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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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나 기아 혹은 정치적인 박해를 피해 외국으로 탈출하는 사람을 난민이라 한다. 말로만 듣던 난민을 오래 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신학교를 다니며 목동의 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학원 위 쪽엔 출입국 관리소가 있었고, 그 거리를 적잖은 외국인들이 오갔다.

어느 날 근처 지하철 역에서 동남아에서 온 듯한 외국인을 만났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이 얼마나 야박하고 부당한 곳인지 잘 알고 있던 터라, 마음이 추울 그에게 신앙과 좋은 교제권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 무렵 출석했던 교회는 규모도 큰 데다 젊은이들이 많아 마음을 의탁할만한 곳이었다.

그는 M국에서 왔다고 했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독재 정권이 대학교의 문을 닫아버려 몇 년째 대학생이 없다고 했다. 그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탈출해 한국으로 왔다며 난민 신청을 했다고 했다. 많고 많은 나라 중 왜 하필 한국을 선택했는지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를 교회의 믿을만한 간사와 연결해 주었고 그 후 간간이 소식을 듣다 연락이 끊겼다.

누나라며 나를 믿고 교회에 왔을 텐데 당시 미혼에 내 인생도 버거웠던 터라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슬픔이 가득한 눈을 하곤 얌전히 앉아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빙그레 웃던 모습을 회억한다. 더 잘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미안하기만 하다.

몇 년 전 난민과 관련된 책을 읽다 그가 생각 나 검색을 해 보았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그 사이 그는 청년 운동가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의 유명 출판사에서 그의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는 글을 보았다. 그의 비전에 관해 듣긴 했지만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터라, 대견스러웠고 괜스레 뿌듯했다.

그러나 난민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 좋았다 해도 난민의 거취가 우리네 삶과 직결되면 미안하게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쪽으로 입장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이중적인 태도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재작년 예멘에서 온 난민이 제주도에 대거 상륙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반대 여론이 거셌고 적잖은 이들이 불안해 했다. 500여 명의 사람들이 난민 신청을 했고 신청자 중 언론인 출신 2명에게 난민 허가가 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더 앞서 10여 년 전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근처에 난민센터를 짓는다하여 동네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던 적이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 값 하락과 치안 불안을 이유로 반대 시위를 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더불어 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들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나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역 주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남의 일이라고 여길 때는 쉬웠고 감성적인 접근도 됐는데 전환된 입장으로 서고 보니 생각만으로도 곤혹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난민을 대거 수용한 후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사와 사진으로 보았다. 난민의 수가 적을 때는 감당할 수 있었지만 2015년 이후 수백만에 이르는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이제 그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래서 장 지글러의 『인간 섬』을 읽고도 리뷰를 못 올렸다.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저작을 통해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행동해온 사회학자다. 그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기아가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닌 분배의 문제임을 알고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어 그의 책을 몇 권 사서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좀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장 지글러의 견해뿐 아니라 난민들을 관리하는 책임자나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고 싶었다. 난민들은 몰려 오는데 수용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에서까지 난민들이 몰려 온다. 그들이 그리스에 오게 되면 다섯 섬 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에 있는 난민 캠프로 가야 한다. 난민 캠프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6,400여명이지만 2019년 11월 현재 35,000명이 넘는다.

난민들의 삶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가축도 먹기 힘든 상한 음식을 배급받기도 하고, 적은 양의 음식이라도 배급 받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린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위생 시설은 꿈도 꿀 수 없다. 저만치 떨어진 공동 화장실을 오가다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날이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비라도 오면 난민촌은 오물과 악취로 엉망이 된다. 프랑스 유학까지 갔다온 전직 의사도, 변호사도 여기서는 일개 난민에 불과하다. 그들이 생존하려면 생각을 지워야 한다.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은 현재로선 요원해보이니까.

장 지글러는 86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용감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난민들의 상황을 알리며 이 끔찍한 상황을 전복하고 싶어한다. 시민이라면 갖게 된다는 부끄러움의 힘에도 호소하며, 난민들에게 주어진 보편적 망명권이 존중될 것과 핫 스폿이라 불리는 난민캠프를 폐쇄하길 요구한다.

그의 선의와 순도 높은 진심이 잘 전달된다. 그의 마음에 공명하여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가 말한 것처럼 대단히 선량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아파할 수는 있으니까.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현실이 있다. 난민이 적을 때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었고 감당했겠지만, 수십만 수백만 단위로 움직이면 그때는 인도주의적 입장과 온정만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발생 가능한 일과 발생한 일, 각종 제반 상황과 여건에 대한 실제적인 조치와 보호, 지원을 해야 하니까. 입으로 하는 건 누구는 못하나.

그래서 이렇게 짧지 않은 글을 썼음에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당신은 혹 이 책을 보았는가.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머지는 당신의 마음과 행동으로 채우시라. 그렇지 않다면 이 글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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