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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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엔 (내 기준에서) 꽤나 심각한 독서 슬럼프를 겪었다. 책을 잡고 있어도 제대로 읽히지 않고 글자만 그대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중단한 책도 여러 권이었다. 소파 팔걸이와 테이블에는 중간만 보고 놓아버린 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취미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큰 보람을 갖고 있는 독서 활동이라, 이대로 꾸역꾸역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중단해버려야 하는지 혼자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결국엔 9월은 '조금 느렸던 달'로 남겨두고 다음 달의 첫날, 활기차게 독서를 시작하기로 했다. 10월의 첫 책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했다. 조건은 이랬다. 첫 번째, 재밌어서 끝까지 읽어내릴 수 있는 책. 두 번째,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책. 산뜻하게 읽힌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는 것. 이에 눈에 딱 들어온 책은 『마술가게』였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샛노란 표지의 이 책에는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굵직한 SF 작품을 남긴 '허버트 조지 웰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 이름과 저서를 연결해 들으면 "아-" 하고 무릎을 칠만한 익숙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작품들은 아주 생소하다. 보통 유명한 고전 동화를 읽으면 어릴 때 자투리 글을 읽어본 것 같은, 아니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본 이야기여서 설레는 마음이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판타지 동화의 느낌이었다. 새롭고 신선하며, 알듯 모를듯한 기분이 좋았다. 책 속에 펼쳐진 예쁜 일러스트가 아니더라도 글 속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눈앞에 그려낼 수도 있었다. 온갖 신기한 것들의 천국인 '마술가게', 내 앞에 나타난다면 어쩔 수 없이 손잡이를 당길 것만 같은 '초록문', 딱하디 딱한 '페더탑', 그리고 옥색 바다와 목소리 섬의 진기한 풍경……. 동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고 감성을 자극하지만, ​그저 아름답기만 한 느낌이면 아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은 미스터리하고 약간은 오싹한 기분까지 선사한다. 마지막까지 맘을 졸이게 하고, 그 마지막을 접했을 땐 비로소 한숨을 푹 내쉬게도 하는 스릴있는 이야기들이랄까. 특히나 재밌게 읽었던 <눈먼자들의 나라>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발목을 잡을 '고정관념'에 대하여, 아주 강렬한 인상으로 전해주기도 한다. <초록문>은 어린 시절과 환상에 대한 진한 노스텔지어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이지만 비슷한 분위기로 묶여, 바쁜 일상 속에 동심과 환상의 세계에 푹 빠지게 해주는 책 『마술가게』. 그저 그렇고 뻔한 이야기거나 권선징악의 교훈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상상과 여운을 맛볼 수 있었다. 특이하고 진한 여운을 주는 매력적인 동화들이었다.

 

 

 


65쪽, 마술가게

마술 점원이 "얏!"이라고 말하니 녀석도 "얏!"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곳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기묘한지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여기는 기묘함으로 점철된 곳이었다. 설치물에도, 천장에도, 바닥에도,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에도 약간 기묘함이 묻어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 않을 때면 삐딱하게 움직이면서 내 등 뒤로 조용히 자리뺏기놀이를 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천장돌림띠는 가면을 쓴 뱀 모양이었는데, 가면은 순전히 석고로 만들어졌다기에는 너무 표정이 생생했다.

79쪽, 초록문

어릴 적 기억이 계속 재생됐다. 월리스는 그 문을 보자마자 첫눈에 특이한 감정을, 이끌림을,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이끌림에 굴복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처사라는 확신이 분명히 들었다. 월리스는 기억이 요상한 마술을 부린 게 아닌 이상, 저 문이 닫혀 있지 않으며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참으로 신기하다고 주장했다.

149쪽, 눈먼 자들의 나라

그녀는 시각이 가장 시적인 환상이라고 생각했고, 누녜스가 별과 산, 백색광을 켜 놓은 듯한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설명해 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탐닉하며 들었다. 이 말들을 믿지도 않고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묘하게 기쁨을 느꼈고, 이런 모습을 보고 누녜스는 그녀가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183쪽,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바치네.

신은 무엇이든 들으시리.

키잡이가 기도하고, 고요가 흘렀다. 선원들은 잠을 청하려고 몸을 뉘였다. 고요함은 짙어졌다가 얀 강이 가볍게 뱃머리에 와 닿을 때만 살짝 깨졌다. 강에 사는 짐승이 이따금 기침을 할 때도 있었다. 고요함의 물결, 물결과 고요함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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