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코의 발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 스토리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나서

 

 일본소설과 친하지 않은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된 건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에서였습니다. 백화점 구두 매장 안에서, 여성 손님의 발에 구두를 신겨주고 있는 남성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을 생각했다는 작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님의 발의 극적인 굴곡의 하이힐을 신겨주는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을 만지는 게 좋은가요? 물어보고 싶다. 싫어도 어쩔 수 없죠. 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네, 난 여성의 발을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면 뭐라고 말할까?" (84쪽)

 

 

 책 속에는 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탐미주의(耽美主義 : 유미주의라고도 부릅니다)의 거장이라 알려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 그리고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한다는 '다야마 가타이'의 『소녀병』입니다. 먼저, 『후미코의 발』은 젊은 화가 지망생 '우노'가, 노인 '인쿄'와 그의 첩 '후미코'를 관찰하며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서술 속에서, 제가 처음으로 만나보는 낯선 시선이 등장하지요. 화자인 '우노'가 '인쿄'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후미코'를 발견하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그 여자 자체에 매료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모든 것들을 지나치게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지요. '후미코'의 실루엣, 정취, 눈, 코, 입, 속눈썹, 자세에서 나오는 그녀의 기분까지 샅샅이 훑어갑니다. 그렇게 그녀를 관찰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지요. 노인이자 남편인 '인쿄'의 시선 또한 자신과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남자로 태어나 살기보다는, 이렇듯 아름다운 뒤꿈치가 되어 후미코의 발 뒤에 붙을 수 있다면 그쪽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미코의 발뒤꿈치에 밟히는 다다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생명과 후미코의 발뒤꿈치 중 이 세상에서 어느 쪽이 더 존귀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일언지하에 후자 쪽이 존귀하다고 대답할 겁니다. 후미코의 뒤꿈치를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45쪽, 후미코의 발)

 

 

 그들의 '후미코'를 바라보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끈질긴 숭배입니다. 정신학적 용어로 '페티쉬'(성적 페티시즘)이죠. 그녀의 발에 밟히며 죽고 싶다는 두 남자의 병폐를, '뿌리깊은 성정性情'을, 그 에로틱한 바라봄을 작가는 강한 인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 한 부분에, 성적으로 지배당하며 고백하며 서술하는 글이, 누군가를 발가벗기는 듯한 불쾌함까지 느끼게 할 정도인데, 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이 '악마주의'라고까지 불리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무서운 점은 이 작품이 1919년에 쓰였다는 사실이지요.

 

 

 그다음에 등장하는 『소녀병 少女病』은 전의 이야기와 비슷한 듯 다릅니다. 전차 안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신체시를 쓰는 '스기다'. 그의 탐미 대상은 '소녀'이며 『후미코의 발』과 마찬가지로 숭배의 시선을 보내지만, 속까지 훑어내는 그 시선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인 '소녀'를 단지, 감상적으로만 그려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속되고 너저분한 세상에 저렇게 고운 처녀가 있을까"하는 그의 독백에서도 드러나듯이, 작가는 혹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그의 시선을 미화합니다. 그 시선 속에는 청춘에 대한 갈망, 나이듦에 대한 호젓함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은교』도 떠오르더군요.

 

 

 작가가 다른 이 작품을 2편만 묶은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두 작품에 비슷한 면모가 있긴 하더라도, 연관되는 다른 작품들과 묶어 조금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읽어보니 두 작품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묘사와 여운은 무척이나 커서 두 작품 다 큰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비슷한 시선을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선상에서 충돌하지 않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좋은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Written by. 리니

일본 소설/ 단편 소설집/ 탐미주의, 자연주의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여자는 그 빈집에 올라가려고 툇마루에 앉아 진흙으로 더러워진 오른발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상반신을 획 왼쪽으로 기울여 거의 쓰러질 듯 비스듬히 된 몸체를 가느다란 한 팔로 겨우 지탱하며, 왼발의 발톱 끝으로 살포시 땅을 밟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자` 형태로 구부려 오른 손으로 그 발바닥을 닦고 있는 자세, 그 자세는 옛날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가 여자의 매끄러운 몸매 변화에 얼마나 예민한 관찰을 했으며, 얼마만큼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증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감탄한 것은 여자의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손발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그저 쓸데없이 구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민한 힘의 균형이 전신에 가늘게 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30쪽, 후미코의 발)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선생님께서는 대강 아셨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인이 수양버들처럼 팔다리를 느슨히 풀고 멍청히 멈춰 서 있거나 흐트러져 잠든 모습도 정취가 있습니다만, 이 그림처럼 전신을 굽이굽이 완만하게 구부리며 채찍처럼 탄력성을 표현해야 할 곳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린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는 `유연함`과 동시에 `강직함`이 있으며, `긴장감` 속에 `섬세함`이 있으며, `움직임`의 이면에 `우약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쥐어짜며 목구멍이 찢어져라 쉴새없이 지저귀는 꾀꼬리의 필사적인 귀여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33쪽, 후미코의 발)

어쨌든 재미있지 않나? 스스로도 건전하다고 자처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인정받던 사람이 지금 와서는 불건전도 이만저만이 아니니 말이야. 퇴폐의 표본으로 전락한 것은 본능을 업신여겼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내가 항시 본능 만능설에 사로잡혀 있다고 공격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무시할 수 없는 거라구. 본능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어. (79쪽, 소녀병)

`서풍에 휘날리는 누런 먼지…… 외롭다. 외롭다. 왠지 오늘은 더욱 외롭고 괴롭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 향기가 그립다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또 사랑 할 수 있다 한들 아름다운 새를 유혹할 수 있는 날개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87쪽, 소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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