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소설을 읽고 있다. 언어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데 담담하면서 다정하고 다감한 소설이다. 나는 작가의 어조에 민감한 편인데 소설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결국은 어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은영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밝은 밤』은 지난 달 말 출간된 그녀의 신작이다. 5일 만에 2쇄가 나왔다. 속도가 무척 가파르다. 4대에 걸친 여인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서사가 아련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인생은 왜 그렇게 슬퍼야만 하는지. 비애가 묵중하게 가슴을 친다. 나로 치자면 우리 딸로부터 나를 거쳐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이르는 이야기다. 외할머니의 자리엔 친할머니를 놓고 싶다. 나는 외할머니를 잘 모른다. 오래 사셨는데도 말이다. 죄송한 일이다. 그러나 내게 할머니는 친할머니밖에 없다. 그리운 할머니.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의 첫 작품으로 2016년 소설가들이 뽑은 그 해의 소설이다.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출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둘 다 표지가 예쁘다. 예쁜 것에 끌리는 것은 본능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도 신작이다. 정유정은 압도적이라는 단어와 서사를 하나로 묶은 작가다. 띠지를 본다. 때론 진실이 삶보다 더 무겁다고 적혀 있다. 진실은 불편하고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점성이 강하다. 개인의 고유함 속에서 발생하는 위험한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 나르시시스트는 극도의 이기주의만이 가능하다.

-도서관에서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라는 신간을 빌린 후 읽다 말았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일의 기쁨과 슬픔』은 작년에 나온 그녀의 소설집이다. 예전엔 단편 모음집이 끌리지 않더니 요즘엔 작가의 색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좋아한다.

단편집에 대한 생각을 바꿔 준 책은 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이다. 그녀의 책을 몇 권 빼놓고는 거의 다 읽었다. 시크함에 있어 구병모를 따라갈 사람이 있을까. 전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도 구병모가 책을 내면 한번 쯤은 찾아보게 된다.

참 장류진은 예뻐도 너무 예쁘더라.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런 사람도 결핍을 느낄까.

-출판사 문학동네가 잘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매년 젊은작가상 수상자들의 작품집을 특별 보급가로 내는게 아닌가 싶다. 포스팅 하려고 펴봤더니 작가들의 싸인도 들어있다.

문학동네가 가진 볼륨에 비해 문단 내에서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것은, 또한 팬심에 가까운 열혈 독자의 확보는 이런 부분들을 비롯, 섬세하고도 통 큰 접근 방식과 관리에 있다고 본다.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을 잘 읽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성경이라는 책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나이 들었기 때문이다. 뒤집으면 살만큼 살았고 알만큼 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를 픽한 이유는 자이니치 작가가 쓴 책이어서다.
자이니치 작가들이 쓴 책은 늘 마음을 끈다. 강상중과 서경식, 한국계 소설가들의 책을 읽으면 경계선 위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그럼에도 말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그들의 삶에 동참하고 싶어서다.

-나이를 먹고 보니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적은 능력을 가진 나를 볼 때 가슴이 아프다가도, 내게도 장점이 있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셨을 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던져진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책을 읽어서 뭐가 얼마만큼 달라졌는지 명확하진 않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앞서 살았던 이들의 헌신에 힘입지 않았을까 싶다. 그 헌신이 이어지고 이어져 다른 누군가에 닿는 작은 돌 하나의 역할이 내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이 저녁 나는 이렇게 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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