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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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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금언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의 일상적 존재를 정의하는 더욱 분명한 금언은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개인은 매일 수백 번의 소비와 관련된 결정을 한다.

인간은 매일 소비하므로 매일 그것과 관련된 결정을 한다. 소비라고 할 수 있지만 선택이다. 아침을 먹을까, 말까? 지하철을 탈까, 차를 몰고 갈까? 온종일 선택의 연속이다. 이 선택의 대부분이 소비를 위한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토대를 세운 핵심적인 연구가인 텍사스대학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버스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이 제공하는 혜택을 무시하기에는 그 효용이 너무 크다. 이 책에 담긴 주요한 진화론적 원칙을 삶과 일에서 활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이다. 반대로 이를 활용하는 사람은 제품과 아이디어를 놓고 다투는 시장의 진화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자가 될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행동을 다루는 모든 학문 분야로 침투하고 있다. 데이비즈 버스 교수는 "수년 동안 나는 마케팅, 나아가 비즈니스가 특히 진화심리학적 분석에 맞는 이상적인 분야가 될 것이다."라고 한다. 인간의 행동은 단순한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인간 본성과 행동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과학으로,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의 현대적인 원리를 종합하여 삶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석한다.


진화심리학 進化心理學 Evolutionary Psychology

인 간은 진화한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합리적인 계산기로 되어 있지는 않다. 진화 심리학은 그 대량의 연구로 로크(John Locke)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설을 반증해 왔다. 로크의 견해는 인간의 뇌는 동물의 그것과 달리 본능이 적고 타블라 라사(백지상태)이며 교육이나 문화 등에 의해 어떠한 것이라도 학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에 대해 진화 심리학의 연구는 인간의 다양한 본능이나 재능을 발견ㆍ분류하여 인간에게는 간단하게 학습할 수 있는 것, 간단하게 학습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것의 하나는 인간에게는 언어를 배우는 재능이 본능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기술에서는 언어를 배우는 컴퓨터는 그 구조조차 상상할 수 없다. 역으로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수학을 배우는 능력 등이 없어 컴퓨터를 당해 낼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이 합리적ㆍ수학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의 견해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 심리학은 합리성이 이상적인 견해라는 전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합리 선택론의 이상(理想)대로 행동하는 동물은 진화적인 경쟁에 패하여 도태되어 간다는 연구도 보고되어 있다(Cosmides and Tooby, 1994).

진화 심리학의 전제의 하나는 인간의 신체는 오랜 유목시대에 진화하였기 때문에 그 신체뿐만 아니라 행동도 현대사회가 아닌 유목사회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것으로서 인간의 신체는 먹을 것이 적은 환경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풍부한 현대사회에서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뚱뚱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로 인간의 심리는 500명 이하의 사회에 가장 적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그리고 특히, 국제적ㆍ이문화(異文化) 교류의 사회에서 생활하게 된 다음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단, 이러한 문제는 유전자에 의한 행동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을 제시하고 있다. 진화론은 심리학에 응용되어 많은 업적을 올리고 있지만 다른 사회과학에 응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심리학은 어떠한 의미에서 사회과학의 기본이기 때문에 심리학에서 파생하여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올리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Ostrom, 1988). 심리학에서 사회과학에 응용할 수 있는 사례로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거짓을 간파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게임과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게임은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심리학에서 실증되어 있는데 이것은 투표행동의 연구에 있어서 플레임 이론과 유사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_《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사전연구사



데이비드 버스 교수도 말을 했지만,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새로운 지식의 소비도 진화적 과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의 핵심 전제, 즉 진화심리학이 소비 행동 나아가 비즈니스 학문의 연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종의 진화적인 선택을 거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나는 머지않아 다수 소비학자, 나아가 비즈니스 학자가 인간의 마음은 성 선택과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라고 확신에 차 말한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은 비주류인 행동경제학에 비해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가 인용한 로빈 던바의 지적이 옳다. "진화론적 전근법은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개별적인 사회과학을 단일한 지적 이론 틀로 통합할 기회를 제공한다."

단 편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소비에 관한 이야기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면 근원적인 진화심리학에 과한 이해가 필요하다. 깊이 이해하려면 추천사를 쓴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을 필요하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아서는 나무가 얼마나 큰지, 숲에서 그 나무의 위치가 어떠한지, 숲이 얼마나 웅장한지 알지 못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며 그것이 전부인 양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장님의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끼리 전체 모습이 아니므로 답은 아니다. 조선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라는 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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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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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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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불완전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합리적인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주류 경제학과 비교하면 비주류 경제학인 행동경제학은 출발부터 다르다. 기존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행동경제학은 '합리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개념에 반대한다. 개인은 주어진 여건에서 항상 자신의 효용이나 기대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 시장은 가격신호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균형 상태로 향하게 된다는 게 미시경제학의 기본 토대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사람의 행동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은 '왜 속이면서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며 거짓말을 한다. 당신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 그렇게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착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기회가 된다면 어느 정도 범위에서 사소한 부정행위를 한다. "부정행위를 지배하는 요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흥미로운 요인에 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 대부분 행동경제학 관련 책이 이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처음 한두 권 읽을 때는 실험에 의한 전개 방식이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이든지 상관없이 여러 권 읽으면 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설명하려 한다. 그래서 흥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행동경제학도 진화하여 일반적인 불합리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벗어나 새로운 주제로 접근한다. 이 책은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 하는 사람'이다.

전설적인 골퍼 보비 존스는 러프에서 공을 치려 할 때 조금 움직이는 공을 봤다. 나중에도 이런 사실이 발각될 우려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벌타를 받았고 결국 경기에서 졌다. 기자가 알게 되었고 존스는 이 일을 기사로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내 행동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거나 마찬가지 일이다. 이렇게 말했다.

보비 존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연한 정직한 행동을 언론이나 사람들은 대단하게 말한다. 이는 대부분 사람이 정직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이 자신은 정직하고 착하다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덕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 어떤 선 하나를 긋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선의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어느 선까지 부도덕함을 인정해야 하는지가 더 큰 문제이다.

왜 속이면서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하는가. 책에서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집단에 속한 개인은 더 높은 수준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데, 이는 부정행위가 자신이 좋아하고 보살피는 사람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의 부정행위로 다른 사람이 이득을 얻는 경우에 하는 부정행위를 이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주변 사람의 복지를 신경 쓰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환자와 친해 대하기 쉬울수록 환자에게 자기 주머니가 보다 두둑해질 수 있는 치료법을 권한다. 한편 이런 치과의사와 오래 알고 지낸 환자일수록 조언을 보다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데 따른 장점은 분명 많다. 그러나 이런 지속적인 인간관계에는 추가적인 비용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려 한다. 사람에게는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해주는 통제장치가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열 수 있는 사소한 자물쇠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

사람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들므로 도덕성에 관한 단기간의 집중 훈련이나 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업과 대학에서 행하는 윤리 교육도 많은 부분에서 이처럼 비효율적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결과를 좀 더 일반화하면 윤리적인 영역에서 장기적인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도전할 만한 가치는 크나큰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정직하지 않은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음의 사례가 이 책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말해준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계속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장치를 필요로 한다.

자물쇠는 정직한 사람을 정직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하려고 달아놓은 장치일 뿐이다.

세상 사람 중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또 1%는 어떻게든 자물쇠를 열어 남의 것을 훔치려 한다. 나머지 98%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동안에만 정직한 사람으로 남는다. 이 삶은 강한 유혹을 느끼면 얼마든지 정직하지 않은 사람 쪽으로 옮겨간다. 당신이 아무리 자물쇠로 문을 꼭꼭 잠가도 도둑이 털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단신 집에 침입할 수 있다. 자물쇠는 문이 잠겨 있지 않았을 때 유혹을 느낄 수 있는 대체로 정직한 사람의 침입을 막아줄 뿐이다.

사람은 자기가 감시받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대개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자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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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5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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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너도나도 인문학이니 고전이니 말을 한다. 모두 《논어》를 말하거나 공자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인문학도 고전도 말만 한다고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고전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바뀌어야 한다. 고전을 팔아 책을 내어 독자를 현혹하는 일련의 저자에게 현혹되어 실상 그들이 말하는 고전은 읽지 않고 덧붙인 해설만으로 고전을 읽지 않은 것을 위안받으려는 일반 독자가 태반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고전이 고전이라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고전은 무언가에 '유용하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고전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는 그 시대의 인물과 시간에 살아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된다. 讀書尙友
_맹자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 시대의 거대한 시간을 살아보기 위해서다.
_강유원 《인문고전 강의》


다른 하나는 고전을 현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오늘날의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데 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 溫故知新
_공자

고 전이 고전인 까닭은 바로 끊임없는 해석의 연속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늘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고전이 되는 것이다. 그럴 여지가 없다면, 그것은 고전이 아니라, 그저 '오래된 책'으로서 고서古書일 뿐이다. 고전의 가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고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시대마다 거듭 새롭게 해석되면서 오래도록 고전의 명성을 누린다. 새롭게 해석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전이 아니다. 죽은 자의 찌꺼기로 남을 따름이다.
_정천구 《맹자독설》

고전을 다시 읽게 되면 전보다 더 많이 자신을 발견한다.
_클리프턴 패디먼 《평생 독서 계획》

고전을 읽는 목적은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데 있다.
_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_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고전을 읽어야 하는 으뜸가는 이유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시대, 우리와 사뭇 다른 문화와 사유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_ 데이비드 덴비

고 전은 결코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고전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힘을 지닐 때에만 고전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힘은 재해석을 통해서 드러나며, 재해석은 늘 해석자의 구체적인 체험,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맹자》가 고전이라면 거기에 담겨 있는 힘이 재해석을 통해 용틀임을 할 것이고, 그 힘은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력을 줄 것이다.
_정천구 《맹자독설》

말 이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공자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서도 텍스트를 넘어 공자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 공자 마음을 이해하려면 공자의 말 한마디를 음미, 또 음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자가 아파했던 삶의 흔적을 이해해야 한다. 공자처럼 아파보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곰삭아 공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공자의 말도 제대로 해석되는 법이다.
공 자의 말만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면, 공자의 마음에 이르기란 어렵다. 공자의 말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더라도 공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의 문제를 공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도 없다. 고전을 읽는 목적은 결국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데 있다. 논어를 읽는 가장 중요한 목적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_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이 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을 왜 읽는가>에서 열네 가지로 고전을 정의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일러준다. 고전을 읽어야 하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전에 국한하지 않고 인문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존 S. 메이저과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독서계획》과 최효찬의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를 참조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고전을 왜 읽는가에 대한 물음에 관한 해답은 이탈로 칼비노가 정답을 말해준다. 고전에서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안 읽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만 하자. 지금 책 읽기 시작하자.


고전을 왜 읽는가? _이탈로 칼비노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 를 다시 읽고 있어" 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다시 읽고 있어" 라고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동 사 '읽다' 앞에 붙은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의 궁색한 위선이다. 그들이 안심하도록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아무리 청소년기부터 폭넓게 책을 읽어 왔다 해도 항상 읽지 못한 중요한 작품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작품을 처음 읽을 때 매우 독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러한 즐거움에는 어린 시절 읽었을 때 느끼는 것과는 매우 다른 기쁨이 있다. 모든 경험이 그러하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읽는 책 모두에 독특한 흥미와 중요성을 부여하게 마련이다. 반면 성인이 되어 읽으면 더욱 세밀한 부분과 다양한 면모와 그 의미를 감상한다.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읽을 기회를 잡은 사람만이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 린 시절에 읽은 책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거나 전혀 떠올릴 수 없다 해도) 성인이 되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러한 내면의 핵심은 이제 우리의 내적 메커니즘의 일부로 남아 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몰라도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은 특별한 잠재력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그 씨앗으로 남아있다.


3. 고전이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책이다. 그러한 작품은 우리의 상상력 속에 잊을 수 없는 것으로 각인될 때나, 개인의 무의식이나 집단의 무의식이라는 가면을 쓴 채 기억의 지층 안에 숨어 있을 때 그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 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을 재발견하는 경험을 반드시 한다. 작품은 그대로지만, 우리 자신이 작품 자체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또 작품을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따라서 '읽는다'라고 말하느냐, '다시 읽는다'라고 말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4.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이 들게 해 주는 책이다.


5.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6.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7. 고전이란 이전에 행해졌던 해석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며, 그것이 한 문화 혹은 여러 다른 문화에 (더 단순하게는 언어나 관습에) 남긴 과거의 흔적을 우리의 눈앞으로 다시 끌어오는 책이다.

고 전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이전에 그 책에 대해 생각했던 이미지와 비교해 보면서 새삼 놀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작품에 대해 이차 서적이나 주석본 · 해설서 등을 가능한 피하고 원전을 직접 읽으라고 계속해서 충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8.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의 구름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

고 전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고전에서 잘 아는 것을 (혹은 잘 안다고 믿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고전 작품이 그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것이라는 사실을(혹은 그것이 작품과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한다.


9. 고전이란 사람으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 창의적인 것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

작품을 대할 때 아무런 불꽃도 일지 않는다면, 독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무감이나 조건 없는 경외의 관점에서 고전을 읽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직 작품이 좋아서 읽어야 한다. 학교에서 읽는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자유롭게 읽는 때에야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


10. 고전이란 고대 전통 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보여주는 모든 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11.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자신을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12. 고전이란 그것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13. 고전이란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 소음(잡음)으로 물러나게 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이 이 소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4. 고전이란 배경 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대한 글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 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고전으로 채운 서가를 만드는 것뿐이다. 이 서가의 반은 읽은 책과 의미 있는 책으로, 그 나머지 반은 읽을 책과 의미 있을 책으로 채워진다. 또한, 우연한 발견과 경이를 선사할 책을 위해 빈 책장도 마련해야 한다.

고전은 무언가에 '유용하기' 때문에 읽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고전은 읽지 않는 것보다 읽는 게 낫다는 것이다.


덧_
이 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의 <왜 고전을 읽는가>를 발췌했다. 약간 어감이 이상한 부분을 수정했다. 아직도 '~책이다' 는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고전이란' 으로 시작하였기에 다른 말로 수정하기 어렵다. '고전은'으로 수정한다면 좀 더 매끄럽게 글을 마무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보다는 "고전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가 반복없이 사용하므로 더 낫다. 고전이 책을 의미하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역자의 원글을 보고자 한다면 알라딘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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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인문학을 만나라 - 한 주에 한 권 文史哲 독서법
최효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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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권하는 책은 많다. 동양인보다는 서양인에 더 적합한 《평생 독서 계획》이 그 중에서 제일이다. 간략한 소개와 리뷰로 평생 읽어야 할 고전을 소개하고 읽기를 권한다. 모든 소개서가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에 휘둘리면 안 된다. 참조하고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이전에는 소개서에 몸을 맡겨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평소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책을 읽을지 물어보면 제일 먼저 해주는 말이 있다. 책에 커다란 의미 두지 마라. 책이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책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 책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주체는 항상 나 자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읽는 것이 몸에 배어야 한다. 책과 한몸이 되어야 한다.

몸에 배게 하기까지는 안내인이나 지침이 필요하다. 《평생 독서 계획》과 같은 목록을 제공해주는 책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또한, 우리에게 자신이 주체가 되는 과정으로 인도해 주는 등대 역할을 해준다.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는 특이한(?) 책이다. 목록을 제공하는 책이지만 소개하는 것만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1년을 52주로 나누어 주마다 읽어야 할 책을 권한다. '강유剛柔의 원칙'에 따라 계절과 시기에 따라 문文 · 사史 · 철哲을 달리하여 권한다. 저자가 말하는 '강유剛柔의 원칙'이란 "강한 날에는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서를 읽으면 좋다."라는 현인의 충고이다. 강한 날이란 스트레스를 받고 울분으로 감정이 격한 날이며, 마음이 울적하고 비관적이고 가라앉은 날을 부드러운 날이라 했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책을 읽는가?" 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왜 독서를 하는가? 사람마다 책을 읽는 이유도, 습관도 다르겠지만, 독서를 통해 꼭 성공해야겠다는 거창한 다짐을 하며 읽을 필요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분명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성이 되살아나고 풍부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옛 성현의 말씀대로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강유의 원칙'을 지켜 독서를 하는 것 또한 하나의 독서법이 될 것이다.


세어보지 않았지만 10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제목에서 '인문학'이라고 고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 범주의 문文 · 사史 · 철哲 외에도 근현대 교양을 소개한다. 이러한 종류의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읽는 이를 모두 만족해 줄 수는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읽는 이마다 다르지만, 나에게는 소개한 책 중 왜 이 책이? 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책 중 태반이 읽지 않고 선입견을 품고 있다. 각자의 처지에 맞추어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이 어려우면 책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은 인문독서 입문자들에게 ‘1년 52주, 한 주에 한 권씩 인문학을 만날 수 있는’ 체계적인 독서 방법론을 담고 있다. 매주 하나의 칼럼을 통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인문학적 프리즘으로 들여다보고, 그 주제에 관련한 인문학책을 함께 읽어 근원을 파헤치는 인문학적 사고를 키우고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자는 것이다.

한 주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 봐야 일 년에 50권 읽는다. 읽은 책 수에 얽매일 필요없다. 처음에는 완독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고 이 책이 권하는 대로 한 주씩 따라가다 보면 일주일에 두 권 이상, 한해 100권은 충분하다. 여기에 약간의 걸림돌이 있다. 안내하는 100권의 책이 모두 한 권짜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제안하는 책을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조절하여 책을 읽는 힘이 생긴다. 사실 권하는 책을 매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따라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절반만 성공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마흔, 40대에게만 국한된 책이 아니다. 마흔보다는 30대에 더 적합한 책이다. 왜냐하면, 불혹不惑이 아니라 부록附錄 같은 마흔을 맞지 않으려면 30대가 더 중요하다. 중요한 30대를 후회 없이 보내려면 꼭 이 책이 아니어도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 수 있는 책을 따라 인문학, 문文 · 사史 · 철哲에 빠져 보자.

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의 장점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책을 권하지만, 꼭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을 말하는 데 책이 없다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이다. 책 소개에 나온 "인문고전에 입문하려고 하는 40대들에게 쉽고 즐겁고 편안하게, 마치 대중가수의 콘서트에 초대받아 온 것처럼 인문고전 읽기를 유쾌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책의 장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고전이라면 어렵게 생각하지만 어려운 책이 아니다. 다만 어렵다고 느끼는 책이다. 고전은 읽지는 않았지만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다. 이탈로 칼비노는 보통 사람들이 고전을 읽을 때 "나는 ~를 다시 읽고 읽다."라 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고전이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걸 모르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인문학 공부는 절대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의무와 강제를 스스로 부과하지 않으면 이내 게으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딱 1년만 인문학에 빠져 인문학적 내공을 다지다 보면, 100권의 인문학책도 거뜬히 읽어낼 힘이 생기고, 이는 곧 인생을 바꾸는 책 읽기가 되리라는 것이 이 책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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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저자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행위를 연구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분석했다. 소비자의 진짜 속마음을 알기 위한 도구로'마음의 MRI 찍기'방법을 소개하고 이를 실제로 적용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한국인의 다양한 삶을 잘 보여준다고 판단되는 스포츠 활동과 휴대전화 소비가 연구 주제다. 또한 디지털문화와 명품소비 현상을 통해 소비자의 소비스타일, 구매심리, 그 속에 감춰진 욕망 등을 꼼꼼히 짚어준다.

심리학, 난해한 암호 같았던 대한민국 소비자의 마음을 해독하다
왜 사람들은 ‘꽝’이 될 걸 알면서도 매주 복권을 사는 걸까? 왜 ‘오늘까지만 할인’ 혹은 ‘얼마 이상 구매 시 상품권 증정’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지출을 하는 걸까? 점심은 김밥 한 줄로 대충 해결하고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뭘까?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이런 질문들―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준다. 특히 ‘한국 소비자’에게 궁금한 점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문화 및 정치?경제 상황 등이 다른데도 외국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해 설명하는 기존의 마케팅 도서들과 달리 이 책의 중심에는 ‘한국인’이 있다. 저자인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는 교육열, 디지털 활동, 프로 야구 붐, 명품소비 등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행위를 연구한 끝에 ‘야구 팬의 여섯 가지 유형’, ‘디지털 신인류’, ‘명품소비 심리코드’ 등 숨겨져 있던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수면으로 끌어냈다. 지금까지 소비자를 단순히 물건 팔 대상으로만 보고, ‘원인’도 모르면서 마케팅 전략을 짜느라 머리를 싸맸던 기업들에게 소비자의 행동 원인인 소비심리를 구분해 소비집단을 나누고 집단별로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트렌드, 주류를 따르는 한국인의 심리 등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누군가―기업, 정치인, 심지어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가진 남자까지!―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한 소비자 개인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담았다. 또한, 단순히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행위로만 인식됐던 ‘소비’에 ‘선거’와 ‘소통’ 등 다양한 행위를 포함시키며 새롭게 정의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는 행위와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대로 인생을 사는 것조차 모두 소비행위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소비자 인사이트’, 아니 ‘한국인 인사이트’를 발굴,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바람직한 소비’의 길을 전망한다.


이제 ‘세계화’는 일상용어다. 한국 사회에서 그 용어는 1990년대 문민정부 시절에 ‘국제화’라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가 차차 ‘세계화’로 정착한다. ‘글로벌’이라는 용어로 변형되기도 했다. 기업과 대학들이 앞장서서 그것을 유포했다. 우리는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스포츠 이벤트는 물론이거니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세계 곳곳의 뉴스들, 쏟아져 들어오는 여러 나라의 상품을 접하면서 세계화를 체감한다. 아울러 금융자본의 전 세계적 흐름이 만들어낸 경제위기를 몸으로 겪으면서 세계화의 실체를 목도한다. 이제 어린 학생들의 대화 속에서도, 팝스타의 노랫말에도 세계화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정작 세계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상황을 세계화라고 일컫는 것일까? 막상 그런 질문과 마주하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앤드루 존스는 “이제 세계화는 광범위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왜 중요한지조차 묻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저 자는 영국 런던대학교 버크벡대학의 경제지리학 교수다. 그는 “세계화는 얼굴을 바꾼 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며 “세계화를 둘러싼 논쟁 역시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정치인부터 시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온갖 변화를 일으킨 원인으로 ‘세계화’를 내세우며 환호하거나 비난”하지만, 정작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미진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양적으로 보자면) 그동안 질릴 만큼 많은 논의들, 과용·과대 포장됐던 이론들”이 범람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논의의 현 상태를 점검하고, 어떤 이론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는 중간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이 책의 집필 동기를 밝히면서 “세계화 이론의 폭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예일대 석좌교수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체론이야말로 세계화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바라본다. 물론 그것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관점이기도 하다. 세계체제론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보면서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로 나눠 권력관계와 자본주의적 양상을 분석한다. 1970년대 초반에 등장해 이후의 세계화 논의에서 커다란 줄기를 형성했으며, 세계화와 근대성의 필연적 관계를 주장한 안소니 기든스(2장)를 비롯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세계화를 연결시킨 마누엘 카스텔(3장)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세계화가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500년도 넘는 긴 역사”를 갖는다고 바라보는 공통점을 갖는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7장)은 세계화를 “경제발전의 기회”로 본다는 점에서 세계화를 긍정하는 대표적 논객들로 손꼽힌다. 또 “세계화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8장)는 ‘대안적 세계화’의 대표적 이론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권위 있는 경제학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양쪽에서 날아오는 돌을 피하기 어렵다. IMF를 포함한 세계기구의 이론가들은 물론이거니와,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논객들에 의해서도 “이상적이거나 정치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스티클리츠가 보여주는) 단언(斷言)과 일반화”에 불편한 입장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다.


‘남고, 아깝고, 원하는…’ 자기 일상의 시시콜콜한 불편함과 욕구에 주목해 이를 자기만의 작은 기업으로 발전시킨 이들이 있다. 평범한 아줌마를 ‘셰프’로 만든 4000원짜리 주먹밥 프로젝트 ‘집밥’, 집에 쌓인 책을 대신 보관해주며 대여도 하는 ‘국민도서관 책꽂이’, 퇴화된 ‘작업 본능’을 깨우려는 일반인을 위해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과 전문 공구를 비치한 공동작업실 ‘테크숍’….

책 의 부제는 ‘인터넷과 공유경제가 만들어낸 백만 개의 작은 성공’이다. 제목처럼 일상의 작은 공간,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성공들을 소개한다. 이 주인공들은 요즘 누구나 향유하는 인터넷과 작은 정보기술(IT)의 도움으로 이전 시대에 상상할 수 없던 결과물을 내놓았다. ‘커다란 작음이란 역설이 가능한 세상이 왔다. 당신도 빨리 움직이라. 변화는 시작됐다’고 책은 말한다. 매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포털 사이트를 대하며 단순한 ‘유저’로 살 것인가, 이를 이용해 인생을 바꾸고 좋은 사람들과 더 많은 가치를 공유할 것인가 중에서 선택하기를 직설 아닌 예증을 통해 권한다.

IT와 기업이라는 딱딱한 이야기에 얹은, 소설을 마주하듯 촘촘한 현장성과 디테일, 저자의 감성이 읽는 맛을 더한다. 본문만 치면 200쪽이 채 안되는 가벼운 분량과 명료한 디자인도 책의 미덕이다.



척박한 석호(潟湖)에 흩어진 118개의 작은 섬, 진흙벌에 참나무 말뚝을 박고 건물을 세워 이뤄진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창출한 부(富)에 집중한다. 실용적인 정치·경제체제, 탁월한 위기관리 시스템, 치밀한 외교술에 대한 서술이 생생해 500년 전 이야기임에도 강소국(强小國)의 생존전략 나아가 발전 모델로 삼을 만한 지혜가 있다.

요즘 재정 위기를 겪으며 신용 등급이 강등되고 있는 이탈리아와 달리 이 해상 공화국은 가능한 한 많이 모으고 적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관리했다. 뱃사람도 돈만 있으면 신사가 됐다. '돈이면 다 통한다'(Money talks)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계층 구분이 없던 베네치아의 창조 신화는 무역이었고 영웅은 바로 상인들이었다. 인내와 사업 수완, 강력한 연대로 이윤을 내는 게 미덕이었다. 베네치아는 공무원의 부패, 정실 인사는 엄하게 다스렸다.

그들이 부를 일군 또 하나의 비밀은 규칙성에 있었다. 국가 소유로 매년 경매를 통해 임대된 베네치아 상선들은 14세기 초부터 정해진 항로를 시간표대로 오갔다. 항해의 연중 패턴은 계절의 주기를 따랐다. 인도 대륙에서 불어오는 몬순(계절풍)을 이용해 동방에서 북해로 상품과 금을 운송했고, 서쪽으로 가을바람이 부는 9월이 되면 인도에서 향료를 싣고 아라비아반도로 출항하는 식이었다. 배송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1418년부터는 야파로 가는 순례자 시장도 장악했다. 환전과 도량형, 통역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가 축적되면서 이윤은 더 커졌다.

하지만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썼듯이 '성한 자가 반드시 쇠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바스쿠 다 가마가 1499년 인도에서 희망봉을 돌아 포르투갈로 오자 베네치아는 곤두박질 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비용이 덜 들고 변덕스러운 이교도를 다룰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에 베네치아 동방 무역의 성공 모델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날개를 단 사자 깃발을 배에 달고 바다를 누볐던 베니치아 상인들의 신화는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트로피에 아득히 남아 있다. 출렁이는 불모의 땅에 인구도 적은 이 나라는 무역과 외교로 일어섰다. 신중하게 대사(大使)를 임명했고 교황과 이슬람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사료가 바탕이 된 이야기체 형식으로 서술된 이 역사서는 꼼꼼하면서 힘차다. 저자는 '현대 외교는 13세기 이 해상 제국에서 시작됐고 영국과 네덜란드가 그것을 벤치마킹했다'고 썼다. 베네치아는 하나의 거대한 회사이자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이어준 통역자였다.



문고본 분량의 책 한 권을 무려 3년에 걸쳐 읽는다. 천천히, 그리고 깊이 음미하면서, 연관된 내용을 찾아 늘상 ‘옆길로 새기’도 하면서 철저하게 독파해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독자는 중학생들이다. 혼자가 아니라 200명이 교사 한 명의 지도 아래 국어시간에 교과서 대신 이 소설 한 권만을 3년 내내 읽어 나간다. 1950년부터 일본 고베 사립 ‘나다’학교에서 시작된 이 유례없는 실험적 글읽기의 수혜자들이 전후 일본 주류사회를 이끈 여러 분야의 리더가 됐다.

그들이 읽은 책은 작가 나카 간스케(1885~1965)가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준 이모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중심으로 자신의 소년기를 그려낸 자전적 소설 <은수저>(銀の匙)다. 일본 전통색이 짙은 고전급의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지도교사는 1912년 생으로, 100살을 넘긴 지금도 새 학습 계획을 짜고 있는 하시모토 다케시. 그는 중·고등학교 6년 과정을 교사 한 명이 한 교과목씩 맡아 계속 가르치는 중고등 일관학교 나다에서 이 파격적인 시도를 했고 성공했다. 그냥 읽히기만 한 게 아니라 어려운 낱말 풀이, 관련 정보와 지식을 담은 학습교재를 직접 만들어 나눠주고 학생들이 조별 토론을 하며 어떤 생각이든 자유롭게 발표하고 쓰게 하면서 그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게 만들었다.

나다학교 졸업생들은 1962년에 교토대학, 1968년에는 도쿄대학 입시에서 가장 많은 합격자를 내며 고등학교별 전국 최고의 성적을 냈고 그 뒤에도 줄곧 수위 자리를 지켰다. 대입 성적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는 하시모토의 ‘기적의 교실’ <은수저> 수업은 1984년 그의 은퇴 때까지 5기에 걸쳐 30여년간 이어졌다. 1000여명의 그의 제자들 중 다수가 변호사, 대학교수, 총장, 교사, 국회의원, 대기업 간부로 출세했다.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은 바로 그 제자들이 회고하는 하시모토 및 그의 수업과 그 장점들을 정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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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