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그래피 매거진 8.5 승효상 - 승효상 편 - 짓다
승효상.스리체어스 편집부 지음 / 스리체어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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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이 이번호를 기점으로 개편되었다. 판형은 작아졌고 띠지에 있었던 인물의 얼굴은 작아진 표지로 옮겨갔다. 종이의 재질, 그에 담긴 내용과 구성도 조금씩 달라졌다. 여덟 권의 매거진을 출간한 뒤, 독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여러 불편한 점들을 개선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작아진 판형은 아쉽고 (매거진을 읽는 색다른 느낌이 사라졌다), 단출하나 깔끔한 표지는 마음에 들고, 어디있는지 찾을 수 없었던 이 책의 부제가 책 뒷면에 새겨진 것은 좋았다. 그런데 이번호는 주인공의 요구사항 때문에 구성과 내용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편집과 인터뷰어의 개입을 최대한 제한하였고, 디자인과 구성은 최소화했다. 출판사 측에서도 아쉬운 면이 많아 출간을 주저하다 8.5라는 숫자를 붙여 세상에 내보냈다고 한다.


 매거진을 다 읽을 때쯤 승효상 건축가의 저서인 『빈자의 미학』이 2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의 이름과 '빈자의 미학'은 동의어와 같다고 한다. 삶과 철학을 온전히 담은 저서가 재출간될 줄 알았다면, 매거진의 구성은 조금 달라졌을까? 조금 다른 각도로, 톡톡 튀는 형식으로 그의 삶을 바라보고 평할 수 있었다면 더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러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한 인물의 삶과 메시지를 아주 충실하게 담아냈고, 조금 더 가벼워진 형식 속에서 한 인물의 역사를 꼼꼼히 다뤘다. 그의 저서 『지문』과 『빈자의 미학』 일부가 책에 실려있기도 했는데 이는 짧은 구절이지만 건축가가 지닌 고집과 철학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인문학이다. 건축가의 욕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걸을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그 속을 채울 모든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저는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사회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사람이에요. 삶에 관한 사람들의 요구에 대응해주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땅에 따라 건축이 바뀔 수밖에 없죠. 그 땅의 조건에 맞춰서 하는 게 건축이에요. (…)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방법을 설계하는 일과 마찬가지예요. 건축가는 남의 집을 짓는 이들이니 타인의 삶을 그만큼 잘 알아야 하죠. 그래야 남의 삶을 조직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건축을 잘하려면 남이 어떻게 사는지 공부해야 합니다." (119-120쪽)

 

 

 

 

 건축가 승효상을 필두로 (이로재에서) 지어진 건축물들의 수는 상당했다. 이전에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으니, 길을 걸으면서 스쳐간 건축물들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축 설계와 도시 계획은 다르지 않다는 일념 하에, 도시의 장소를 잇고 공간을 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파주 출판단지도 그가 구성하고 만들었단다. 현재는 퇴임하였지만 서울 총괄 건축가로도 일했다. 그는 "좋은 도시는 도시의 어느 곳에 떨어져도 일부만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도시"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며 바른 건축과 바른 도시에 대해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서울의 건축적 지향점은 '메타시티'라 한다. "내적인 질의 함양을 위한 도시, 연대하는 도시, 공존하는 도시" (148쪽)를 추구한다.

 

 


​ 뒷페이지에 실려 있는 『빈자의 미학』을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빈곤하지만 아름다운 무대장치, 처절한 고독이 만들어낸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 가난하지만 삶을 나누고 공존하는 서울의 달동네와 같은 영감이 모여 확고한 철학을 만들어냈다. 『빈자의 미학』에선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건축과 삶, 승효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그의 책을 접하기 전 기본이 되는 지식들을 접할 수 있다.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매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늘 그랬듯이.

 


 "침묵의 벽. 비록 소박하고 하찮은 재료로 보잘 것 없이 서 있지만, 그 벽은 적어도, 본질의 문제를 안으며 중심을 상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건축가들이 쌓은 벽이며 결단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191쪽, 『빈자의 미학』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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