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 1 - 간질병의 산을 오르다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다비드 베 지음,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길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지하철에서, 가끔 당황스러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은 이랬다. 청소년쯤 되는 아이가 알 수 없는 문장을 소리쳐 말한다. 성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헤드폰을 낀 채로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큰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은 다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다. 그러다 '나쁘거나 혹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사람이란 것을 깨닫곤 큰 소리를 애써 귀속에서 줄여가며 외면한다. 이는 단지 주변 사람 뿐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주목을 끄는 행동을 할 때, 옆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항상 놀라웠다. 다른 경우도 있을지 모르나, 내가 본 분들은 모두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절대로 흥분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침착했다. 손으론 아이를 제지하면서도 표정이 굳거나 인상도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늘 있었던 일인 양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그 모습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되기까지의 고난의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나는 그 가짜 스승들, 음성적인 치료법들에 걸었던 희망을 다 토해버리고 싶었다."
 나의 연민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조차 그들에게 고통이 될 거라는 생각은 『발작』이란 책을 보고서 더 깊어졌다. 책은 간질병으로 시시각각 발작을 일으키는 형을 둔 작가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이다. 1970년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간질병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회고록 형식으로 담았다. 모든 가족들은 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움직였다. 매크로바이오틱, 침술, 강신술, 수맥 관리, 연금술…… 발작을 멈출 수만 있다면 가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발작은 완벽하게 고쳐지지 못했다. 실패, 좌절의 연속이었다. 간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벌레보듯 했던 사회였다. 밖에서 형이 발작을 할 때면, 오히려 가족들은 온갖 비난과 멸시에 시달리곤 했다.

 

 

 

어린 나이였던 피에르프랑스와 (필명 다비드 베)는 형의 발작을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숨겨두다, 훗날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당시에는 장난스럽고 웃기는 모습으로 감췄던 속마음은 『발작』에서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책은 온갖 것들이 복잡하게 섞인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숨김없이 그려낸 듯 보인다. 꿈속의 환상, 형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나쁜 마음,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들, 그가 만화가를 꿈꾸면서 읽었던 책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나의 갑옷은 밤이다." 라는 그의 독백처럼,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 모든 감정을 토해놓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꺼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온갖 치료법과 병을 나아지게 할 것들을 찾아 나섰던 가족들의 끝도 결국 내가 목격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고립된 곳에 머무르고, 병에 순응하고,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살아가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의 개명은 입장을 표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 나는 속되고 천박한 카우보이들에게 맞서는 눈부신 인디언들의 편에 섰다. 나는 살찐 나치들에게 맞서는 말라빠진 유대인들의 편에 섰다."

 

 작가의 불안하고 격앙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책은, 다소 읽기에 불편하기도 했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을 그대로 풀어놓았으니 어찌 보면 참 불친절하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순간 페이지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게 한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 한 세기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서술 덕분에 불친절한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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