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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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과 끝은 숱한 인생사와 책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 감정은 어떤 사랑이든 비슷하다. 시작엔 설렘이 함께 하고, 끝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강도는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의 환멸이 함께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다룬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었던 여러 권의 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별여행』 같은 책들을 말이다. 이들을 읽으며, 책 속의 사랑이 만들어낸 감정의 곡선을 그려보면, 그 시작과 끝은 비슷한 지점에서 머무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의 형태는 어떠한가? 인생사에서도, 인생을 담은 책 속에서도 너무나 다양해서 딱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 힘든데, 『슬픈 카페의 노래』의 사랑은 유독 기이하다. 6척 장신의 독하디독한 여자, 카페 주인 '미스 어밀리어', 그리고 그의 옛 연인 '마빈 메이시', 어느 날 찾아온 꼽추 '라이먼'. 그들의 사랑에 완전함은 없다. 복잡한 외사랑이다. '미스 어밀리어'는 우연히 만난 '라이먼'을 챙겨주며 사랑하게 되고, '라이먼'은 폭력적이며 당당한 '마빈'의 모습을 보게 된 후 그를 동경한다. '마빈'은 복수심으로 가려져 버린 사랑 (혹은 집착)을 분명히 '어밀리어'를 향해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의 속한다 (50쪽)" 고 했던가. 그들의 기괴하고 일방적인 사랑은, 그 별개의 세계가 만날 틈도 없이 불현듯 찾아왔다가 불현듯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세 가지 사랑은 고통과 파국으로 남는다. 마을의 따뜻한 사랑방과 같은 '카페'라는 공간은 이 모든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사랑의 끝을 처절하게 겪고 나서 문을 걸어 잠근 '미스 어밀리어'의 감정을,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왜 그토록 작고 초라한 꼽추 '라이먼'에게 사랑을 느꼈는지, '라이먼'은 그녀의 사랑을 알지 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척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이지 않은가. 작가는 덧붙인다. "표면에 드러난 사랑 이야기는 서글프고 우스꽝스러울지언정,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사랑하는 사람, 그 당사자의 영혼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 외에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65쪽)" 고. 우리는 가끔 누군가의 사랑에 자의 혹은 타의로 관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뭐라 하든, 당사자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온 우주이며, 당사자가 하는 선택을 적극적으로 막기도 힘들다. 그러니 사랑의 선택, 사랑의 고통은 모두 당사자의 것이다. '미스 어밀리어'의 사랑 때문에, 마을 공동체의 소중한 공간이 황량해질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22쪽,

미스 어밀리어의 술에는 무언가 아주 특별한 게 있었다. 혀 끝에서는 정갈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내고, 일단 배 속으로 들어가면 화끈한 기운이 오랫동안 몸을 훈훈하게 녹이는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백지 위에 레몬 즙으로 메시지를 쓰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종이를 잠시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글씨가 갈색으로 변해 그 내용을 분명히 알아볼 수가 있다. 위스키가 바로 그 불이고, 메시지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쓰인 글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어밀리어가 만든 술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심히 흘려버렸던 일들, 마음속 깊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 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이해가 되는 것이다.



45쪽,

그녀는 마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고통, 당혹감, 그러면서도 불확실한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평상시처럼 그렇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도 않았고, 종종 침을 삼키기도 했다. 피부는 창백해진 듯했고,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큰 손에서는 진땀이 나는 듯했다. 그날 밤 그녀의 표정은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 눈은 피안을 향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50쪽,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65쪽,

이렇게 표면에 드러난 사랑 이야기는 서글프고 우스꽝스러울지언정,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사랑하는 사람, 그 당사자의 영혼만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 외에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105쪽,

그들은 미스 어밀리어의 카페에 오기 전에 세수를 했고 카페에 들어올 때는 정중하게 문지방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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