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3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오재국 옮김 / 범우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일상적인 언어로, 일상적인 우리들의 생활상을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이 소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동경이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중간중간, 그리고 지바고의 시편에서 무수히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적 복음을 통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스케치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런 부분을 언급하지 않아도 본 소설은 무한한 전 인류적 보편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로 거듭나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상징적이다 혹은 리얼리즘이다 하는 문구로 본작을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소설 자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자유, 사랑, 사색, 자연-를 감안해 본다면 오히려 '휴머니즘'이라고 통칭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기존의 고전 소설들이 고집하던 작법-사건전개의 필연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사건에 우연성을 적극 끌어들인 것이 오히려 이 작품을 더욱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박진감은 더해졌지만 동시에 그것이 작품성에 어떤 손실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현대적인 기법을 성공적으로 완성했기 때문에 파스테르나크는 문학사에 반드시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영화업자들의 구미에도 적합했던 모양이다.

...위대한 작품이며, '시인'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미제라블 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4
빅토르 위고 지음, 방곤 옮김 / 범우사 / 199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불경기와 대량 실업으로 사회가 활기차지 못하고 비곗살 뒤룩뒤룩한 정치인들때문에 매체는 연일 시끄럽기만 하다. 다시금 이 사회는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같다.

레 미제라블에서는 그 당시에는 물론이요, 지금 현재에도, 우리가 필요로하는 진정한 모습이 영웅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 하나 고생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 최근들어서는 나이가 젊은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자신은 그냥 묵묵히 자신의 임무만 다하면 된다. 애써 '경쟁'이라는 허울로 타인을 해코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레 미제라블을 읽으며 가장 깊게 생각해본건 아무래도 '젊은이의 자세'가 아니었나 싶다. 젊음이 그 싱그러움을 더하기 위해서는 넘쳐흐르는 에너지의 방향이 곧은 쪽으로 잡혀있어야 한다. 보다 긍정적인 생각, 여유롭고 자상한 태도, 어떠한 어려움도 일단 헤쳐나가보려하는 강인하고 패기있는 자세...이런것들이 잘 어우러질때 꾀많은 노친네들은 젊음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혼란스런 현재의 대한민국에. 과연 젊은이는 있는 것인가 의문이 간다. 그리고 겉모습만 젊은 현재의 내 모습에도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거울을 비춰본다.

아직 어리석고 서툴지만..그래도 현재의 당신모습이 곧은 것 같다면, 이제는 사랑을 해도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벨룽겐의 노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7
허창운 옮김 / 범우사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1995년 Yaki-da의 열풍에서부터 최근의 인라인 스케이트 열풍까지. 뭐 좀 뜬다 싶으면 앞뒤 안가리고 따라하고 보는게 대한민국인들의 습성인지 실로 의심스럽고..동시에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들이 가져다주는 최대의 오점은 바로 '다양성의 저해'에 있다. 다양성은 모든 문화발전의 토대다. 똑같은 요리를 먹더라도, 다른 여러 요리들을 접해본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느끼는 미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 일년 전부터 서점가에서 불어닥치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열풍을 보노라면 위와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맑스주의 철학자들은 양적인 발전이 질적인 발전을 낳는다며 그러한 물량확장적 현상을 나쁘게만은 보지 않았지만...중요한 건 웬만하면 최대한 빨리 '발전'하는 것이 좋으며, 그 시행착오의 기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문화상품들에 대해 확실한 옥석 가리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리스로마 신화는 이제 발전에 필요한 자체적인 질량은 충분히 획득한 듯 보인다. 그러므로 이제는 관심사를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는게 좋지않을까 싶은데...여기 <니벨룽겐의 노래>를 추천하고자한다.

최근의 게임 및 판타지 소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판타지 소설, 영화, 게임은 그 배경을 전적으로 북구 신화 혹은 켈트 신화에서 따온다. 아무래도 그 신화들에서 묻어나는 신비주의, 흑마술 등 판타스틱한 요소들이 관련 산업과 비슷한 코드를 가진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양에서 비교문학이라는 장르가 발전해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니벨룽겐의 노래를 언급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저 호머의 <일리아드>다. 영웅들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들이 발견되기도 하나, 스토리의 구조와 전개상황, 내용등 전체적인 색깔은 서로 굉장히 다르게 나타난다. 다층적인 내용전개가 각각 다른 형식으로, 양자 모두에게 나타나기에 비교문학적인 자세로 접근하기에 이보다 더한 전범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허창운씨가 맡은 범우사 편의 책은 번역이 썩 잘되어 있는 편이다. 다만 관련 서적이 턱없이 부족한데서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현재 북구, 게르만, 켈트, 이집트, 인도, 페르시아 등등의 신화서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페르시아 신화의 경우 그나마도 전부 다 번역본이며, 자작된 저술은 한 권도 없다.

좀 더 쉽게, 소설 형식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만하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도 보다 다양한 종류의 신화가 선을 보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nian 2005-10-1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과한 요구인듯하군요. 관련인프라가 안갖추어진 상황에서.. 중세 독일어텍스트
번역할수 있는 실력자가 허창운씨가 유일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황하에서 천산까지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본 책은 중국내의 이민족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개설서이다. 그 중에서도 네 민족 - 티벳, 영하회족, 위구르, 몽골족 - 을 다루고 있다. 필자의 후기대로 이들 민족의 역사가 다소 비극적인 방향으로만 서술된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은 사실이나 전체적으로 봐서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그들의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일부 전공 서적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출판되어 있는 역사관련 출판물 중 이른 바 '비주류'를 다룬 것들은 극히 적다. 그리고 이러한 데서 두텁지 못한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한계를 느낄때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서, 정말 질좋은 교양서적 하나가 등장한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다. 더구나 그것이 번역서도 아니고, 또한 글쓰는 센스없는 어느 따분한 역사 전공자가 쓴 것도 아니라 더더욱 흥분이 된다. 예술작품으로 치자면 대중성과 작품성이 동시에 구현된, 그런 모양새를 띠고 있는 것이 본 저서이다.

최근 십 수년간 중국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그들의 행동이 딱 두 가지-제국주의, 전체주의-로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중국 정부당국의 대 소수민족 정책인데, 연변의 조선족과 최근 고구려사 관련 사태로 학계와 정계가 시끄러운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사태의 추이를 잘 관찰해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저자가 우려하고 있는 바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가로서의 냉철한 시각보다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려는 듯 하다. 이 점이 독자들에게 있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요소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어느새 21세기를 맞이하였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원시적인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횡포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소수민족들. 이들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점이 무엇일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들과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9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것이 어떤 형태로 표현이 되든,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감상자에게서 어떤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런 면에서 볼때, 이 로렌스라는 이름의 작가는 과연 그에게 '작가'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 적이 의심스럽다.

소설의 내용을 보다 전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역시 고전작품답게 철학적인 부분들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점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세부적인인 부분들이 턱없이 형편없고 수준이하다. 예컨데 인물들의 심리묘사 부분을 꼽을 수가 있다. 각 인물들은 여러가지 감정들을 너무나도 동시에, 쉽게 가져버린다. 이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하고, 기분이 좋았다가도 또 동시에 불쾌하다. 물론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점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수용하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인물의 감정변화건 특정한 내용의 전개건 어떤 부분에서도 정상적이고 일관적인 흐름이 없다. 또한 시시각각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나이에 독자들 한번두번 혼란스러워지는 게 아니다. 요컨데 완성도의 측면에서 보았을때 이 작품이 얻을 수 있는 점수는 거의 희박하다 하겠다.

글쓴이는 도저히 독자로 하여금 본인의 생각과 발을 맞추지 못하게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수의 독자들이, 글이 전개됨에 있어서 특별한 어색함 없이 물흐르듯 잘 읽어 내려갈 수 있을지 실로 의심스럽다. 결정적인 단점은 작가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인상깊게 전달하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부분부분이 하나같이 다 명확하지 못하며 그저 모호하고 막연할 뿐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제 더 이상, 역자 후기의 맹목적인 작가찬양을 보고 싶지가 않다.

양성이니 에고니 원초적이니 하는 단어들이 심리학 혹은 철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버무려져 언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평론가들의 평대로-정 작가가 인간 양성의 어떤 원초적인 생명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면, 왜 그는 그것을 자기의 글 속에 보다 쉽게(=원초적으로!) 녹여내지를 못했을까.

어떻게 보면 평론가들의 과대포장, 억지해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적 생명 운운하는 부분들이 특히 더 그렇다.

그냥 리뷰는 쉬운 말로 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독자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기만 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예술을 대하는,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순수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