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가족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의 표지를 보나, 띠지로 보나 프랑켄슈타인 가족은 현대인의 정신적 병리 현상을 다루는 처럼 보였다. 다양한 병명과 증상이 표지의 뒷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앞면엔 증상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화려하게 찍혀 있었다. 괴기스러워 보이는 나무를 뒤로 한 현대식 주택은 웅장하고 근엄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고통스런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하늘 저 쪽엔 아직 날도 채 저물지 않았건만 음흉스런 박쥐 한 마리가 서성이듯 날고 있었다. 네 명의 남성들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두 명의 여성은 상반된 포즈를 취한 채 자신의 모습을 실루엣만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표지화는 이 책의 내용을 단박에 정리시켜 주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림을 살펴보았다. 표지화 속의 인물들은 불편하고 불안한 사람의 심리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처럼 자신의 고통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비애의 느낌을 주었지만 실상 그들의 삶은 비참했을 것이며, 괴로운 심정은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의 처절함이 그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좀 전보다 더 가까이 갔다. 나는 그들을 클로우즈 업하여 그들의 폐부까지라도 살피고 싶었다.

혼자서만 비를 맞고 있는 창백한 중년의 신사와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사이엔,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린 청년이 온 몸에 힘을 준 채 현관 계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늘 긴장 상태로 지냈는지 청년의 근육은 경직돼 보였고, 눈은 잠시도 쉬지 못한 자의 초긴장 상태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가족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그림은 개체화되고 개별화된 현대인의 초상을 비추는 듯했다. 이들을 구원해 줄 사람은 없는가? 

이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유일한 한 사람, 소울 메이트 김인구를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신과 전문의인 김박사의 환자들로 이들의 증상은 김박사만이 다루고 치료해 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김박사는 말 그대로 이들의 소울 메이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가정내의 불화로 사람들의 입초사에 오르내리더니 어느날 병원을 정리하고 가평으로 내려가 버렸다.

김박사는 요즘 고민이 많다. 딸 하나의 유학길에 뒷바라지차 같이 갔던 아내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제서야 알았다며 영국인 여자친구와 결혼 해야겠으니 이혼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노래진 김박사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이 오랫동안 출연했던 TV 프로그램도 자진 하차해 버린다. 가족을 위해 살았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버리자 예전에 사둔 땅에 집을 지어 전원생활을 통해서나마 자신을 위로하려고 김박사는 지금 마음 먹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김박사의 꿈은 주택업자의 떨어지는 인테리어 감각 탓에 물 건너 갈 지경에 이르게 됐다. 

한편 김박사의 환자들은 김박사를 만나기 위해 현재 이 곳에 와 있다. 이 모임의 주동자는 카페의 매니저인 주택업자 제일이다. 제일은 김박사가 머물 가평집이 주말 별장인줄만 알고 지었다가 은퇴 후 머물 집이라는 것을 알고 난감해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달래야겠다는 속셈을 안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집에는 주인은 없고, 조경업자 경수만이 와서 김박사를 찾는다.

그 시각 김박사는 지갑을 집에다 두고 온, 작다면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인해 다단계 업체에 끌려가 감금 아닌 감금 상태에 있는 중이다. 핸드폰과 자동차 키를 빼앗긴 김박사는 정수기 업체 웰니스의 훈련소 겸 사무실에서 사회 저명인사에서 하루 아침에 엉터리 사기꾼 취급을 당하며 그토록 무서워했던 사람들의 입초사를 몸소 겪고 있는 중이다. 지금 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면서 김박사는 김박사대로 집은 집대로 동시에 온갖 난리를 치루고 있다.

김박사의 환자들은 조경업자인 경수의 의심을 받기 싫어 가족 행세를 하기로 한다. 제일은 김박사의 아버지로, 영화배우 가인은 김박사의 처로, 매니저 임만은 시동생으로, 미아는 딸로, 나석은 아들로, 라희는 임만과 부부 행세를 하기로 한다. 제일은 홀수공포증을, 가인은 출생전부터 갖게 된 트라우마로 대중목욕탕 공포증을, 임만은 다중인격 장애를, 미아는 섭식장애를, 나석은 세균에 대한 강박증을, 라희는 과대망상증과 불면증을 갖고 있다. 이들의 이상 야릇한 조합은 조경업자 경수의 가솔인, 어머니 모촌댁과 부인 그리고 희철이의 등장과 맞물리며 김박사의 새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데 중대한 공헌을 한다. 김박사가 집을 비운지 며칠만에 새 집은 헌집으로 둔갑해 버리고, 임시 가족은 온갖 이상한 상황을 만들며 콩가루 집안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경수네 식구에게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그 며칠 동안의 일들이 그들의 증상을 완화시킨다. 얼떨결에 맞닥뜨리게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벽을 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김박사 또한 다단계 업체의 횡포 속에서 자신이 말만 친구였지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 난리법석 속에 김박사의 딸 하나가 오고 가짜 가족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를 결박한 후 구석에 둔다.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건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김박사는 이런 상황들을 보고도 하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김박사는 자신 또한 환자였음을 자각하며 이제부터 자신이 이들의 진짜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한다.

요절복통에 요란하기 짝이 없는 책 한 편을 끝냈다. 아주 시원하고 왠지 모를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그 별난 일들을 치뤄낸 가짜 가족 6인방과 김박사, 그리고
짜투리로 등장한 경수네까지, 말미에 잠깐 등장한 하나까지 포함해 이번 일은 자신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그 거짓말에 빌붙어 한푼도 못되는 이득을 챙기려는 갖은 작태들이 여기 저기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허위를 벗어버리고 자신을 그대로 끌어안게 되었다. 트라우마, 상처, 아픔이라는 말은 자신의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껴앉는데서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특히 아주 작아지고 누구보다 초라해진 김박사는 찌그러지고 우스꽝스런 자신을 보면서 진짜 의사로서의 소명을 짜릿하게 받아들인다.

마지막은 나를 통해 전달되는 김박사의 전언이다.

"좀전 사람들 앞에서 당신들의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했지만 당신들이야말로 이미 오래 전부터 나를 친구로 삼아주었다오. 내가 당신들을 위로하고 치료했던 게 아니라 당신들이 나를 보듬어주고 껴안았다오. 그걸 미련한 나는 이제서야 알았구려. 비록 괴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우리 이 모습이대로 한번 부딪쳐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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