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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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십 대는 시의 시대였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시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해도 못하는 시를 읽었다. 한 시인의 시집이 마음에 들면 그 시인의 다른 시집을 샀다. 시를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읽었다. 시를 읽으면 없던 감성도 생길 것 같았고, 내 무지도 가려질 것 같았다. 당시 나는 글로 밥벌이를 하고 있었고 주위에는 쟁쟁한 글쟁이들이 많았다. 글로 밥을 먹는데 글이 안따라주니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 글이 금새 달라지지도 않았다. 금방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고. 나는 여전히 지지리도 글을 못 썼고 누구에게도 내 글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누가 내 글이라도 볼라치면 팔꿈치로 글을 가렸다. 부끄러워서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잘 쓰건 못 쓰건 밤을 새워 쓴 글이기에 쓰고 나면 한 편은 꼭 기념으로 간직했다.

군 생활을 혹독하게 한 남자들이 제대 후 그 쪽으로는 오줌도 안누겠다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내 심정도 그랬다. 예전 일터 쪽으로는 가고 싶지도 않았다. 설사 간다해도 멀리 둘러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배울 점은 많았지만 그 곳은 내가 버틸 수 있는 데가 아니었다. 엄마가 그만두라는 말만 했으면 나는 예전에 관두었을 것이다. 요만큼도 미련이 없었다. 천성적으로 느긋하지 못하고 안달복달에 노심초사형인 나는 그 곳에서의 스트레스로 알레르기에 걸려 꽤 오랜 시간 고생을 했다. 나는 사실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쪽으로 관심도 가져 본 적 없었고 그 쪽 일을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졸업 후 그런 쪽으로만 길이 열렸다. 그래서 꿈도 꿔 본 적이 없는 글을 쓰게 됐다. 얼마나 죽을 맛이었는지는 말로 다 못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보니 글 외에 딱히 잘하는 게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게 글 밖에 없었고 내놓을 만한 경력도 그 때의 경험 밖에 없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 직장을 관두고는 시와도 안녕을 고했다. 굳이 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아무래도 시는 편하지를않았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말을 읽는다는게 쉽지 않거니와 은유의 난무와도 친해지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어쩌다 한 두편씩 시를 접하면 반가운 마음이 들긴 했다. 그래서 전처럼은 아니지만 이후 조금씩 시를 읽었다. 한 때 불었던 시선집의 열풍 덕에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필두로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선집을 읽으며 시의 맛을 알게 됐다. 시인들의 삶과 이면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시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됐다. 특히 서정권의 시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또한 식민지 하의 아픔을 그린 이용악의 시는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그러다 문태준의 가재미를 만나게 되었다. 문태준은 2005년 가재미로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한 시인이었다는데 나는 올해서야 알게 됐다. 남들 다 아는 걸 나만 모르는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시집을 샀다. 유명하다니 가재미를 제일 먼저 펴기는 했지만 나머지 시까지 읽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기차 안에서 시집을 읽게 됐다. 참 좋았다. 일반인이 시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건 대개 좋다 싫다 정도인데 이 시집은 싫다고 말 할만한 시가 어디에도 없었다. 한편 한편이 좋았다. 향토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문태준의 시는 감각적으로도 탁월했고 감성도 깊었다. 언어를 중계하고 생각을 분절하는 문태준의 시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언어들의 쫄깃쫄깃한 느낌과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 게다가 그의 생각 또한 전방위적이었다. 와, 이런 사람도 있었다.

나는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사물과 대상을 주의 깊게 본 후 조심스레 해체하여 다시 구성하는 그의 시에는 여성 못지 않은 감수성과 섬세함이 들어있었다. 시를 읽는 동안 내 머리는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위 아래로 움직여졌다. '그래, 그렇게 표현했구나. 멋지다.' 이 말 밖에 달리 나올 말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시어는 신선하고 청량했으며 묵직하기도 했다. 그의 시를 읽노라면 그림이 그려졌다. 분산됨 없이 나른하고 적막한 상황 속에서 그가 그려내는 것은 고요함이었다. 수직적이고 복합적인 세상에서 수평적이고 평면적인 글로 시적인 힘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 지난한 작업을 문태준은 명쾌하게 수행했다.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 '수련'

내가 눈 속으로 아주 다 들어갈 때까지 '나는 돌아가 惡童처럼'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바깥'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극빈'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극빈2'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자루' 

차고 어두운 물이 미지근하고 환한 물을 밀어내고 있다                        '묽다'



하루를 만지작만지작하였다.              '그맘때에는' 

'가재미'에 실린 67편의 시는 그의 시 세계가 지향하는 바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맛깔스런 시어들로 보는 내내 입에 침이 고였다. 이 말들을 반죽하고 치는 동안 그는 더 말랑말랑해지고 더 강해졌으며 자신으로 들어갔고 타인 속을 유영했다. 홀로된 자의 아픔은 문태준의 아픔이 되어 오롯이 피어났고, 자루의 슬픈 무게는 그가 함께 지는 생의 무게로 전환돼 숨을 나누었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자유를 줌으로 그 또한 거칠 것이 없는 자유인이 됐고, 가슴 속에 슬픈 샘 하나를 간직하면서 그의 시는 우물이 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 있지만 언젠가 한곳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쓸쓸한 운명을 현재 살고 있으며, 자신 안에도 때로는 새 것을 묵은 것으로 만드는 부패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도 보여 주고 있다. 더 이상 그가 보여줄 것이 있을까?   

문태준에 대한 기대는 시를 통해 조그만 도움이라도 얻고자 했던 내 이십대와 맞물려 있다. 나는 그처럼 생각할 수도 없고, 그와 같은 언어의 직조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에 있다. 그러므로 내 바람을 다 담아 그의 어깨에 올려 놓을 작정이다. 그런 후 주의깊게 그를 응시할 예정이다. 내 눈에는 그를 향한 기대와 나 자신을 향한 기대가 분명히 묻어 있을 터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내적 자아를 확대하여 도저하게 낮아지며 더 깊고 충만한 곳으로 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의 오솔길을 저 멀리서 지켜 볼 보잘 것 없는 친구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서도. 나아가 그의 시를 기다리는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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