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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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일들이 모두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뭉뚱그려 생각해보면 나는 속 썩이는 딸은 아니었어도, 매사에 무관심한 딸이었던 것 같다. 고마움은 알았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미안함을 말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웠는지. 부모님의 표정과 말을 읽어내지 못했고, 만약 읽어낸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일들이 결코 나한테만 일어났던 일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기, 정도와 상황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는 누구나 이런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족’이란 존재가 참을 수 없이 어렵고 혼란해지는 시절.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억울하게 늙기만 하는 건가, 정말 좋은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걸까. 다행히 있긴 있더라고. 그게 뭐냐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이런 성장의 시간들을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바로 이 구절이다. 이제 어른이 되었고 그런 시절이 완벽하게 끝나버린 것 같진 않지만,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생각하는 일은 꽤 늘었다.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 아마도 그 연습의 시간들은, 내가 지금의 부모님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만 쓴 소설이다. 2016년에 사는 은유라는 소녀가 아빠의 제안으로 1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편지는 우연히 1982년에 사는 (동명의) 은유라는 소녀에게 닿게 된다는 이야기. 두 소녀 모두 이 믿기 힘든 시간여행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장차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시간보다 과거의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 현재의 ‘은유’가 편지를 쓰고 부치는 동안, 과거의 ‘은유’의 시간은 부리나케 흘러간다. 어느새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산 ‘언니’가 되어 있다.

 

현재를 사는 은유는, 아빠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엄마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과거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현재의 시간이 천천히 머물러 있다면, 대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엄마라는 존재를 찾는데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둘은 약간의 힌트를 나누고, 점점 엄마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도 점점 가까워진다. 시간이 맞닿는 지점에서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될까.

 

마냥 귀여운 시간여행 소설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몇 페이지를 들추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목은,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시간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가족이라는 미묘한 관계 속에서 버둥거리는, 가장 예민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동시에, 부모님의 마음 또한 놓치지 않는다. 누구나 겪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침착하고 담백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꾸밈없고 순수한 소설이 주는 감동은 의외로 어마어마하다.

 

 

101쪽,
막상 언니에게 아빠에 대해 말해 주려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아빠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지 놀랄 정도야. 아빠만 나한테 노관심인 줄 알았더니 나도 만만치 않았나 봐. 서로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없는데 우린 어쩌자고 아빠와 딸이 된걸까.

146쪽,
하여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란 뜻이야.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167쪽,
사실 언니 편지를 보고 나니까 혼란스럽긴 해. 만약 언니가 찾은 엄마가 내가 그리워하고 궁금해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면 어쩌지? 내가 원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어서 실망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드는 거야. 나는 엄마가 꿈꾸던 딸의 모습일까…….

219쪽,
있잖아 언니, 아빠랑 나랑 같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는 만큼 더 많이 달려와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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