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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네이션 - 시민X안희정, 경험한 적 없는 나라
안희정 지음 / 스리체어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장을 열고,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좀 되었는데 이제야 글을 남긴다.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이야기를 이렇게 편안하고 쉽게 받아들인 건 오랜만일 정도였다. 또한, 안희정 지사에 대한 호감도 있었기 때문에 술술 읽어내렸는데, 왠지 모르게 우물쭈물한 감이 있었다. 어지러운 시국이 계속되었고, 민주주의는 추락했으며, 국민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커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안희정 지사가 꿈꾸는 민주주의는 분명 좋은 민주주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올해 상반기에 읽었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8』에서 안희정 지사의 삶과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면, 『콜라보네이션』에서는 보다 더 집중적으로 그의 정치 목표와 기록들을 전한다. 그가 운동권 학생, 국회의원 비서, 노무현 대통령의 파트너, 지금의 충남 도지사까지의 어려운 시간을 거쳐오면서 확립한 '더 좋은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인 '콜라보네이션 Collabonation'이다. 콜라보네이션은 협력과 국가의 합성어로 국민이 참여해 이끄는 더 좋은 민주주의 사회를 의미하는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느껴질 때쯤, 지금의 현실을 깨닫는다. 국민은 국가의 원동력이고, 헌법에까지 국민주권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안희정 지사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17쪽)"
시민과 국가, 정부와 관료, 복지, 환경, 외교에 대한 안희정의 생각들을 아울러 다루는 이 책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그의 '대선 출사표'와도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를 비판하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해결책을 말하는 안희정의 모습은 자신감 있고 확고하다. 그러나 단지 그 해결책들이 신뢰 가능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은 세상을 크게 변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이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그때마다 나는 답한다. 똑똑한 지도자 혼자서 끌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국민과 시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 국민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다." (350쪽)
이 책의 표지에는 안희정의 이름만 쓰여있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 이름이 와야 할 곳에는 시민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여 있다. (시민 X 안희정)
또한 책 속에는 그가 틈틈이 남긴 (『콜라보네이션』 의 내용과 맞물리는) 메모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결코, 허투루 나온 이야기들이 아닌, 직접 생각하고 구상한 내용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이 책에 나온 그의 계획들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시민에 대한 애정과 그가 꿈꾸는 세상을 일단은 믿어보고 싶다.
50쪽, 제도와 지도자의 능력이 정치 수준을 결정한다. 이 믿음으로 올라와야 한다. 어떤 경우든 대중의 의식과 민도를 탓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자로서 어떻게 제도를 설계할 것이냐, 하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한다. 나는 지방 자치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넘어야 할 다음 단계임을 믿는다.
73쪽, 많은 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내가 해 줄게‘라고 얘기하고, 공약과 표가 교환되면서 정부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 다리 놔 줄게, 복지 정책 해 줄게, 그 ‘해 줄게‘라는 말은 국가와 주권자를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는 단어다. 정부가 내 것이라면 마치 선물을 받듯 공약을 받을 일이 아니다. 재원이 어디인지 따져 묻고 국가 재정의 효율적 지출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민의 것이다‘라는 생각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노력이 정부 혁신을 향한 나의 첫 번째 출발점이다.
118쪽, 우리 사회가 나라는 존재와 이 경이로운 세상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도록 자극해 본 적이 있을까. 모든 자극을 봉쇄하고 ‘무조건 외워서 풀어‘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은 열등감과 상처 입은 자존심 외에 나답게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 준 일이 있을까. 이런 상태로는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295쪽, 국가 지도자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국가 정책이 가져올 고통과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정책 목표가 거룩하고 고상하기 때문에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짓밟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실상 반민주적인 리더십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국민을 동원하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지지 기반의 정치 성향에 기초해서 5천만 국민의 실질적 이익이 무엇이냐는 토론을 방해하고 있다. 더 나은 길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고 있다.
298쪽, 정치 지도자의 유일한 목표는 5천만 국민의 안녕과 시민이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첩첩이 다가오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부터 세계적인 경제 위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독립을 쟁취했던 선열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던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진보나 보수의 어떤 이데올로기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는 목표보다 중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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