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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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전에 사놓고 아이에게만 읽어보라고 던져주고 정작 나는 읽지 않았다. 성장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개봉으로 관심이 생겼고 TV 영화프로그램에서 줄기차게 보여주는 소개때문에 이 책을 다시 들게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똥주가 조금 과장된 케릭터라고 생각되었다. 영화라는 특성상 그리 묘사를 해야했을 것이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과장된 연기가 아니라 책에 나와 있는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똥주 선생이 내 앞에 나와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주인공이 완득이 일까, 똥주 선생일까. 책을 읽는 내내 고민했다. 제목은 <완득이>이지만 <똥주 선생>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똥주 선생의 특이한, 아니 좀 이상한 케릭터가 있기에 완득이가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똥주 선생 연출에 완득이가 주인공이 된다.




미안해요
잊고 싶지 않았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혹시 전화할 수 있으면 전화해주세요.
ooo-ooo-oooo
안해도 돼요.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똥주 선생이 얼굴도 모르는 완득이의 베트남인 엄마를 만나게 해주었다. 완득이 엄마가 완득이를 만나고 그에게 전해준 편지이다. 완득이도 엄마와 헤어지고 방에서 이상한 냄새를 느낀다. "어머니 냄새"를 느낀다. "그 흔한 아들이니 엄마니 하는 말도 없"는데 이 편지는 눈믈을 글썽이게 만든다. 엄마는 단지 엄마일 뿐이다.


알고 보니 핫산은 고용주가 고용한 염탐꾼이었다. 똥주처럼 악덕 고용주를 고발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 한산의 일이었다. 핫산은 한국 사람을 위해 일했고, 똥주는 외국 사람을 위해 일했다. 그 대가로 핫산은 강제 추방을 당했고 똥주는 유치장을 다녀왔다.


다문화가 늘어가는 한국의 현실이다. 자본가들은 외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일부 한국인은 그들을 위해 노력한다. (자본가의 아들인) 똥주는 외국 노동자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그 결과로 핫산은 강제 추방 당했다. 똥주가 한 일이 외국 노동자인 핫산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는가? 이것은 단지 똥주 선생의 성격(성향)을 알려주기 위한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기에 더 세부적인 묘사는 없다. 이것으로 끝이다. 아직도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이다. 외국인에 대한 자본가들의 차별이라기 보다 자본이 어떻게 (얼굴에 상관없이)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본가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그가 주요 인물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또한 이 책이 완득이의 성장 소설이며 완득이와 똥주 선생의 관계에 치중하기에 그럴 것이다.

왜 완득이의 아버지는 난장이이며 엄마는 외국인일까?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똥주가 없었다면 조폭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장애인,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 등 나쏘공이 떠오른다. 70년대 사회현실과 달라진 것은 다문화 가정이라는 점이다. 21세기의 설정으로는 다소 진부하다.

내일은 오늘 보다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희망과 판타지를 읽는 청소년들에게 심어주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득이를 세상밖으로 나오게 한 똥주 선생과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의 불씨를 버리기에는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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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가 된 백설 공주 - 로알드 달이 들려주는 패러디 동화
로알드 달 지음, 퀜틴 블레이크 그림, 조병준 옮김 / 베틀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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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자마자 왕인 아버지는 이렇게 소리쳤다. 왕비가 죽자마자 새로운 왕비를 고르는 귀찮은 일에 대해 소리쳤다.

아, 정말 귀찮아 죽겠구나! 인생은 왜 이리도 고달픈 것이더냐. 새 아내를 구해야 하다니!

왕은 고민 끝에 미스 맥클라호스라는 여자를 선택했다. 그 여자는 놋쇠 테두리를 친 거울을 가지고 왔다. 그것은 말하는 바법의 거울이었다. 멍청한 왕비는 10년동안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아름답냐는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법의 거울이 백설공주를 제일 예쁘다고 말했다. 왕비는 화가 나서 백설공주를 죽이고 피가 철철 넘쳐나는 심장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살려달라는 백설공주를 죽이지 못하고 사냥꾼은 숫소의 심장과 고기 한 점을 사서 왕비에게 바쳤다. 왕비는 가지고 온 심장을 먹어치웠다. 로알드 달은 심장을 잘못 삶으면 질겨서 먹기 힘드니 잘 요리해 먹기를 바란다고 써 놓았다.

백설공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백설공주는 예쁘장해서 자동차를 얻어타고 도시로 가서 직장도 구했다. 키 작은 일곱 남자를 위해 집안 일이다. 월급은 없다. 모두들 키가 작아 경마장 기수로 일했다. 일곱 난장이들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돈이 생기는 족족 경마에 쏟아부었다. (기수는 배팅을 하지 못하지 않나?)

백설공주는 그드르이 돈을 관리하게 되었다. 성으로 가서 왕비의 마법 거울에게 내일 경마에서 우승마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매일 매일 거울에게 물어 백설공주외 일곱 난장이는 금세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만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는 실없는 질문말고 실속있는 질문을 한 백성공주가 왕비보다 백 배는 똑똑한 거야. 그렇지?

로알드 달이 정말 백설공주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글을 썼을까? 이 책이 초등학교 5,6학년 추천도서이다. 아이들에게 권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중학생들의 토론 교재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로알드 달은 이 몇 편의 패러디를 아이들이 아닌 어른을 위한 동화로 쓴 것이 아닐까. 혼란한 세상과 탐욕스런 인간을 비꼬면서.


책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편의 우화가 실려 있다.

신데렐라는 왕자를 싫어해
냄새나는 아이, 잭
백만장자가 된 백설 공주
금발머리의 최후
빨간 모자와 모피 코트
아기 돼지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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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돈 버는 자유기고 한번 해볼까?
황성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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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를 위한 개요서 <글쓰기로 돈 버는 자유기고 한번 해볼까?>에 나오는 "기사 효율적으로 작성하는 방법"이다. 기사 작성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인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

책에서 말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소하다고 무시하면 안된다. 몇 문장으로 다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주제을 명확히하고 끝까지 작성하라. 전체를 음미하면서 수정하라. 글을 쓰는 이의 관점아니라 읽는 이를 생각하며 써라. 마지막으로 입에 잘 붙지않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문장이 매끄러운지 소리내어 읽어보라. 눈으로 읽는 것과 달리 문장이 보인다.



기사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


1. 기사의 주제를 명확히

우선 기사의 주제를 언제나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 기사 기획 단계부터 주제를 명확히 하고 내용을 전개할 때 항상 주제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
주제를 정확히 하면 자료 취재부터 글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절약된다.


2. 본문이 안 풀린다면 서두를 다시 쓰기

서두를 쓴 다음 본문 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서두를 다시 쓰는 것이 좋다.
서두를 쓴 상태에서 본문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고치는 일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그 때 서두를 다시 써보면 본문이 잘 풀릴 수 있다.


3. 고치기는 나중에

기사 고치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기사를 쓰면서 고치지 말고 전체를 써놓고 난 다음에 고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4. 시간적 여유를 갖고 세 번 검토

시간적 여유를 두고 검토하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구성상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표현이 잘못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전체 글의 구성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내용상 문제가 되는 것은 없는지, 표현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5. 독자의 질문 의식

기사를 쓰면서 독자의 질문을 의식하라.
기사를 쓰고 난 다음 독자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필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다.


6. 큰 소리로 읽어본다.

다 쓴 뒤에 큰 소리로 읽어본다.
소리내어 읽어보면 어떤 내용이 잘못되었고 표현이 어디가 문제가 되며 맞춤법이나 오탈자 등이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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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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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상을 등진 최성일의 유고집이다. 서평을 밥벌이로 하였기에 이 책도 그의 서평을 모은 책이다. 고인이 되었기에 머리말은 그의 아내가 대신 썼다. 아내의 "머리말을 대신하여"를 보고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볼 때는 적어도 손을 씻고 봐야 한다"는 것은 그의 결벽증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었다. 지저분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은 책에 대한 결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결레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결레를 할 것이다. 이곳 저곳 책이 널브러져 있는 책방에서 책을 보는 것이 조그만 나의 소원이다. 저자의 책에 대한 예의는 이덕무의 그것과 닮아있다.

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책장을 넘기지 말고, 손톱으로 줄을 긁지도 말며, 책장을 접어서 읽던 곳을 표시하지도 말라. 책머리를 말지 말고, 책을 베지도 말며, 팔꿈치로 책을 괴지도 말고, 책으로 술항아리를 덮지도 말라. 먼지 터지는 곳에는 책을 펴지도 말고, 책을 보면서 졸아 어깨 밑에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서 접히게 하지도 말고, 전지지도 말라.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지지 말고, 힘차게 책장을 넘기지도 말며, 책을 창이나 벽에 휘둘러서 먼지를 떨지도 말라.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 이덕무)




이 책에 실린 서평은 101편이다. 왜 101편인지에 대해 고심을 했다. 심오한 의미의 편집이 있다. 백(百)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백은 많음을 뜻한다. 백 개의 성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백성(百姓), 여러학자들인 백가(百家), 모든 벼슬아치들인 백관(百官), 재산이 많은 사람인 백만장자(百萬長者), 여러 가지 방법인 백방(百方), 온갖 약인 백약(百藥) 등등. 백은 또 완전, 완벽, 영원, 무결점 그리고 극(極)을 다한 수이다. 그래서 흔히 100점을 만점(滿點)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인간의 수명 즉 천수(天壽)를 백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백에 일을 더한 것은 백을 넘어선 극대치를 의미한다. 즉 101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절대적인 가치의 표현이다. 이 책에 수록된 101편의 서평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책에 대한 서평이며 완벽을 넘어선 서평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책에 대하여 서평을 할 수 없다. 많은 책들이 계속이 나오고 사라지며 또 나온다. "헌 책방에 한번 등장한 책은 꼭 다시 나타나듯이 절판된 책도 서점에 거듭 선을 보게 마련이다(34쪽)"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서평도 다시 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다시 그 책을 읽듯이 읽힐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책에 실린 101권의 책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안된다. 너무 적은 숫자라 차마 밝히기가 힘들다. 이 책에 실린 책들이 꼭 좋은 책은 아닐거야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자 한다. 몇 권은 읽고자 하여 위시리스트안에서만 몇 년을 헤메고 있는 책도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내가 모르던 책 몇 권을 만날 것이다. 또 그 책이 나에게 다른 책 몇 권을 연결해 줄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그 연결고리의 한 부분이다.

독서는 우연이란 없다.
나의 독서의 원천은 모두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
파스칼, 라신, 지드 등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프랑수와 모리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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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메를 고쳐매며
이문열 지음 / 문이당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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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도 정치적 편향으로 욕을 그의 공만큼이나 먹고 있는 작가중에 하나이다. 얼마전 알라딘에서 구매한 그의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매며>를 읽었다. 다른 글들은 저자의 말처럼 12년만에 산문집을 엮었고 '이것 저것 건드린 잡문(?)들'이기에 각기 읽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이다.

어떤 일을 왜 하는가란 물음은 한마디로 그 일을 하는 목적을 묻는 것이고, 목적이란 대개 그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도를 말한다. 그리고 그 적극적인 의도는 크게 두 단계로 형성된다. 첫째는 어떤 가치의 존재를 인지하는 단계이고, 다음은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 자기를 내던질 결의를 하게 되는 단계이다.
그중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에서 자신의 문학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더하여 세상 사람들이 "문학을 통하여 어떤 가치를 가지고 실현하고자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자신의 변이다.

+

젊은 소설가 지망생이던 나를 늘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등단한 뒤에도 대답하기도 쉽지만은 않았던 물음에 이제 와서 다시 받고 아득한 느낌을 받는다. 왜 문학을 하는가. 너는 왜 문학을 하는가.

(...)

등단 이듬해인가, 어떤 잡지사가 마련한 최인훈 선생과의 대담이다. 그때 나는 최 선생님은 왜 소설을 쓰는지 진심으로 궁금하여 여쭈어 보았다.

그걸 왜 내가 대답을 해야 하나? 소설이란 내가 창안한 것도 아니고, 또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면, 몇 세기나 존손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미 가치를 승인받고 존속되어 온 소설이란 문화적 제도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한가.

선생님은 대강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내게는 충격이었다. 당신의 작품에 담겨 있는 그 엄청난 관념선네 비해 그 답이 너무 간명하고 단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재활용하기에는 오히려 수월해, 그 뒤 얼마간 나는 왜 문학을 하느냐는 물음을 받으면 곧잘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하지만 내 나이 마흔을 넘기고 이제는 속절없이 소설가로 늙어 죽게 되리라는 예감이 강해지면서 내 마음도 달라졌다. 여전히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대응이 너무 성의 없게 들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고백하듯 털어놓게 된 게 소극적 선택의 개념 사인성이었다.

문학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아서가 아니라 덜 싫었기 때문이며, 난파한 내 삶의 바다에서 가장 헤어 가기 좋은 곳에 우연히 있었던 돌섬 같은 것이었다는 소극적 선택의 내용이다. 또 문학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나를 으뜸가는 독자로 삼는 사적 행위라는 것이 사인성의 논리다. 딴에는 겸손하면서 진솔한 답이라고 믿으면서 한 10년 다시 그것으로 잘 버텨 냈다.

그런데 50대도 중반을 넘기면서 보니 아직도 그것만으로는 답이 궁색해 보인다. 그동안 문학에 바친 만큼이나 많은 빚을 지고, 좋아하는 쪽으로부터든 싫어하는 쪽으로부터든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아와서 일까, 늦어서야 문하의 공리적 실용이란 것에 눈이 떠졌다. 문학은 소극적 선택으로 가 닿을 수 있는 우연의 섬이 아니며, 사인성만으로는 결코 온전하게 영위될 수 없는 삶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문열 <신들메를 고쳐매며>(문이당, 2004) 중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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