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적은 답장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
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창작과비평, 2018
어딘들 쉬운 삶이 있겠는가마는 하늘마저 검다는 탄광촌엔 서러움이 켜켜로 쌓여있다.
먹을 것을 캐기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하는 사내들은 바짝 선 신경을 감당하지 못해 취기를 빌린다.
가난은 아이들을 빨리 자라게 한다. 아이들의 눈치는 백단이다.
아이들은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씩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아빠가 울지 못한 울음을 아이들의 심장이 대신해 울기 때문이다.
광부들의 사인이 매몰에 의한 질식사나 아사가 아닌 익사라는 사실은 의외이면서 불가항력이다. 광부들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고 타인의 죽음을 통해 아이들은 아빠의 죽음을 예비한다.
때로 아이들의 눈물은 흐르고 흘러 내를 이루고 마침내 장마마저 부른다.
화자인 나는 지금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갱도에서 죽음을 맞이한 광부들의 이야기는 썼다가 이내 지웠다.
미래를 함께 하고픈 그녀에게 이런 소식은 슬프고도 무겁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 함께 장마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로 새로운 답장을 쓴다.
삶은 그렇게 흐르고 시작한다. 가고 보내고 또 오고 맞이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