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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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결말은 몇 줄에 걸쳐 걸작 내에서도 걸작이다. 대단원을 이루는 행들에서 나는 싸움을 포기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프랑스의 작가 '장 도르메송'이 남긴 이 말은 책을 고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나 100퍼센트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의 끝을 맞이했을 때 나는 그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줄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영화 속에서 충격적인 장면이나 반전이 나올 때마다 들려오던 강렬한 사운드를 상상하며 들춘 그 문장은 압권이었다.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곤 다시 홀린 듯이 첫 페이지로 돌아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 책의 첫 문장과 끝 문장, 그 속에 엮어진 이야기는 완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동급생』이라는 책의 제목은 내 안에 더욱 깊이 각인되었다.


 소설은 유대인 소년 '한스 슈바르츠'가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소년이었던 한스는 새롭게 전학을 온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와 운명적으로 서로가 맞는 친구라는 걸 직감하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독일의 아름다운 고장 슈바벤에서 그들은 청춘을 즐기고, 문학과 예술, 철학 등을 몽상한다. 비록 나치 시대였지만, 그들은 꿈을 꿔가는 소년일 뿐이었다. 어른들의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일이 아니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위기가 닥치고, 한스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왜 아버지가 콘라딘을 만나자마자 자신에게는 전혀 보인 적 없는 비굴한 태도와 극존칭을 쓰는지. 왜 콘라딘은 집에 가족들이 없을 때만 자신을 부르는지. 이러한 의문은 그리 심각한 고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소년 대 소년이 아닌, 가족과 가족, 뒤이어 혈통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어지자 소설에는 내내 불안감과 위기가 감돈다.

 

​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더한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던 동급생 둘의 우정은 이 모든 갈등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심한 유대인 탄압 속에서 대피해 '살아남은' 한스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한스가 읽고, 내가 읽고, 수많은 독자가 읽고 비통해 마지않은 한 줄이며, 두 소년이 했던 대화들, 뿌리깊게 박힌 이념들, 속수무책으로 흘렀던 세월과 비극을 상상케 하는 엄청난 한 줄이다. 나는 절대로 이 한 줄을, 소년들의 우정을, 비극적인 역사에 수그러졌던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38쪽,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고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내가 친구를 위해 - 그야말로 기뻐하며 -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62쪽,
정치는 어른인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 81쪽,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111쪽,
마침내 그들을 보았을 때는 달아나고 싶어졌다. 유대인 아이의 본능적인 직감으로 볼 때, 채 몇 분도 못 가서 내 심장에 들어박히게 될 단검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통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무슨 이유로 친구를 잃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까? 무슨 이유로 의심이 잠으로 달래지게 놓아두는 대신 증거를 요구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달아날 용기도 없어서 고통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떨리는 심정으로 기둥을 버팀목 삼아 기대어 서서 처형당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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