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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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 열화당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기억창고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거닐었던 모든 공간과 우리가 만지던 모든 사물은 깊이가 불분명한 기억의 항아리처럼 존재한다. 누군가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곳에, 나의 기억도 살포시 얹어 놓고, 그 흔적들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것을 여는 순간, 다음에 거쳐 가는 사람들의 생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나에게는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동네 거리가 그렇고,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사물들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책들이 그렇다. 나는 실제로 중고 책에서 꽤 의미 있는, 누군가의 생의 기록을 발견한 적이 있다. 내게도 인생의 책이 돼버린 한국 작가의 소설 맨 앞 페이지에서, 누군가가 또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사는 게 별거냐, 잘 먹고 잘 웃고 잘 살자."라는 메시지는 가볍게 던지는 말 한마디였지만, 꾹꾹 볼펜으로 눌러 쓴 글씨에 생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흠뻑 담고 있어, 그 책을 다시 누군가에게 선물한 지금의 나에게도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리스본, 제네바, 크라쿠프…… 그리고 마드리드까지의 여정을 담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기억과 흔적에 관한 책이다. 분야는 소설이지만 에세이로도 읽힌다. 중간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이라는 한 묶음의 글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장르를 다시 확인하게 하고 앞표지를 왔다 갔다 하게 한다. 하지만 의심은 뒤로하고 그저 읽어본다. 작가는 소설 속에 투영되어 또 다른 ‘존’의 모습으로 길을 걷고, 서로 다른 매력을 뿜고 있는 도시의 장면들을 관찰하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 까마득한 옛날에나 존재했을 선사시대의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 대화와 서술 속에 작가가 사랑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한 꺼풀씩 드러난다.

 

 

,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줄 수는 없어. 물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그래서 시간은 중요하지 않고 장소는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 이건 그냥 아무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란다. 이제 전차가 다니는 도시는 많지 않잖니. 여기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밤에 몇 시간만 빼고. (16)

 

 

 그들을 만나 ‘존’은 묻는다. 가장 사소한 질문부터, 다소 무거운 질문까지. 그들을 자신과 연결해주는 특별한 이 공간 속에서, ‘존’은 자신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헤아릴 수 없는 생(生)들을 느낀다. 잊어버린 순수함, 소중한 기억, 누군가의 에피소드, 한 번쯤은 귀에 들어왔었던 익숙한 소리를.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죽은 자들의 것이지만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들을 통해, 어둠 속의 얇디얇은 희망을 배운다. 선을 긋는 인생의 문제, 수많은 사람의 얽히고 얽힌, 굵고 얇은 선들을 피해 나만의 색깔로 빛나는 한 획을 그어 나가기 위한 희망 말이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입 베어 물던 신선한 과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몇 토막의 글은 짧지만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뒤이어 그 과일들은, 낡디낡은 어떤 사물이 되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사건을 떠올리는 매개체가 된다. 나의 모든 오감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기억 창고가 된다. 소설의 끝, 누군가의 입을 빌려 "네가 찾아낸 것만을 쓰렴"이라고 답하는 장면까지의 여정은 분명 작가가 소유하는 기억이지만, 어떤 통로를 거쳐 나에게로 들어온다. 누군가의 인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찌릿한 감정을 선물해준다는 생각과 함께.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기억과 공간, 흔적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하얀 나비 두 마리가 어머니 머리 위를 맴돌았다. 이만한 높이의 수도교 위에는 나비가 꼬일 만한 게 별로 없으니 어머니를 따라 온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은 탄생이라 생각하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게 일반적인 오류지.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도 그 함정에 빠졌구나!

그러니까 모든 게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말씀이세요?

바로 그거야. 그리고 탄생이 뒤를 따랐어. 탄생이 일어난 건 - 그게 탄생이 있는 이유인데 - 더도 덜도 아닌 처음에, 그러니까 죽음이 있은 후에, 손상된 것들을 고칠 기회를 제공받았기 때문이야. 그게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란다. 존. 고치려고.

하지만 진짜로 여기에 계신 건 아니잖아요?

너는 어쩌면 그렇게 멍청할 수 있니? 우리 - 우리 말이야 - 우리는 모두 여기 있는 거야. 너나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처럼. 너희와 우리, 우리는 망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고치기 위해 여기 있는 거란다. 우리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그거야.

생겨났다고요?

존재하게 됐다고.

아무도 뭔가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뭐든 원하는 대로 선택하렴. 네가 할 수 없는 건 모든 것을 희망하는 거야. (59쪽)


책을 돌려줄 때면 그와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가 긴 인생을 살아오며 읽은 것을 그만큼 나도 더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책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한 책이 다른 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도 많았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을 읽은 후엔 『카탈로니아 찬가』가 읽고 싶어졌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려준 사람도 켄이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지. 그가 말했다. 그 상처를 지혈시킬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지혈`이라는 말을 직접 듣기로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술집에서 당구를 치던 중이었다. 당구봉에 초크 바르는 거 잊지마.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94쪽)

내가 글쓰기를 처음 배운 건 지금 마드리드 리츠 호텔 라운지에 앉아 파슬리로 장식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타일러 선생님의 녹색 오두막에서였다. 글자를 그리는 법은 유치원에서 이미 배운 후였다. A부터 Z까지 전부. 그 글자들은 사마귀나 모반이나 가짜 점처럼, 내가 좋아했던 릴리 선생님의 날렵하고 예쁘고 둥글둥글한 몸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린헛에 간 첫날 타일러 선생님이 지적했듯이, 글자를 그리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달랐다. 글쓰기에는 철자법, 직선, 띄어쓰기, 적당한 기울기, 여백, 크기, 가독성, 펜촉을 깔끔하게 다듬는 것, 잉크가 절대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연습장마다 예법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150쪽)



우리를 한데 묶어준 건 뭐였을까? 피상적으로 볼 때는 호기심이었다. 우리는 나이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이 어떻게 감춰 볼 도리 없이 달랐다. 우리 사이에는 처음으로 하는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를 한데 묶어준 건 같은 슬픔에 대한 말 없는 이해였다. 자기 연민은 없었다. 내게서 그런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그녀는 그걸 뿌리채 뽑아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앞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확신을 사랑했고, 그것과 자기 연민은 양립할 수 없었다. 보름달을 보고 미친듯이 짖어대는 개의 울부짖음 같은 슬픔.

이유는 달랐지만 우리 둘은 희망을 품고 살기 위해선 스타일이 필요불가결하며, 사람이란 희망을 가지고 살거나 아니면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중간이란 없었다.

스타일? 어떤 가벼움. 어떤 행동이나 반응을 배제시키는 부끄러움. 어떤 우아한 제안.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멜로디를 기대할 수 있으며, 때로는 찾을 수도 있으리라는 가정. 하지만 스타일은 희박하다. 그것은 안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찾아 나선다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타일과 패션이 같은 꿈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그 둘은 서로 다르게 창조된다. 스타일은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그것이 인고의 기질과 세월을 대하는 무던한 자세를 요구하고 키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스타일은 음악과 매우 흡사하다.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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