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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저만 잘났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싸움을 건다. 친구도 없다. 그래도 공부는 늘 1등이니, 식구들은 아무 말도 못한다. 그 아이는 “공부는 예술”이라며 늘 혼을 실어 공부한다고 말한다. 등수는 따라온 것뿐이라며.
애플의 모습이다. 스티브 잡스가 또 그렇다. 애플은 잡스의 디엔에이를 그대로 받아 자란 나무다. 잡스는 자아도취적이며, 변덕스럽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른다. 애플이 그렇다.
애플은 또 현대 경영학의 검증된 이론을 완전히 거스른다. 정보공유란 단어가 없다. 온통 비밀스럽다. “애플 직원들은 회사에 목수가 나타나면 뭔가 중요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새로운 벽이 세워지고 거기에 문이 생기며 보안장치가 마련된다. 투명했던 창문은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코팅 처리된다.”
지은이의 관심은 ‘못된’ 애플을 드러내자는 게 아니라 이런 기업이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는가에 있다. 그리고 욕을 먹는 바로 그 못된 짓들에서 비결을 찾는다. ‘아니오’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애플 제품 개발의 핵심 교리이다. 좋은 제품은 배려에서 나올 수 있지만 세계 최고는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누더기가 되는 일쯤은 있을 수 있다. 애플은 직원들끼리 궁극적으로 꼭 알아야 할 것만 공유한다. 제품에 악착같이 필요한 기능만 남기는 철학과 같은 맥락이다. 관심을 꺼야 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해야 최고가 나온다.
애플 직원들은 일을 즐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최고 시기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애플에서 일하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내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 그런 회사에서 일한다는 직원들의 자부심은 잡스가 남겨준 유산이다. 그것은 애플을 지탱해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일 것이다.”
도킨스가 제안하는 상상 실험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주아주 오래전 우리가 태어나기 한참 전으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해보자. 당신 사진을 한 장 꺼내놓고, 그 위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의 사진을 차례로 쌓아가는 상상 실험이다. 고조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1억8500만장째 사진엔? 우스꽝스럽게도 물고기 한 마리가 찍혀있다. "그렇다. 당신의 1억8500만 세대 전 할아버지는 물고기였다!" 진화가 워낙 점진적이어서 한두 장의 사진으로는 그 과정을 전혀 발견할 수 없지만, 사진이 쌓여 갈수록 호모 에렉투스, 유인원, 원숭이를 닮은 포유류 등을 거쳐 물고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진화의 어느 순간 갈라져 나온 지구의 모든 생물들은 결국 '친척'이다. 세상의 어떤 신화보다 훨씬 경이롭지 않은가?"(53쪽)
책은 최소 원자에서 시작해 무한 우주까지 광범위한 자연현상을 설명한다.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사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왜 밤과 낮, 겨울과 여름이 있을까' '세상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각 장에 하나씩 총 12가지 질문을 던진 뒤, 신화나 종교가 내놓은 답을 먼저 꺼내고 과학이 내놓은 답을 비교해 보여준다.
가령 무지개에 대한 설명을 보자. 추마시 부족 설화에 의하면 무지개는 여신이 인간들을 섬에서 대륙으로 이사시키려고 하늘에 건 다리이고, 길가메시 서사시에선 무지개가 신이 인간에게 다시는 대홍수를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의 징표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뉴턴의 실험을 끌어와 '과학의 답'을 들려준다. 뉴턴은 프리즘이라는 삼각형 유리를 통해 무지개를 만든 뒤 흰빛은 모든 색깔의 빛이 섞인 것임을 증명했다. 무지개에 대한 탐구는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별들의 위치는 물론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과학적으로 입증돼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시적 마법'이란 표현을 썼다. "현실 세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마법에 비하면 초자연적 주술과 무대 속임수는 하찮은 싸구려로 보일 뿐이다." 철저한 과학 신봉자다운 말이다.
책은 세계 빈곤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지금까지의 경제학자들과 다른 시각을 들이댄다. 많은 국제적 원조에도 빈민이 줄지 않는 이유는 정부나 비정부기구들이 그들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난은 곧 굶주림’ ‘가난한 사람에게는 식량이 중요하다’는 1차원적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비합리적이고 게으르며 무능하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책에 따르면 빈자들은 건강과 재테크 등 여러 분야에서 미래보다는 현재에 유익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빈자들이 치료가 아닌 예방에 무신경하다고 해서 건강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가 이들에게 미래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대신 ‘선거공약식’ 물량 원조만 반복한 탓이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저자들의 제안은 꽤 실용적이다. 곡물 원조보다는 임산부와 유아에 영양제를 공급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영양상태 개선에 효과적이며, 빈곤층의 보험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미래소득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 도입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쉼 없는 노력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작은 아이디어가 언젠가 가난의 뿌리를 근절할 수 있다는 확신 없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세계 곳곳을 현장 조사한 배너지와 뒤플로는 소박한 해법을 제시한다. 바로 넛지(nudge).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것이다. 두 사람은 우선 '무작위 대조실험'이란 방법으로 개선책을 찾아봤다. 인도의 우다이푸르 지역이 대상. 이 지역 주민들은 아이가 돌이 지나기 전 집 밖에 나가면 악마의 눈에 띄어 일찍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다. 연구팀은 마을을 선정하고 세 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는 예전 방식 그대로 놔두고, 두 번째는 간호사가 예방접종을 독려했다. 마지막 그룹은 아이를 데리고 예방접종을 받으러 오면 콩 2파운드를 주고, 필수 예방접종 5가지 모두 받으면 스테인리스 쟁반세트를 줬다. 6개월이 지나자 '콩·쟁반 그룹'의 접종 완료율은 38%. 두 번째 그룹은 17%, 첫 번째 그룹은 6%였다. 세계적 기준엔 못 미치지만 콩과 쟁반은 미신도 어느 정도 깨는 의미 있는 유인책이 된 것. 저자들은 "넛지 방식은 특히 주어진 일의 혜택에 확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작물을 수확해 판 돈을 금방 써버리는 바람에 비료를 뿌릴 철에는 돈이 없는 케냐의 농민을 위해 실시한 '비료 상품권', 차(茶)·군것질·술·담배 소비를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자립할 수 있는 소액을 대출해주는 인도의 소액금융 등의 사례는 자제심을 강제해 저축으로 이어지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 그 밖에도 배너지와 뒤플로는 정부, 지자체, NGO, 개인이 각각 빈곤퇴치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양초제조업자 아들인 벤저민 프랭클린에서 아칸소주 촌뜨기인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통계들은 이를 증거한다. 미국 400대 부자 중에서 부를 물려받은 이가 1980년대 중반에는 200여명이었지만, 2004년에는 37명뿐이었다. 2005년 현재 미국인 4분의 3은 계급 상승 기회가 30년 전과 같거나 그보다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연줄과 배경보다도 성실과 교육이 성공의 주요 요소라는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을 이룬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믿음과 실제 현실과의 거리다. 한편에선 계급의식 및 언어가 퇴조하는 ‘계급의 종말’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계급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지는 계급 재편성이 이뤄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소득을 다섯 단계로 나눴을 때 1980년대에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올라가는 가족은 1970년대보다 줄었고, 1990년대에는 더 줄었다. 미국의 사회이동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활발하지 않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이 책에서 활용하는 계급 판별의 기준은 교육, 소득, 직업, 재산이다. 이 네 기준들이 서로 결합하여 한 개인의 계급적 위치를 결정하고, 이는 다양한 불평등을 낳는다. 학력·소득·직업·재산의 정도에 따라 건강, 수명, 배우자 선택, 종교, 교육 기회, 소비, 거주 등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뚜렷한, 결코 쉽게 건널 수 없는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이 차이에 담긴 불평등의 현실을 이 책은 옴니버스 영화를 보듯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미국사회 불평등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재생산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책이 주는 선물의 하나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미국사회와 우리 사회는 분명 삶의 방식과 사회생활이 적잖이 다르다. 그러나 책에서 펼쳐지는 불평등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갖게 한다. 교육에 모든 것을 걸지만 계급 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지고, 강남과 강북으로 대변되는 주거 지역에 따라 지리적 재배치가 진행되며, 명품소비와 이를 추종하는 짝퉁소비, 그리고 짝퉁소비마저 허락돼 있지 않는 하층계급 소비문화의 풍경은 바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지 않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미국과 유사한 불평등 구조에 이미 도달해 있다. 보론에서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밝히고 있듯이, 2009년 미국과 한국에서 상위 10%의 임금과 하위 10%의 임금 비율은 각각 4.86과 4.74를 기록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 1위와 2위였다. 지난 4월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가운데 전체 소득에서 상위 1%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은 17.7%로 1위를, 한국은 16.6%로 2위를 차지했다. 사회 양극화와 계급구조화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미국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불평등의 해법에 대해선 암시만 할 뿐 충분히 펼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불평등을 가져오는 원인들을 다시 생각하면 해법은 분명하다. 하층 계급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부여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동시장을 개혁하며, 소득 및 재산에 대한 전향적인 조세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그 대안이다. 불평등을 치유하며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튼튼한 복지국가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 사라져가는 계급 사다리를 다시 건실하게 만들고,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평등, 그리고 이를 통한 더 많은 정의를 성취해 가는 것은 민주화 25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시대적 과제다.
랜더는 고학력의 리버럴한, 혹은 리버럴한 체 하는 백인을 과녁으로 삼는다. 그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줄 의료서비스에 모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무상의료를 열렬히 지지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건강할 때만 그렇다. 자기가 MRI를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 말이다. 자식이 없을 때, 공립학교를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랜더의
글은 중산층 백인들이 '쿨'하게 보이려는 과시욕을 음악, 음식, 패션, 영화, 드라마 같은 일상에서 찾아낸다. "스테레오검이나
플럭스블로그가 없다면 죽어버릴 거야." "조애너 뉴섬이 오늘날 가장 독창적인 아티스트야." 독자들은 스테레오검이나 조애너 뉴섬을
몰라도 전혀 불안해할 필요 없다. 생소한 인디음악을 즐길수록 음악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이 책엔
이런 리스트가 150가지나 실려 있다.
이들은 선댄스, 토론토, 칸 영화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주류'에 속하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거의 강박적으로 외국 영화와 인디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낫다고 말한다. "요즘은 세르비아 영화에 푹
빠져 있거든요. 밴쿠버 영화제의 세르비아 영화 회고전은 정말 대단했어요" 하는 식이다.
이들은 유기농 홉만 사용하는
소규모 맥주집을 선호하고, 마라톤과 인디밴드를 즐기며, 건축에 관한 크고 두꺼운 책을 선물 받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애플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창의적이고 특별한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한다. '창의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창의적으로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창의적으로 DVD를 시청하기 위해'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같은 애플 제품을 사랑한다.
번역서는 '미국판
강남좌파의 백인문화 파헤치기'란 문구를 표지에 넣어 호기심을 유발한다. '백인은~' 하고 시작하는 랜더의 글이 지나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거나, 견강부회도 있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쿡쿡 하고 웃게 만드는 대목이 여럿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