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9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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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떤 형태로 표현이 되든,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감상자에게서 어떤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런 면에서 볼때, 이 로렌스라는 이름의 작가는 과연 그에게 '작가'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 적이 의심스럽다.

소설의 내용을 보다 전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역시 고전작품답게 철학적인 부분들이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점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세부적인인 부분들이 턱없이 형편없고 수준이하다. 예컨데 인물들의 심리묘사 부분을 꼽을 수가 있다. 각 인물들은 여러가지 감정들을 너무나도 동시에, 쉽게 가져버린다. 이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하고, 기분이 좋았다가도 또 동시에 불쾌하다. 물론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점을 필요이상으로 많이 수용하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인물의 감정변화건 특정한 내용의 전개건 어떤 부분에서도 정상적이고 일관적인 흐름이 없다. 또한 시시각각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나이에 독자들 한번두번 혼란스러워지는 게 아니다. 요컨데 완성도의 측면에서 보았을때 이 작품이 얻을 수 있는 점수는 거의 희박하다 하겠다.

글쓴이는 도저히 독자로 하여금 본인의 생각과 발을 맞추지 못하게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수의 독자들이, 글이 전개됨에 있어서 특별한 어색함 없이 물흐르듯 잘 읽어 내려갈 수 있을지 실로 의심스럽다. 결정적인 단점은 작가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인상깊게 전달하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부분부분이 하나같이 다 명확하지 못하며 그저 모호하고 막연할 뿐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제 더 이상, 역자 후기의 맹목적인 작가찬양을 보고 싶지가 않다.

양성이니 에고니 원초적이니 하는 단어들이 심리학 혹은 철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버무려져 언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평론가들의 평대로-정 작가가 인간 양성의 어떤 원초적인 생명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면, 왜 그는 그것을 자기의 글 속에 보다 쉽게(=원초적으로!) 녹여내지를 못했을까.

어떻게 보면 평론가들의 과대포장, 억지해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주적 생명 운운하는 부분들이 특히 더 그렇다.

그냥 리뷰는 쉬운 말로 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독자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기만 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예술을 대하는,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순수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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