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목이 막힐 때 청량하고 짜릿한 사이다 한 모금이면 세상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맥주, 그래. 맥주도 좋겠지만, 그보다 알싸하고 씁쓸한 소주 원샷이 어울리겠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이 좋겠다. 바다 위에서 배를 타던지, 발장구를 치던지,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으면 더욱 훌륭하다. 지금은 꽃 피는 봄이지만, 이 책을 보고 난 뒤엔 일상에서 벗어난 이런 개꿈 같은 상상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언제나 그렇듯 여러 작가의 이름을 대면서 한창훈 작가의 시원한 글이 좋다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뼛속까지 바닷사람인 그에게 떼놓을 수 없는 바다의 이미지 - 그에게 바다는 이미 언급하기 지겨울 정도이지만 - 가 떠오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말 그대로 시원스러운 글을 지어내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원스러운 글은 이번 책에서 정점을 찍는다. <한겨레 21>에 연재한 글을 모아놓은 것인데 제목이 '한창훈의 산다이'다. '산다이', 생소한 일본어로 오해할 수 있지만 옛날에 'sunday'라는 말에서 유래된, 전라남도 섬 지방의 말이라고 한다.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쉽게 말해 한바탕 신나게 노는 문화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작가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술과 담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라고 선언했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는 지금 우리들에게 그가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산다이'였던 모양이다. 강연이고 뭐고 귀찮은 학생들 앞에서 '문학이고 지랄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것처럼, 독자들이 한바탕 웃고 힘낼만한 이야기들을 준비하였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작가도 우울한 사회 현실을 외면할 순 없었지만, 대신 이리저리 비틀어 놀려대거나 정말 살아본 아저씨의 조언을 들려준다. (특히 하면 된다 정신으로 대강 (대강? 대! 강!)의 제왕이 된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통쾌하던지!)

 

"아아, 우리에겐 이렇게 멋진 아저씨도 있다" (출판사 서평 中)
아아, 정말 그렇다. 표준어 거부 운동을 제안하고,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고 말하고, 벤치에서 바다의 표정을 읽고, 비혼 선언에 대해 말하고, 잘못됐으면 덤벼들어야 된다고, 그래야 청춘이라고 말하는 이 아저씨는 얼마나 멋진가. 웃기라고 쓴 티가 팍팍 나는 글에서도 좀처럼 시원하게 웃음이 나질 않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취향이 갈릴지라도 내겐 충분히 이 책이 '산다이'였다고 말할 수 있다. 흥겨운 한 판이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무당도 신부도 스님도 목사도, 심지어는 신神도 모른다. 모르는 것 가지고 벌벌 떠는 것처럼 찌질한 짓도 없다. 인생 알 수 없는 덕에 우리는 산다. 젊었을 때의 계획대로 중년 이후를 사는 사람, 나는 못 봤다. 그러니 그런 거 무시하고 친구와 어울려 어기차게 기운이나 발산하자. 그게 생명력이다. 강한 생명력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자유로운 영혼. 이거 멋지지 않은가. 위정자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들을 무서워한다. 그들이 무서워할 젊은 영혼이 많은 것, 그게 정상적인 국가이다. 그러니 좆도, 산다이 하면서 놀자. 놀아도 내일은 또 오더라. (20쪽)

 

 

 

54쪽, ‘대강‘의 제왕
"이제 대강 좀 해라, 대강."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대강이라면 맞아, 큰 강! 이렇게 외치고 나서 엎드려 있는 수많은 쫄따구들에게 자기 땅의 강을 모두 새로이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물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돌팔이의 조언과 도랑을 다뤄서 재미 본 기억도 한몫했지만 제왕은 이른바 ‘가오‘가 다르지 않은가. 강이야말로 자연의 본모습이며 우리는 그저 거기에 깃들여 사는 존재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무지몽매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는 당연히 듣지 않았다. 거기에 22조라는, 아무리 들어도 감이 안 잡히는, 노동자 김 씨가 하루 종일 일해서 버는 8만 원 보다 어마어마하게 높은 액수의 돈을 쏟아부었다.



126쪽,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학생들을 만나자. 우선 사과부터 하자. 너희 친구들을 터무니없는 죽음으로부터, 너희들을 충격과 공포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못난 어른이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바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미워해야 할 대상은 바다가 아니라 그런 사고를 내고 먼저 도망가 버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뒷수습이라고 한, 아직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피해자들을 이간질하는 것도 모자라 악랄하게 공격하고 있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속의 어떤 사람들이니까.



152쪽, 벤치의 나이테
그 벤치에서는 바다의 표정이 잘 보인다. 바다의 기분이 보인다고 해도 무방하다. 내가 뿜어 올린 담배 연기도 그때 부는 바람의 방향대로 흘러간다. 바다의 1년이 표정을 바꾸며 흘러가는 것을 그곳에서 확인한다. 단순히 나무 몇 개 엮어놓은 것이지만 벤치가 없었다면 무심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194쪽, 북서풍 붑니다. 소주 마십니다
‘북서풍 붑니다, 소주 마십니다. 파도가 하얗게 솟구칩니다, 소주 마십니다. 손발이 얼어갑니다, 소주 마십니다. 입김이 담배 연기처럼 나옵니다, 소주 마십니다‘ 뭐 이런 식이다. 마치 아직도 어선에 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바람에 들창 흔들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소주 병을 꺼낸다. 얼른 몇 잔 마셔 외롭고 추운 몸을 덜 춥고 덜 외로운 에틸알코올의 세계 속으로 보내는 것이다. 조금은 비장하고 우울한 미학이다. 그러고 나면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로 들린다. 나는 혼자서 말한다. ‘지금 겨울이 지나가는 중이다.‘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겨울 바다는 존재에 대해 끙끙 앓는 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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