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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평점 :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희미한 출구를 찾아가는 하루키의 여정
▒ 책을 읽고 나서.
생각만 해도 얼굴이 발개질 정도로 창피한 일이 있었던 날, 별것도 아닌데 눈물이 죽죽 흘러서 끅끅대며 울었던 날, 허공에 붕붕 떠 있는 듯 상실감을 느꼈던 날. 언젠가 그날의 축 처진 기분은 어떻게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지나고 나면 괜찮겠지"하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정말로 그 기억들이 꿈처럼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물론 조각조각 깨어진 기억들은 아직도 머릿속에 존재하지만, 그 존재가 무시무시하게 모나고 뾰족하지는 않게, 두루 뭉실하게 떠다니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아직은 젊으니 (젊...젊은 거겠지.) 그런 일들이, 사건들이 젊을 때의 방황과 어리숙한 감정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답답함이 지금은 조금 흐려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하루키가 말한 '입구'와 '출구'의 경로를 시간을 통해 차츰차츰 다듬어 통과한 것일까. 나의 '입구'와 '출구'는 어떻게 이어져 있었을까.
『1973년의 핀볼』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견뎌내고, 기가 막힐 정도로 평범하지만 독특한 일상을 헤매고 있었던 이야기다. 마치 과거를 절대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듯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 존재와 이름 따위가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쌍둥이 자매,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곳 '제이스 바',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게 하는 '나오코'의 존재까지. 어딘가 모호한 이야기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자리를 깊게 새겨놓고 있다. "모든 사물에는 반드시 입구와 출구가 있어야" 했고, 모든 일에도 입구와 출구가 있어야 했지만, 주인공은 오로지 핀볼에만 집착한 채 도돌이표 같은 일상을 걷고 있었다. 그는 황홀했던 '핀볼과의 짧은 밀월 기간'을 뒤로 한 채 출구이자 '끝'을 찾아 나서야 했다. 잊지못할 따스한 추억을 방황하는 과거는 '나의 손으로' 잡아 둔채, 다시 걸어가야 했던 것이다.
당신 탓이 아니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 열심히 노력했잖아.
아니야, 하고 나는 말했다. 왼쪽이 플리퍼, 탭 트랜스퍼, 9번 타깃. 아니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지. 하지만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 있었을 거야.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어. 아마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146p)
그가 집착하고 있었던 핀볼은, 누군가에게는 또다른 물건으로 같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책, 전화기, 향기가 남은 옷, 사진, 앨범, 식물…… 그것들을 통해 무언가의 흔적을 찾는다. 일종의, 조용한 몸부림이며 추적이다. 그러나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법이 단지 이것 뿐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출구를 찾았던 것처럼, 언젠가는 멈추게 될 추적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와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실상 독특한 듯 보이는 이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현재와 미래로 넘어가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감정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어리숙한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적당히' 살아가는 어른 아이의 이야기일지 모르고, 하루키 자신이 겪었던 젊은 시절의 방황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허무를 견딘 채 살아간다. 과거와 현재, 미래 어디선가 출구를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여담으로, 많은 사람이 느끼겠지만 『1973년의 핀볼』은 다른 하루키의 장편소설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작점과도 같은 작품이다. 다른 초기작들과 더불어……
어딘가 뭉뚱그려진 이야기가, 걸러지지 않은 잔잔한 이야기의 색다른 느낌이 좋다.
당신이 핀볼 기계 앞으로 계속 고독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자동차 전용 극장에서 여자 친구와 <진정한 용기>를 보면서 진한 애무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 곳에도 데려가지 않는다. 재시합 불을 켤 뿐이다. 재시합, 재시합, 재시합......, 마치 핀볼 게임 그 자체가 어떤 영겁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영겁성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걸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추측할 수는 있다. 핀볼의 목적은 자기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변혁에 있다. 에고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에 있다. 분석이 아니라 포괄에 있다. (40p)
한 계절이 문을 열고 사라지고 또 한 계절이 다른 문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황급히 문을 열고 이봐, 잠깐 기다려, 할 얘기가 하나 있었는데 깜빡 잊었어, 하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문을 닫는다. 방 안에는 벌써 또 하나의 계절이 의자에 앉아서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 잊어버린 말이 있다면 내가 들어줄게, 잘하면 전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그는 말한다. 아니, 괜찮아, 별로 대수로운 건 아니야, 하고 사람은 말한다. 바람 소리만이 주위를 뒤덮는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계절이 죽었을 뿐이다. (53p)
등대에 도착하면 쥐는 제방 끝에 앉아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에는 붓으로 그은 것 같은 가느다란 구름이 몇줄기 흐르고, 사방은 온통 푸른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푸른색은 끝없이 깊었고, 그 깊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년의 다리를 떨게 만들었다. 그것은 외경과도 비슷한 떨림이었다. 바다 내음도 바람의 색깔도 모든 것이 놀랄 만큼 선명했다. 그는 시간을 들여 주위의 풍경에 조금씩 마음이 익숙해지게 하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깊은 바다로 인해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그 자신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하얀 모래밭과 방파제, 푸른 소나무 숲이 짓눌린 것처럼 낮게 퍼져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검푸른 산들이 하늘을 향해서 우뚝 솟아 있었다. (71p)
어느 날 무엇인가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뭐든 좋다, 사소한 것이다. 장미 꽃송이, 잃어버린 모자, 어릴 때 마음에 들어하던 스웨터, 오래된 진 피트니의 레코드....... 이미 어디로도 갈 곳 없는 하찮은 것들이다. 이틀이나 사흘 정도 그 무엇인가는 우리의 마음을 방황하다가 본래의 장소로 되돌아간다...... 암흑. 우리의 마음에는 우물이 여러 개 파여 있다. 그리고 그 우물 위를 새가 지나간다. (1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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