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 이태석 신부 이야기
우광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시대의 사랑은 참으로 감각적이고 세련됐다. 예전 같으면 부모에게도 낯 간지러워 못했던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요즘은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사랑이란 말은 이제 흔한 말이다. 사랑의 남발이란 생각이 들만큼 세상은 사랑 얘기로 넘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시대의 사랑이 가장 작고 초라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도처에서 사랑을 외치지만 사랑의 원형을 보기는 더 어려워졌고 우리는 사랑으로부터 멀리와 버렸음을 느끼고 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타적인데 우리는 태생적으로 이기적이며, 이 시대의 정신이 희생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멀리 있다.

그런 이 시대에 자신을 기꺼이 던져 많은 사람에게 깊은 사랑을 남긴 후 홀연히 떠난 사람이 있다. '울지마, 톤즈'로 유명한 故 이태석 신부가 바로 그이다. 이 신부는 작년 1월 마흔 여덟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 한 암환자 시설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작년에 TV 화면에서 보았다. 당시 그가 부른 노래는 '열애'라는 곡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신께 드린 후 그 삶을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감당한 신부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말기 암으로 나타났다. 남을 돌본 것처럼 자신을 돌봤다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노래는 절절하지 않았음에도 가슴 저 밑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것은 신이었을까? 아니면 아프리카에 두고 온 자식같은 아이들이었을까? 아니 아마 둘 다 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삶을 보고 들으며 통곡과 같은 울음을 울었다.

그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는 소설가 최인호의 주도하에 카톨릭 언론사에 몸 담고 있는 우광호에 의해 쓰여졌다. 알려진 이야기도 있고 이 책에서 처음 밝혀지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한결 같이 전하는 것은, 인간 이태석이다. 이 책의 미덕은 한 인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지 않는데 있다. 미화가 주는 거부감이 이 책 속엔 없다. 우리를 전기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그런 기름기를 우광호는 걷워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인간의 생을 다루고 있지만 묵상집이나 에세이집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책에 실린 사진 작가 양현모의 사진은 인간과 자연이 따로 이면서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글도, 사진도 지금은 세상에 없는 이 신부의 삶을 그려내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름답다'이다.

'울지마 톤즈'의 제작진은 서두에서 그 프로그램의 목적이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함에 있다고 밝혔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니. 한 인간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세상은 그에게 바쳤다. 종교인이 욕을 먹는 이 시대에 그가 뿌리고 간 사랑의 씨앗은 세상이 종교에 받은 상처를 조금씩 씻어내고 있었다. 세상이 바랐던 것을 알면서도 못한 우리의, 그리고 나의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누군들 자신이 귀하지 않으며 누군들 자신의 생이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 생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버린 후 신의 사랑과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채운 이 신부의 삶은 고통의 한 가운데서 신음하던 아프리카의 영혼들에게 커다란 쉼을 주었다. 이 신부는 특히 누구보다 힘든 자리에 있던 한센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로했다. 인간으로 먹지 못한 슬픔도 크지만, 버림받고 멸시당한 아픔이 그보다 못하다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랑도 표피적이고 찰나적으로 변해 버린 이 시대에 그가 남기고 간 선물은 아직도 변함없이 유효한 사랑의 위대한 가치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가 사랑으로 댄 청진기에 수단인들의 마음이 녹았을 것이며, 그가 만져준 손 한 번에 한센인의 뻥 뚫린 마음이 메워졌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한 사랑을 지키는 작은 노력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마음을 기억하고 그의 뜻을 잊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사랑을 펼칠 기회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아져 버린 우리의 사랑이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커질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가신 신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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