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애도일기』 롤랑 바르트 / 이순

슬픔이라 하기에도 모자란

 

 

 

 

  책을 읽고 나서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는 슬픔이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슬픔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라며, 세상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일 것 같다. 물론, 나는 그것을 아직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놓여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죽음으로 떠난 적도 없거니와, 나와 직접 관계하던 이가 떠나간 적도 없다. 그리고 이전의 수많은 죽음 - 편찮으셔서 돌아가셨다는 외할아버지의 경우- 도 내가 아주 어릴 때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는 행운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두려움은 너무나 크다. 이런 두려움은 절대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롤랑의 마망(엄마)이 그의 곁에서 떠나간 뒤 날짜와 함께 써 내려간 이 기록은 어떤 수정도 거치지 않은 아주 날 것의 글로 보인다. 제목에 붙여진 '일기'처럼 각각의 순간마다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들을 그대로 적어낸 글은 너무나 솔직해서 애달프다. 이 책, 『애도일기』를 중심으로, 롤랑은 다른 작품들에 애도와 스스로에 대한 위안을 쏟으며 글쓰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에게 문학은, 책 속에서도 언급했듯,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어떤 효과가 있다고 깊게 믿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가장 순수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치료제라는 것이다. 헤세는 정신적 고통을 위해 수많은 소설에 자신을 투영하며 글을 썼고, 하루키는 상실의 아픔을 자신의 펜촉에 그대로 녹여놓았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의 자전적 작품에서도 이러한 것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롤랑은, 이 글쓰기로부터 치유를 얻을 수 있었을까 물어본다면, 확실히 대답할 수가 없다. 자신을 파괴하는 모든 것 중에서도,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과 그것을 잊고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떤 일보다 절절하고 애달픈 것이기 때문이다. (아, 갑자기 세월호가 떠오른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 

 

 슬픔의 정도에 대하여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크나큰 슬픔을 잊으려는 몸부림이 어떤 의미라고 규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풀어낸, 롤랑을 괴롭히던 생각들 - 좌절감, 허탈감, 무미건조함, 우울함, 그리고 마망의 죽음 후 자신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회의감 - 은 결국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으로 치환되어 다가왔다. "내 슬픔은 사랑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그리고 생생하고 집요한 '애도'의 기록이 결국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혹은, 그토록 간절한 사랑의 절규를 보는 이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에세이/ 애도 시/ 삶과 죽음, 그리고 슬픔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20쪽)

…… 그녀는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이 사실은 무얼 말하는 걸까. 그건 내가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 미친 것처럼, 정신이 다 나가버릴 정도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건, 그 불안으로부터 한 발짝도 비켜날 수 없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31쪽)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 그런데 그 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62쪽)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마망에 대한 기억이 나와 그녀를 알았던 이들이 죽은 뒤에도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가 죽은 뒤에도 기억되어 차갑고도 위선적인 역사의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남게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나 혼자서만 "기념비"가 되고 싶지는 않다. (204쪽)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 (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23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