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비평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저자보다 나은 리뷰를 올리긴 힘들다. 그렇긴 해도 읽은 책에 대해 어떤 말을 덧붙이는 것이 사족이라는 느낌을 주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의도를 완벽에 가까울 만큼 독자에게 전달한다. 책을 읽으면 경악이 아닌 비탄이 절로 나온다. 인간이 과연 존엄한 존재이긴 한건지 의문이 생긴다. 그 의문에 대해 저자는 '대형 슈퍼마켓에 진열된 수많은 애완용 식품과 먹지 못해 기진해 있는 앙상한 어린아이'의 대비를 통해 도리어 독자에게 반문한다.

이 책은 장 지글러가 의식있는 독자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외양은 어린 아들의 물음에 전문가인 아버지가 답변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런 부담없는 형식은 사안의 심각성을 경감해준다. 너무 무거우면 독자들은 뒷걸음질 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혀져야 하기에 끝까지 가볍게 가야한다. 작가의 서술적 지혜가 돋보인다.

우석훈은 해제에서 이 책에 대한 감탄을 쏟아낸다. 첫째는 행동하는 지성의 전형을 보여준 장 지글러의 활동가로서의 면모이며, 둘째는 전문가로서 문제를 분류해내고 해석함과 동시에 전체적 흐름을 다시 정리한 점에 관해서다. 기아 문제에 대한 고급 정보와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가치를 지니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의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장 지글러의 사회적 책임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장 지글러가 최소한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무덤에 바치는 조사이자 세상을 향해 전하는 탄원서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단순한 집계만으로도 어떤 스토리의 영화보다 더한 충격을 준다. 2005년 기준으로 10살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명 씩 굶어 죽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실명하는 사람은 3분에 한명 꼴이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 실조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이 굶어 죽는 참상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력으로는 해결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생사가 별 관심도 없는 타인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은 비통함을 느끼게 한다. 그것도 세상살이에 지쳐 팍팍한 마음을 가진 우리들에게 말이다.

장 지글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통념을 뛰어넘는다. 굶는 사람들이 게을러서도 
아니며 토지가 비옥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곡물이 없어서도 아니란다. 아프리카가 아닌,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국 브라질에서조차 영양실조가 만연하고 이로 인해 해마다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더 놀라운 건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지구상에는 식량이 넉넉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아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굶주림의 방식이 더 비극적인 작금의 현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장 지글러는 서구 사회에 널리 퍼진 자연도태설이 얼마나 황당한 신화인가를 먼저 밝혀준다. 부자와 권력자들을 지탱하는 논리가 된 자연도태설은 기아 문제의 외면과 무관심에 일조한 이론이란다. 그는 자연도태설이 사이비 이론임을 분명하게 알리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이론을 사용하는 우를 범치 말아달라 부탁한다.  

 특히 그가 마음 아파 하는 부분은 생명을 선별해야 되는 상황이다. 난민 캠프에 있는 간호사의 선택에 따라 생존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무자비한 작업이긴하다. 그러나  선택받지 못한 자식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전신을 떨며 울었던 순간을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을 기억이라 꼽았다. 하지만 이런 기막힌 처지임에도 제 3세계의 많은 정부들이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외부에 알리지 않거나, 부족간의 알력과 욕심으로 긴급구호를 거절해 수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단다. 참으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

특히 소는 배를 채우고 인간은 굶어죽어야 하는 상황은 설명도 못할 비극이다. 식량이 남아돌아도 생산자들의 최저가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폐기처분할지언정 굶어죽는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경제 논리는 각국의 경제관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아를 무기 삼는 행태다. 국가적 폭력이 자행되던 나라에서, 배고픔을 무기 삼아 통제하던 수단인 기아가 이제는 국가 테러의 도구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범지구적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며 사막화와 삼림파괴로 인한 환경 난민들도 급속히 늘어나는 실정이다. 게다가 농촌 사회의 종언과 지구 규모의 도시화로 인해 도시 빈민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세계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는 어느새 우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모든 것을 자본의 논리로 재단하는 시대적 정황속에 기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못내 비감스럽다.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진행될지도 모르며 어쩌면 영속화될 확률마저 높을 것 같다. 과연 해결책이 있을까?

장 지글러는 자연도태설이 사이비 이론이라 자신있게 말했던 것처럼 배고픔의 숙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언한다. 전문가의 판단이니 신뢰할만 하겠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붙는다. 연대감과 아울러 국제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진짜 의지가 있어야 한단다.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국제 공동체의 지원은 결국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나라의 국고에서 나오고, 그들은 기아 문제의 해결을 제일 원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