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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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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소망조차 가질 수 없고 작은 출구조차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절망적이 된다. 갈수록 상황은 암담해지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을 때 마음은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못하는 광야로 변한다. 도움을 청하려 손을 내밀지만 사람들은 연락이 안 되거나 각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존재를 무력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하루 사이에 12년이나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가르치는 학생의 엄마에게는 수업 중단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토록 사랑했던 고양이는 아침에 교통사고로 이미 죽었다. 


노라에게 더 이상 어떤 일이 생길까 싶은데 최악이라는 말에 걸맞게 그날은 모든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제 소망은 스러지고 남아있는 것은 허무뿐이며 생을 마무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떠오른다. 


"시간이 흘렀고, 노라는 허공을 응시했다. 와인을 마시고 나니 또렷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 삶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녀가 둔 모든 수는 실수였고, 모든 결정은 재앙이었으며,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에서 한 걸음씩 멀어졌다.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중 어느 것도 되지 못했다." 39쪽


노라는 구차한 삶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런 우울함과 감당 못할 미래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간은 죽기 딱 좋은 밤 11시 22분. 어떤 아쉬움도 없이 약을 먹는다. 죽음만큼은 제대로 되기를 바라며. 더 이상 후회의 늪에 빠져 허덕이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데 여기는 어딜까? 교회나 작은 슈퍼마켓 크기의 건물에 사방이 온통 초록색 책으로 둘러 쌓여있다. 게다가 학창 시절 그토록 마음이 맞던 도서관 사서 엘름 부인이 이곳에 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곳은 자정의 도서관이다.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서 노라는 다시금 생을 살아볼 기회를 얻는다. 


그간 노라의 삶은 후회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많은 후회가 그녀의 삶을 좀 먹고 옭아맸다. 이제 주어진 시간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가장 후회했던 결정으로 제일 먼저 돌아가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결혼 이틀을 앞두고 자신의 변심으로 약혼자 댄은 깊은 상처를 받았고 노라도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살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한 상태로 함께 하니 댄은 노라가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노라는 실망했고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노라는 숱하게 많은 삶을 살면서 모든 감정을 느낀다. 더 많은 삶을 살수록 다른 삶으로 쉽게 넘어갔고 나쁜 경험이 있으면 좋은 경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자신이 삶을 끝내려 했던 이유는 불행해서가 아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새로운 삶을 선택할 때마다 상상력은 더 발달했지만 더 많은 삶을 살면 살수록 어디에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같이 가지 못한 후회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단짝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중략...어쩌면 그녀를 위한 완벽한 삶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틀림없이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을 발견하려면 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 걸 노라는 깨달았다. " 276~277쪽 


노라는 이제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외과의 애쉬와의 삶을 선택한다. 애쉬는 여전히 친절하고 섬세했으며 어리고 예쁜 딸 몰리와 믿음직한 강아지 플라톤과 함께 하며 노라는 이 삶이 완벽하며 멋진 삶이라는 걸 느끼며 이곳에서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만 했고 자신이 살고 싶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자정의 도서관에서 현실로 넘어온다. 


노라는 이제 어제의 노라가 아니다. 과거에 붙잡혀 후회 속에 사는 어리석은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 상황 속에서 오로지 지금을 살 작정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선택이 찾아올 때 기회를 만드는 자가 될 것이다. 그 선택은 자신의 운명을 멋지게 바꾸고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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