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있어서 '허클베리 핀'이라는 이름은 역시 문학적 이미지보다는 시각적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만화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 씌여진 실제 작품을 '읽어'보아도, 당시에 우리 세대가 느꼈던 만화적인 이미지가 전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과는 친화적인 요소가 더 많이 느껴졌고, 만화로 제작된 이유또한 이런 부분에서 연유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승전결식의 고전적 작법을 벗어나 에피소드 모음 형식으로 소설을 전개한 점 역시 쪼개어서 방영해야만 하는 TV 만화프로그램과 딱 맞아떨어지는 코드를 가진 부분이다. 더해서 1인칭 주인공 시점, 그것도 갓 열살을 넘은 사내아이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된 형식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으로서의 허클베리핀, 그리고 고전 작가로서의 마크 트웨인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얼마간 엄격한 재고가 필요할 듯 싶다. 동시대의 다른 고전문학과 비교했을때 마크 트웨인의 본 작품은 상당부분 메인스트림에 접근해있다. 물론 영미지역의 문화성향이 경험론과 주류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렇게 특기할만한 상황은 못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마크 트웨인의 저작들이 위대한 고전들과 어깨를 같이 한다는 건 역시 곱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냉정하게 말해서 마크 트웨인의 문학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헤게모니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음악생활을 한 베테랑 뮤지션보다 미국 출신의, 갓 만들어진 꽃미남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수십배는 더 유명해지듯이 말이다.특유의 토속적인 표현과 문구들이 미국 본토 독자들의 감정을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자극했을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의 독자들까지 이런 부분을 아무런 가감없이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차라리 그것이 유럽 '대륙'의 고전처럼 번역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유실되는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철학적 깊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못하다.미국 본토의 사투리를 대한민국의 전라도 사투리에 대응시켜 번역을 시도한 점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사투리보다는 속어부분에 있어서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을 현대화 하겠다는 민음사 측의 취지에 어울리게끔 말이다. 일단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싫든 좋든 계속해서 재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 사회와 그간의 역사에 있어서 미국의 행동이 재조명되고 있듯이, 이들 문화전반에 대해서도 분명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은 대한민국을 정치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