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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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화려하고 섬찟하며 도발적이고 무겁다. 읽다 보면 어느새 손바닥은 축축해지고 몸은 떨리고 다음 장을 읽는 게 두렵다. 나도 안다. 그깟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덮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서 은근히 미화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나르시시즘이다. 하지만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꽤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 만을 우선하는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며 조종술에도 뛰어나 극단을 오가며 곁에 있는 사람의 몸과 마음, 정신까지 탈취한다. 다른 사람의 불행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단지 철저하게 이용하고 지배할 뿐이다. 그래서 악에 경도될 확률이 높다.

 

『완전한 행복』은 그런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빚어진 사건을 정유정만의 해법과 도식으로 펼쳐 보인다. 정유정은 몇 년 전 한 섬에서 일어났던 섬찟한 사건을 모티브로 가져와 압도적인 서사와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구성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이 소설은 유나라는 나르시시스트를 가운데 두고 유치원생인 딸 지유와 현 남편인 은호, 언니인 재인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전개한다. 유나는 타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시선 속에 점층적으로 실체를 드러내며 모습을 확장해간다. 유나는 자신의 손아귀 안에 사람들을 구겨 넣고는 숨도 못 쉴 만큼 구속하며 조종한다. 때로는 당근으로, 때로는 채찍으로.

 

유나는 어릴 적 엄마의 와병으로 할머니의 손에 잠시 맡겨지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과 자신이 누려야할 행복을 언니 재인이 뺏어갔다는 생각을 하며 미움을 키웠다. 재인에 대한 미움은 커서도 결코 풀지 않는데 재인의 오랜 남사친이자 마음 속의 연인을 가로채 결혼해서 앙갚음을 한다. 유나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매력에 세뇌되어 꼼짝 못하는 남자들을 보았고, 매력의 위력을 누누이 실감하는데 누가 당해낼 수 있겠는가.

 

욕망은 이제 그녀보다 크다. 그녀가 욕망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그녀를 휘두르고 있다. 완전한 행복이라는 있을 수 없는 것을 바랐으니 대가를 치르는 것은 이제 당연하다. 뺄셈으로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하겠다니. 완전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니. 행복하겠다며 불행을 선포하는 인간의 미련함이 불꽃보다 뜨겁다. 그녀가 불꽃이 되어 피어날 때 사람들은 공포에 떤다.

 

 

생존의 욕구만큼 강한 게 있을까? 그녀의 사랑에 탐닉했던 남자들은 살기 위해 분투했고, 죽음의 포승줄을 끊으려 몸부림쳤다. 한번 빨대가 꽂히면 몸 안의 수분을 다 빼앗기고서야 벗어날 수 있는 게임에 걸려든 것이다. 유나는 죽음을 부르는 여자였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도 반짝였다. 거미줄에 걸린 애벌레의 운명은 무거웠다. 그렇게 가는 거미줄의 탄성이 그토록 강할 줄이야. 엄혹하며 서슬퍼런 냉기를 가지고서도 유나는 곁에 있는 이들을 불사를 수 있었다.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심장이 급하게 뛴다. 살갗이 서늘해지고 으스스하다.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아 급히 일어나 걸칠 옷을 가져온다. 소리 없이 유나가 모습을 드러내거나 쿵쾅거리며 혈안이 되어 찾는 듯한 느낌에 책을 덮는다.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십여 년 전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을 읽었을 때도 이랬다. 고작 책일 뿐인데, 글 몇 자를 이기지 못해 떨고 있다니.

 

사람다울 때 인간은 찬연히 빛난다. 지유와 함께 할 때만 유나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서늘하고 매정하지만 그래도 엄마라고 지유만큼은 챙겼다. 그러나 지유에게 유나는 좋지만 무서운 사람이고, 용서가 없는 사람이며 아빠로부터 자신을 갈라놓은 사람이기도 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고 지유는 엄마를 겪으며 알았다. 잘못하면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일체의 변명이나 떼쓰기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사람이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을 지유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이 시간 나는 할 말을 못하고 빙빙 돌고 있다. 유나가 과연 나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인가에 관해 물어볼 자신이 없어서다. 그녀는 싸이코패스에 나르시시스트이고 나는 정상적인 사람인가. 내 안에 그런 악은 없는가. 고백하자면 나도 내 안의 악을 본 적이 있다. 희한하게도 아기를 낳고 나니 내 안의 이기심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면 아래 가려져 있던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내 안의 어두움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두려운 경험이었다.

 

화사하고 빛났지만 유나는 언제나 죽음을 불러왔다. 그토록 애썼지만 유나의 남자들은 아무도 살아서 유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남편조차도. 지유와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은 너무도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타인을 장난감처럼 주무르며 즐기더니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파편을 맞고 유나 또한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 타인은 자신에게 당해도 마땅하고 자신은 불행과 무관하다는 오만이 결국 자신을 파괴로 밀어넣었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악이 추동한 결과다.
 

정유정은 말한다. 우리는 소중하지만 특별하지는 않은 존재라고. 특별한 나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줍짢은 생각이 결국 자신을 삼켜버리는 결과를 보는 것은 비극이다.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 그래서 그에 준하는 대접과 상황에 놓여있어야 한다는 유아기적 생각이 불러온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정유정은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 서늘하고 푸른 불꽃 같은 책을 작년에 여름에 읽었다. 그리곤 이제서야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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