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실제로 그 땅에 지하 철도는 존재했다. 그것은 노예 탈출 비밀 조직이었다. 그러나 소설과 달랐던 점은 이 지하철도가 비유적 표현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역장', '기관사'로 칭했고, 도망 노예들을 '승객', 그들을 숨겨주는 이들의 집을 '역'으로 부르는 등 실제 철도 용어를 은어로 쓰면서 10만 명이 넘는 노예들을 자유로 이끌었다 (346쪽)"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수많은 노예들이 지하철도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희망의 길을 통해 그 지긋지긋한 '남부'를 빠져나왔다.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숨겨진 철도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에 착안해 쓰였다.

 

그러나 상상은 단지 소설의 흡인력을 높여주는 장치일 뿐이며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현실'이었을 끔찍한 광경들이다. 19세기 미국의 인종 문제를 다룬 문학들과 마찬가지로, 책은 문자 바깥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참상들을 드러낸다. 사소한 이유와 주인들의 변덕으로 흑인들은 온갖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모욕을 당해야 했다. 가격이 매겨지고, 팔려간 곳에서 죽을 때까지 막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잡혀온 이들의 끔찍한 죽음을 두 눈으로 본 그들에게는 탈출은 곧 죽음이었다. 혹시나 탈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감옥이자 지옥이었던 그곳에선 사시사철 불안에 떨어야 했다.

 

주인공 '코라'라는 한 흑인 소녀의 탈출기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코라의 시점만이 아닌 그 땅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죽을 때까지 농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목화밭에서 피 흘리며 죽었던 코라의 할머니 '아자리', 딸을 버리고 탈출했지만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코라의 엄마 '메이블', 코라와 함께 새로운 삶을 갈망했던 '시저', 그리고 노예사냥꾼 '리지웨이'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온 평생 자유를 생각했던, 혹은 자유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당시 흑인들의 삶을 재현해낸다. 그나마 큰 용기와 희망을 품었던 소설 속 '코라'의 탈출도 예상한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한고비를 넘어 새롭게 밟은 '역'에선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장애물들이 펼쳐진다. 끔찍한 것은 그들을 속이는 가혹한 현실들이다. 평화로운 곳으로 여겨졌던 노스캐롤라이나의 '자유의 숲'은 사실 훼손된 시체들이 끊임없이 걸려 있는 죽음의 길인 것처럼.

 

그러나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을 무릅쓰고 누군가의 자유를 위해 힘써주는 '지하철도' ― 여기선 비유적 표현 ― 의 정의가 존재하고, 어두운 과거를 인식하고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는 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남겨준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침범하진 않았는가. 그때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는 자유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박진감 넘치는 소설 속의 소중한 메시지가 가슴에 담긴다.


 

82쪽,
여기서 먼 곳, 그렇게 밖에 말해줄 수 없구나. 그 많은 노선이 바뀌는 걸 바로바로 알기는 힘들다. 완행열차, 급행열차, 닫히는 역도 있고, 행선지가 늘어나기도 하고. 문제는 어떤 종착역이 다른 종착역보다 더 마음에 들 수도 있다는 거야. 역이 발각되기도 하고, 노선이 끊기기도 한다.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는 저 위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절대 알 수가 없어.

136쪽,
훔친 땅에서 일하는 훔친 몸들, 그것은 피로 가는 보일러, 멈추지 않는 엔진이었다. 스티븐스가 설명한 수술로 백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를 훔치기 시작했다고 코라는 생각했다. 당신의 배를 갈라서 피를 뚝뚝 흘리는 미래를 들어내는 것. 누군가의 아기를 뺏어 간다는 건 바로 그런 것 ― 미래를 훔쳐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고, 훗날 그들의 후손이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희망마저 앗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203쪽,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었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게만 바깥에서, 텅 빈 초원에서 보면 그 진짜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298쪽,
그 전날 밤 테네시에서, 리지웨이는 코라와 엄마를 미국의 계획의 결함이라고 했다. 그 두 여자가 결함이라면 이 집단은 무엇이란 말인가?

319쪽,
한 가지 착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예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팔려 가고, 아버지가 매를 맞고, 여동생이 우두머리나 주인에게 능욕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은 쇠사슬 없이, 멍에 없이, 새로운 가족과 함께 오늘 여기 앉아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하셨습니까? 여러분이 아는 모든 것이 자유는 속임수라고 말했습니다 ―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달립니다. 저 밝은 보름달 빛을 따라 안식처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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