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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블로그에 "새로 나온 책"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정리해 놓았다. 그중에서 4월에 나온 경제/경영 관련 책 5권을 정리한다. (이주의 새로 나온 책)
사람들은 집값을 얼마나 지불해야 할지 고민할 때, 매도 호가의 영향을 받는다. 만일 매도자가 부르는 값이 높다면 낮을 때보다 그 집이 더 가치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주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식을 살 때 자의적으로 목표주가를 정해 놓으면 별다른 수익이 없어도 이 목표주가에 근접할 때까지 주식을 들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별 의미 없는 숫자라도 한번 정해 놓으면 거기에 집착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 책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를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표현한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 듯, 처음 입력된 정보가 정신적인 닻으로 작용해 이후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저자는 “미지의 양을 추정하기 전 그 양의 가치를 추정해볼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추정치는 사람들이 미리 생각하고 있던 숫자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닻의 이미지는 숫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결심하더라도 계속 남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새로운 개념의 경제학이지만, 그 중심엔 심리학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을 경제 및 사회활동의 주체로 정의한 행동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인간, 그 인간의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을 조종하고 이끄는 ‘생각’이다. 카너먼이 노벨상을 받은 후 수많은 행동경제학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창시자의 책은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해에서야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커너먼의 행동경제학에 관한 첫 대중교양서로 출간 당시 언론계의 극찬을 받았다.
카너먼은 이 책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활, 즉 인생의 근원인 생각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설명한다. 직관을 뜻하는 ‘빠르게 생각하기(fast thinking)’와 이성을 뜻하는 ‘느리게 생각하기(slow thinking)’가 바로 그것이다.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는 동물적 감각의 순발력이나 러시아의 수도를 떠올리는 것처럼 완전히 자동적인 개념과 기억의 정신활동이 ‘빠르게 생각하기’다. 반면 전문가의 해결책이나 복잡한 수학문제의 정답처럼 머릿속에 즉시 떠오르지 않는 문제의 답을 심사숙고해 노력하는 사고방식이 ‘느리게 생각하기’다.
이 책의 명대사 하나. “세상은 생각보다 미스터리하다.” 여기에 붙은 진짜 명대사 또 하나. “인간이야말로 생각보다 미스터리하다.”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첫 번째 실패에서 다음 실패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윈스턴 처칠의 이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제임스 다이슨(64)일 것이다. 이름부터 토머스 에디슨(1847~1931)과 비슷한 다이슨은 자신보다 꼭 100년 전 태어났던 에디슨처럼 평생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성공을 일궈내 ‘영국의 스티브 잡스’가 됐다. 잡스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던 것처럼 그는 자기 회사에서 쫓겨난 뒤 새 회사 ‘다이슨’을 차려 세계 전자업계를 뒤집어버렸다.
1990년대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다이슨은 유별난 발명가 경영자 정도로만 인식됐다. 하지만 2000년대 모터로 작은 바람을 만들어 주변 바람이 모이게 해 더 큰 바람을 일으키는 ‘날개가 없는 선풍기’를 선보이면서 다이슨은 진정한 혁신의 상징이 됐다. 공대를 나온 것도,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던 다이슨은 제조업이 처절하게 몰락한 영국에서 가전업체를 차려 세계적 거대 기업들을 물리쳤고, 자기 발명품을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적 지위를 갖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올려놓았다.
신이 공학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했기에 다이슨은 ‘진정한 물건’의 가치를 역설한다. 물건은 안 만들고 돈만 이리저리 옮기면서 이익을 내는 금융자본이, 단기 실적만 추구하는 경영자가 제조업을 몰락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공학과 디자인은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공학과 디자인은 장기적으로 회사를 되살리고, 더 나아가 국가를 되살리는 힘이다. 하지만 런던 금융가의 살찐 부자들, 은행들, 마거릿 대처 시대가 만든 괴물들이 당장 이익을 내라고 소리지르는 동안 영국 산업계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대신, 더 많이 잘 파는 데 몰두해왔다. 그 결과, 지금 영국에선 광고가 모든 문제를 푸는 해결책이 돼 버렸다.”
“단순함에 대한 요구는 지나가버린 신화다.”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의 지은이는 “단순함이 좋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디자인계의 오랜 원칙에 도전장을 던진다. 지은이는 인지과학의 대부이자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명인 도널드 노먼. <감성 디자인> <생각있는 디자인>을 썼으며 한때 한국에서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석학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 처음 와 백화점 가전매장에 들렀던 기억을 떠올린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보니 엘지나 삼성과 같은 한국 상품들은 외국 가전업체 제품들보다 더 복잡해 보였다. 그는 안내자한테 이유를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복잡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해요. 복잡한 것이 있어 보이거든요.”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며 이제 “단순하고 기능이 적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특이한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우선 그가 옹호해 마지않는 ‘복잡함’과, 그가 배제하고자 하는 ‘혼란스러움’을 구분한다. 복잡함은 많은 부분이 뒤얽히고 서로 연결된 상태를 의미하고, 혼란스러움은 어떠한 것을 보고 어지럽다고 느끼는 심리상태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복잡함=혼란스러움’의 등식을 부정한다. 지은이는 수많은 제품들이 실패하는 것은 현대기술의 혼란스러움에서 오는 좌절을 줄이기 위해 단순함을 너무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풍부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복잡함은 필수조건이란 것이다.
『체 게바라 평전』(2000)으로 대중들에게‘게바라’열풍을 일으켰던 실천문학사가 이번에는 그동안 혁명가 혹은 낭만주의자의 이미지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경제 관료로서의 그의 지성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책을 내놓았다. 1959년에서 1965년까지 쿠바 혁명
정부의 국립은행총재, 산업부흥부장, 산업부장관을 역임한 체 게바라. 그는 자본주의와 영합하지 않고 독자적인 사회주의와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골몰했다. 저자는 혁명 정부 때, 게바라와 함께 쿠바 경제 재건에 참여했던 동료들과의 인터뷰 및 자료
조사를 근거로 지적 혁명가로서의 게바라를 그려냈다. 당시 게바라가 쿠바 경제에 도입한 시스템이 현재 유일하게 남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 경제의 기틀이 돼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게바라는 저발전 상태,
사회주의 이행기의 쿠바에서 자본주의적 지렛대에 의존하지 않고 생산 능력을 높이는 방법에 골몰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시스템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게바라의 생각에 소련은 ‘자유시장’의 효율성은 얻지 못한 채 이윤만 탐닉하는 혼합 체제에 불과했다. 산업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경쟁, 이윤, 물질적 인센티브 등을 이용할 경우 결국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의식을 재생산하게 되리란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는 빈곤과 싸우지만 소외와도 싸운다”는 발언에서처럼 그가 고안한 예산재정시스템은 물질적 인센티브 대신에 교육과 훈련을 통한 도덕적 인센티브를 강조하며 이윤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두고 발전을 추구했다.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다. 탐욕스런 곡물 메이저나 무관심한 선진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는 농업과 식량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그가 드는 이런 실패의 예를 보자. 전 지구적 식량분배가 근본적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한쪽에선 적어도 10억 명 이상이
일상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캐나다 정부는 15만 마리의 사육돼지를 도살하기 위해 농가에 5000만 캐나다달러(약 570억원)를
지원했다. 고기 가격 하락을 초래하는 과잉공급을 막기 위해서였다.
또 있다. 생산된 식량의 대다수와 그것을 생산하는 도구가 소비자나 생산자의 건강에 나쁘단다. 영양소는 적고 칼로리만 높은
정크 푸드, 증산을 위해 사용되는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이 비만이나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것이 그런 예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식량문제의 악화를 부채질한다. 식량 대신 담배를 재배하거나 자동차연료용 에탄올을 만들기 위한 옥수수 재배에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이 그런 예다.
지은이는 ‘시장의 실패’ 때만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논리를 통박한다. ‘시장의 성공’은 무엇을 척도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다.
분배의 정의, 환경 지속가능성, 인류의 건강 그 어느 것으로도 성공을 말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그의 지적은 아프다. 책은 마지막
장에서 지속 가능한 인류의 번영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산만하고 부분적이다. 효율적인 공공부분 개혁을 위한
세계 정부나 석유 기반 농업에서 유기농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이상주의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
주목해야 할 것도 눈에 띈다. 내부 사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채 몇몇의 결정에 의해 주주 소수의 단기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어울리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또 환경 피해 등 외부 비용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시장이 민주적이냐며 실질적인 사회비용과 인류 전체의 장기적 행복 측면까지 고려해 시장가격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생각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