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편의점이라는 곳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부터 먹을거리까지 온갖 종류의 상품이 진열되더니 이제는 각종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예를 들면 택배 서비스나 픽업 서비스같은 것 말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온갖 편리한 시스템은 다 취급하는 만물상이다.그러나 누가 뭐래도 편의점의 가장 강력한 특성은 익명적 인간관계의 장이라는 것이 아닐까. 나를 알리기 위해 혹은 너를 알기 위해 편의점을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목적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곳. 그러니까 아무런 인간적 화학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편의점이라는 공간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의 편의점은 조금 다르게 기능한다. 인간적 관계성이 생겨난다. 꼬마 수지와 엄마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고 훅이 잃어버린 오토바이를 찾아 헤매다 그리고 캣맘이 길고양이를 돌보다 쉬어 가는 곳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주인공의 편의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쉼터인 것이다. 애시당초 그런 장소가 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인공과 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가 저절로 그 역할을 맡게끔 작동했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할아버지는 편의점을 그만두고 다시 동아마트로 돌아 가기로 한다. 그곳이 설령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철거가 진행되는 구지구지만 말이다. 신지구라고 해봐야 들고 나는게 일상인 가난한 원룸 생활자들과 빚으로 지어 올린 겉만 번지르르한 아파트 단지가 고작이니 구지구와 비교해서 굳이 다를 것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미련이 남아 있어 보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