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그래피 매거진 6 고은 - 고은 편 - 우주의 사투리,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은이) | 스리체어스 | 2015-10-06 

 

 

 남겨진 생각들  

 

  독서 리뷰를 쓸 때 보통 부제는 내가 생각하는 것으로 느낌 그대로 새로 정하곤 하지만,『바이오그래피 매거진』 리뷰를 쓸 땐 책에 딸린 부제를 그대로 쓴다. 그보다 절묘한 문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호 '고은'의 부제는 '우주의 사투리'다. 우주의 사투리라니! 생전 듣도보도못한 조합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고은'이라는 이름에 붙인다면 이보다 절묘할 수가 없다. 단지 책 속에서는 이 부제를 잘 찾을 수 없음에 아쉽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뜨는데…… 군더더기 없는 표지에 부제까지 붙는다면 조금은 욕심일까 싶지만, 이 멋진 부제들은 숨어있기에 꽤 아까운 생각이 든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호의 주인공 '고은'에 대해서는 역시나 '잘' 알지는 못한다. 시집 한 두권을 읽어본 게 전부고, 노벨상 수상자를 가리기 위해 일년마다 돌아오는 그 기간 불쑥 그 이름이 들어오곤 하는 정도였다. 그의 시집 ​『허공』은 문학, 특히 시에 익숙하지 않을 때 단순히 그가 궁금해서 낯선 기분으로 읽어보았고, 생각보다 거친 시어들의 반복에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순간의 꽃』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시집과는 다르게 제목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시들이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그 두권만으로 '고은'의 시 세계를 만끽하기란 부족했다.

 

 

 

나는 어제보다 더 어리고 어제보다 더 독야청청하다. 나는 살아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 내 유골도 시를 쓸 것이다. (103쪽, IN-DEPTH STORY)​

 

 '고은'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학 보다도 단순히 '사람' 차원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판부터 편집자님의 서문에 푹 빠지고, 그가 가장 애송하는 시라는 <최근의 일기>는 가슴을 쿵쿵 울리고 있었다. "서서 / 소리칠 수 없으면 / 누워서 / 소리칠 것 // 죽어서 소리칠 것". 아, 아마도 이 때부터 감동의 시작이었다.

 

 

 ​승려가 되어 불교 신문을 창간하고, 환속하여 문단에서 수많은 시를 남기며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큰 획을 그어나간 '고은' 시인.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며,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해외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그 중 '황금화관상'의 역대수상자들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대중들의 의견을 정리한 페이지에서도 '노벨 문학상'은 빠짐없이 거론된다. 한국어의 번역 문제, 문학상의 가치 문제, 다양한 얘기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문학이 꼭 상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그의 일대기는 참 파란만장하다. 일제강점기, 전쟁, 피난으로 죽음과 허무로 가득찬 삶이었다. 승려가 되고 난 후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귀에 청산가리를 들이부어 왼쪽 고막이 녹았다. 여러번 포기하고 싶은 삶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놓지 않았다. 자살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어느 순간 전태일의 죽음을 생각했을 때,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도 질곡의 역사였지만, '고은'은 시에 시대를 담기 시작했다.

​돌아눕기도 어려운 좁아터진 방에서 고은은 죽음을 체험했다. 깜깜한 방 안에선 현재가 없었다. 오늘과 내일이 없고 남은 건 어제뿐이었다. 시골 머슴부터 동네 아낙까지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일평생 만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시로 그리겠다. 이런 다짐만이 시련을 견디는 힘이 되어 주었다. (59쪽, BIOGRAPHY 중에서)

 

  실제 1933년의 출생기록 이전의 먼 옛날부터 1847년까지에 쓰여있는 이력이 돋보인다.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은의 전생을 상상한 부분이 재미있고 독특하다. 아마도 먼 옛날에도, 그는 시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언어를 제멋대로 굴려, 사투리로 만들어.

 

 

 문학인을 다루는 만큼, 중반부에는 여러 편의 시를 수록해놓았다. 흑백의 페이지에 나열된 '고은'의 시는 'Poetry'라는 글씨를 채운 세찬 파도처럼 고요함 속에 우렁차게 메아리 친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는 한 편의 문학을 보는 것 같았다. 왕성한 창작력에 대한 물음에 그는 "신명이 나를 내달리게 하고, 내 마음 속엔 춤이 차 있어 몸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 '신명'에 대해 "나는 울음도 길었고 글도 길어요"라고 말한다. 숨쉬듯 시를 쓰는 것이고, 백지는 종교이고, 식욕이고, 성욕이라 한다. 그대로 배껴 여기에 데려오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말들을, 우주의 사투리를 제멋대로 펼치는 '고은 시인'이다.

 ​나는 시가 나에게 오고 내가 오는 시를 마중 나가서 함께 날 저문 귀로로 돌아옵니다. 임신한 아낙처럼, 부상당한 전사처럼, 목마른 혼백처럼. 그것이 내 시의 밤이 되는 거예요. 나는 천체물리학과 입자물리학에 사로잡혀요. 그 첨단 과학이야말로 나의 샤머니즘이니까. (128쪽, IN-DEPTH STORY)

 ​ 더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가 읽히지 않은 시대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선사 조상들의 언어 이전의 언어인 '아!라던가 '오!'라던가 하는 그 경이와 공포 속의 발신 행위 자체가 이미 인간의 시입니다. 인류사는 시의 역사이기도 해요. (...) 그동안 시는 너무 많이 세상의 감성과 지성을 감당해 왔어요. 이제 좀 쉬게 해도 됩니다.' (128쪽,  IN-DEPTH STORY)

 하지만 나는 뒤늦은 지금, 그의 시를 읽으려고 한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을 만나고선 그의 시집을 꺼내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집 38권, 역대 가장 과감하고 놀라운 기획 '만인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조각난 파편들을, 그 속에 품은 벅차오르는 감정과 순간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밖에 없기에, 그의 시를 더 읽어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상의 아쉬움을 말하는 건 그 다음이다.

 

 
 
Written by. 리니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지만, 리뷰는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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