되며 일거에 주목을 받는다. 학살 현장도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면 실리지만 살륙의 회오리 바람이 휩쓸고 간 현장도 도움이 되지 않으면 기사에 실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 설사 실린다 해도 몇 줄로 요약돼 실리며 기사로서의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미디어는 이제 미국의 신실한 대변인이 되어버렸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국제 역학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조명해 준다. 국제 질서의 수호라는 명분하에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유엔의 최대 지원국이란 힘을 동원해 유엔의 실질적 주인으로서 전세계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도 알려준다. 그리하여 이제 미국이 관여하지 않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유엔이 유엔다운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미국이 동의를 했을 때 뿐이다.

가치중립적이지 못한 기사는 기사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언론의 힘은 사실적인 보도와 진실의 추구에서 나오는 것이지 화려하게 치장된 거짓글로부터 기인할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을 언론인들이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언론은 변질되었고 그들의 눈에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인 죽은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별개의 종이 되어버렸다.

타국의 한낱으로 치부되는 이름없는 죽은 자를 향한 관심이 사라질 때 언론은 이미 중환자와 다름없게 된다. 만약 언론이 더 나아가 그들을 마치 없었던 사람인양 치부할 때 언론이 회생할 수 있는 길은 미로가 될지 모른다. 펜의 힘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이 얼마나 무섭고도 무거운 말인지 이 책은 내게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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