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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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그녀의 책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서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을 어른으로 정의한다. 그렇다.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다. 어른이 되려면 여러 요소들이 갖춰져야 하지만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제적인 자립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성품이 좋아도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하면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 자기 앞가림은 일, 즉 돈 벌이를 통해 이뤄진다.


돈을 버는 것은 단순한 벌이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 줄 뿐 아니라 자아 실현까지 이루게 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이렇게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의 저자 김예지는 청소 일을 한다. 대학 졸업 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때려 치우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나섰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수입은 없는데 꼬박꼬박 돈은 나가고 이력서를 냈던 곳들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런 그녀에게 청소 일을 하셨던 어머니가 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하였다. 이왕 할 바엔 제대로 하자 싶어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대표가 되어 현재까지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스물일곱에 시작했던 일이 서른을 넘기고서도 계속 되었고, 생각 외로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느냐고 사람들이 물어오면 말문부터 막혔다. 이럴 때 머리와 가슴은 얼마나 먼지 청소 요정을 자청했건만 이같은 질문 앞에선 맥을 못 췄다.


그녀 안에는 청소하는 나와 그림을 그리는 나가 공존한다. 전자는 부끄러움에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한 직업을 가진 나이고, 후자는 설명은 필요 없지만 밥 벌이를 못하니 확실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나이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30대 중반 다시 학생이 되어 신학교를 졸업한 다음 삶의 방향을 놓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선배 언니이자 멘토인 선교사님이 네가 사람은 착한데 시건방진 데가 있다며-나는 잘 모르겠는데- 된 사람이 되어보라는 조언에 간병인을 하게 되었다.

대학 병원에서 10개월 동안 13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내 의지로 시작한 일이고 좋은 분들을 만났지만 마음은 무척 힘들었다. 그녀처럼 두 명의 내가 공존했고 감정이 수시로 비집고 나와 마음을 헤집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간병인이냐며 말리다 내 고집을 꺽지 못한 엄마가 간병인을 하러 가는 나를 보고 우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올케에게 들었다. 먹을려고 먹는 게 아니라 바람을 쐬고 싶어 먹는 거라 음식도 부실한데다 밤에도 수시로 깨야 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자 그 기간 내내 두피에 발진이 났고, 얼굴도 꺼칠하니 몸도 좋지 않았다. 건강한 선택이었고 마음을 다해 했으며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은 경험이었지만, 머리와 가슴의 괴리로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씩씩하게 웃어넘기는 그녀가 읽는 내내 애처로웠다. 그 무렵 나는 30대 중반이었지만 그녀는 20대였으니 얼마나 많은 갈등과 아픔이 있었을까.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의아하게 보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후에 작가가 되어 독자와 만났을 때,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겼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기지 못하고 그냥 견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청소 일은 자리를 잡았지만 퇴사한 목적에서 자꾸 멀어지자 그녀의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내려앉은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자아의 성취를 통한 자존감의 고양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것은 허영된 마음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한 욕구였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그림으로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독립출판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허접한 이야기지만 자신처럼 헤매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출판 강좌를 듣고 난 후 책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책을 보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팔렸고 들어온 인세로 작업실을 마련했다.

청소 일을 하며 그녀는 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무시와 냉대를 받았다. 어머니와 함께 했고 웃으며 잘 대응해 보려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꾸준히 해냈고 그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채워 책으로 만들었다. 청소 일은 그녀를 힘들게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작가라는 직업을 갖게 해 주었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과 취향이 다르며 관점도 다르다. 하물며 인생 길이 같을 수 있을까. 청소 일이 선망할만한 직업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그림 그리는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삶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었다면 청소 일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내 직업에 관한 의미와 가치는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이가 아무리 인정해주고 부러워해도 내가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일이 있을 때 내일이 있다는 글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청소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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