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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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있어서 '허클베리 핀'이라는 이름은 역시 문학적 이미지보다는 시각적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만화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 씌여진 실제 작품을 '읽어'보아도, 당시에 우리 세대가 느꼈던 만화적인 이미지가 전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과는 친화적인 요소가 더 많이 느껴졌고, 만화로 제작된 이유또한 이런 부분에서 연유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승전결식의 고전적 작법을 벗어나 에피소드 모음 형식으로 소설을 전개한 점 역시 쪼개어서 방영해야만 하는 TV 만화프로그램과 딱 맞아떨어지는 코드를 가진 부분이다. 더해서 1인칭 주인공 시점, 그것도 갓 열살을 넘은 사내아이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된 형식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으로서의 허클베리핀, 그리고 고전 작가로서의 마크 트웨인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얼마간 엄격한 재고가 필요할 듯 싶다.

동시대의 다른 고전문학과 비교했을때 마크 트웨인의 본 작품은 상당부분 메인스트림에 접근해있다. 물론 영미지역의 문화성향이 경험론과 주류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렇게 특기할만한 상황은 못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마크 트웨인의 저작들이 위대한 고전들과 어깨를 같이 한다는 건 역시 곱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마크 트웨인의 문학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헤게모니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음악생활을 한 베테랑 뮤지션보다 미국 출신의, 갓 만들어진 꽃미남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수십배는 더 유명해지듯이 말이다.

특유의 토속적인 표현과 문구들이 미국 본토 독자들의 감정을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자극했을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의 독자들까지 이런 부분을 아무런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차라리 그것이 유럽 '대륙'의 고전처럼 번역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유실되는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철학적 깊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못하다.

미국 본토의 사투리를 대한민국의 전라도 사투리에 대응시켜 번역을 시도한 점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사투리보다는 속어부분에 있어서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을 현대화 하겠다는 민음사 측의 취지에 어울리게끔 말이다.

일단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싫든 좋든 계속해서 재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 사회와 그간의 역사에 있어서 미국의 행동이 재조명되고 있듯이, 이들 문화전반에 대해서도 분명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은 대한민국을 정치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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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3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오재국 옮김 / 범우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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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일상적인 언어로, 일상적인 우리들의 생활상을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이 소설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동경이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중간중간, 그리고 지바고의 시편에서 무수히 나타나고 있는 기독교적 복음을 통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스케치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런 부분을 언급하지 않아도 본 소설은 무한한 전 인류적 보편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로 거듭나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상징적이다 혹은 리얼리즘이다 하는 문구로 본작을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소설 자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자유, 사랑, 사색, 자연-를 감안해 본다면 오히려 '휴머니즘'이라고 통칭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기존의 고전 소설들이 고집하던 작법-사건전개의 필연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사건에 우연성을 적극 끌어들인 것이 오히려 이 작품을 더욱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박진감은 더해졌지만 동시에 그것이 작품성에 어떤 손실을 초래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현대적인 기법을 성공적으로 완성했기 때문에 파스테르나크는 문학사에 반드시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것은 동시에 영화업자들의 구미에도 적합했던 모양이다.

...위대한 작품이며, '시인'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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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4
빅토르 위고 지음, 방곤 옮김 / 범우사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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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와 대량 실업으로 사회가 활기차지 못하고 비곗살 뒤룩뒤룩한 정치인들때문에 매체는 연일 시끄럽기만 하다. 다시금 이 사회는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같다.

레 미제라블에서는 그 당시에는 물론이요, 지금 현재에도, 우리가 필요로하는 진정한 모습이 영웅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설득력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 하나 고생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 최근들어서는 나이가 젊은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자신은 그냥 묵묵히 자신의 임무만 다하면 된다. 애써 '경쟁'이라는 허울로 타인을 해코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레 미제라블을 읽으며 가장 깊게 생각해본건 아무래도 '젊은이의 자세'가 아니었나 싶다. 젊음이 그 싱그러움을 더하기 위해서는 넘쳐흐르는 에너지의 방향이 곧은 쪽으로 잡혀있어야 한다. 보다 긍정적인 생각, 여유롭고 자상한 태도, 어떠한 어려움도 일단 헤쳐나가보려하는 강인하고 패기있는 자세...이런것들이 잘 어우러질때 꾀많은 노친네들은 젊음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혼란스런 현재의 대한민국에. 과연 젊은이는 있는 것인가 의문이 간다. 그리고 겉모습만 젊은 현재의 내 모습에도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거울을 비춰본다.

아직 어리석고 서툴지만..그래도 현재의 당신모습이 곧은 것 같다면, 이제는 사랑을 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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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겐의 노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7
허창운 옮김 / 범우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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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Yaki-da의 열풍에서부터 최근의 인라인 스케이트 열풍까지. 뭐 좀 뜬다 싶으면 앞뒤 안가리고 따라하고 보는게 대한민국인들의 습성인지 실로 의심스럽고..동시에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들이 가져다주는 최대의 오점은 바로 '다양성의 저해'에 있다. 다양성은 모든 문화발전의 토대다. 똑같은 요리를 먹더라도, 다른 여러 요리들을 접해본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느끼는 미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 일년 전부터 서점가에서 불어닥치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열풍을 보노라면 위와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맑스주의 철학자들은 양적인 발전이 질적인 발전을 낳는다며 그러한 물량확장적 현상을 나쁘게만은 보지 않았지만...중요한 건 웬만하면 최대한 빨리 '발전'하는 것이 좋으며, 그 시행착오의 기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문화상품들에 대해 확실한 옥석 가리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리스로마 신화는 이제 발전에 필요한 자체적인 질량은 충분히 획득한 듯 보인다. 그러므로 이제는 관심사를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보는게 좋지않을까 싶은데...여기 <니벨룽겐의 노래>를 추천하고자한다.

최근의 게임 및 판타지 소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판타지 소설, 영화, 게임은 그 배경을 전적으로 북구 신화 혹은 켈트 신화에서 따온다. 아무래도 그 신화들에서 묻어나는 신비주의, 흑마술 등 판타스틱한 요소들이 관련 산업과 비슷한 코드를 가진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서양에서 비교문학이라는 장르가 발전해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니벨룽겐의 노래를 언급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저 호머의 <일리아드>다. 영웅들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들이 발견되기도 하나, 스토리의 구조와 전개상황, 내용등 전체적인 색깔은 서로 굉장히 다르게 나타난다. 다층적인 내용전개가 각각 다른 형식으로, 양자 모두에게 나타나기에 비교문학적인 자세로 접근하기에 이보다 더한 전범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허창운씨가 맡은 범우사 편의 책은 번역이 썩 잘되어 있는 편이다. 다만 관련 서적이 턱없이 부족한데서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현재 북구, 게르만, 켈트, 이집트, 인도, 페르시아 등등의 신화서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페르시아 신화의 경우 그나마도 전부 다 번역본이며, 자작된 저술은 한 권도 없다.

좀 더 쉽게, 소설 형식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만하면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도 보다 다양한 종류의 신화가 선을 보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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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ian 2005-10-1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과한 요구인듯하군요. 관련인프라가 안갖추어진 상황에서.. 중세 독일어텍스트
번역할수 있는 실력자가 허창운씨가 유일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황하에서 천산까지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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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은 중국내의 이민족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개설서이다. 그 중에서도 네 민족 - 티벳, 영하회족, 위구르, 몽골족 - 을 다루고 있다. 필자의 후기대로 이들 민족의 역사가 다소 비극적인 방향으로만 서술된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은 사실이나 전체적으로 봐서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그들의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일부 전공 서적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출판되어 있는 역사관련 출판물 중 이른 바 '비주류'를 다룬 것들은 극히 적다. 그리고 이러한 데서 두텁지 못한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한계를 느낄때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서, 정말 질좋은 교양서적 하나가 등장한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다. 더구나 그것이 번역서도 아니고, 또한 글쓰는 센스없는 어느 따분한 역사 전공자가 쓴 것도 아니라 더더욱 흥분이 된다. 예술작품으로 치자면 대중성과 작품성이 동시에 구현된, 그런 모양새를 띠고 있는 것이 본 저서이다.

최근 십 수년간 중국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그들의 행동이 딱 두 가지-제국주의, 전체주의-로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중국 정부당국의 대 소수민족 정책인데, 연변의 조선족과 최근 고구려사 관련 사태로 학계와 정계가 시끄러운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사태의 추이를 잘 관찰해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저자가 우려하고 있는 바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가로서의 냉철한 시각보다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려는 듯 하다. 이 점이 독자들에게 있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요소임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어느새 21세기를 맞이하였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원시적인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횡포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소수민족들. 이들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점이 무엇일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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