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움의 왕과 여왕들
대니얼 월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로움의 왕과 여왕들』 다니엘 월러스 / 책읽는수요일

특유의 분위기는 오직 그의 것

 

 

 

  책을 읽고 나서

 

 작가 '다니엘 월러스'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바로, 팀 버튼이 영화화한 <빅 피쉬>의 원작자이죠. (우리나라에는 『큰 물고기』라는 제목으로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현재는 절판되었습니다) 팀 버튼의 환상적인 영상이 워낙 훌륭하긴 하지만, 그에게 영감을 준 '다니엘 월러스'가 책 속에서 그려내는 영상미 또한 아름답습니다. 이야기에 내포된 의미는 따뜻하고요. 작가의 삶의 방침인 양, 글에서도 '유머'의 중요함을 놓치지 않고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작가였습니다. 그래서, 신작 『로움의 왕과 여왕들』을 만났을 때, 기대와 걱정의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날 때 당연하게 드는 감정이죠.

 

요만큼의 차이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 다른 삶, 완전히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지. (315쪽) 

 

 『로움의 왕과 여왕들』은 '로움'이라는 도시의 흥망성쇠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건설된 지 고작 백 년밖에 안 된 '로움'이라는 도시에는 마치 고대 국가의 경이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지요. 한때 흥했지만, 지금은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이 살고 있으며, 협곡과 산으로 둘러싸여 외진 곳에 있습니다. 그중 작가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창시자의 자손인 '매컬리스터' 자매입니다. 헬렌과 레이철,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단둘이 사는 두 소녀가 헤쳐나가야 할 인생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헬렌은 외모가 부족해 항상 자신감이 결핍되어 있고, 레이철은 두 눈이 보이지 않아 자기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레이철을 돌봐야 하는 언니 헬렌은 결국 둘의 인생을 바꿀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지요.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고, 그녀는 동생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상한 세상을 보여주죠. '너는 흉측해, 그리고 세상은 끔찍해.' 이런 식으로 말이죠. 언니가 말한 세상을 그대로 믿게 된 '레이철', 두 소녀가 작은 다툼으로 인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떨어지게 된 순간, 예상치 못한 인생의 길이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다니엘 월러스'는 글 속에 아름다운 영상미를 아주 잘 표현하는 작가입니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을 꼭 영화화하겠어!'하는 다짐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글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 책이 그렇습니다. 각각의 씬들이 독립적이지만 부드럽게 이어져 있고,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때의 장면 전환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죠. 또한, 마법 같은 도시, 비밀스러운 숲, 유령들의 대화, 파란만장한 도시의 역사가 정말 실감 나게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판타지'장르에서 아주 매혹적입니다. 동화적인 느낌도 강합니다.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룰 땐, 영화 <겨울왕국>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영상이 떠오른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유머는 그의 글에서 당연히 등장해야겠죠. 단순한 장면들에도, 작가는 재치있게 표현합니다. 이런 식이죠.

 

 죽음은 (그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침대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다) 그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팡은 이제 '시끄러워'졌다. 낮이고 밤이고 별것도 아닌 일로 낄낄거렸다. (…) 처음에 딕비는 그가 진짜 팡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환영이 아버지 친구의 탈을 빼앗아 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곧 딕비는 옛사람들이 전부 다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세에서는 살아생전에 연기한 것과 다른 배역을 맡게 되는 것 같았다. (54쪽)

 

얼굴은 세월에 얼룩지고 비바람에 깎여 마치 돌산의 옆면 같았다. 두 뺨에는 심하게 골이 패어 있었다. 딕비는 그의 주름진 피부를 떼어내면 그 안에서 굴을 파는 동물이 나오거나 식물이 자라지 않을까 생각했다. 눈은 움푹 들어가 머리에 커다란 동굴 두 개가 뚫려 있는 듯했다. 턱수염은 숲과 같았다. 딕비가 그 안에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의 수염은 그렇게 컸다. 사람 자체도 그렇게 컸다.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133쪽)

 

 환상적인 이야기이기에, 분위기가 좀 묘하다 싶었더니 작가가 '마술적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이야기와,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 또한 살짝 있지만, 논의될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배경 아래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둡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마다 나의 삶을 조금씩 훔쳐가고 있다면?" 하는 물음과 함께 용서와 사랑에 관한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조각 조각을 살펴보면 작가가 조금 욕심을 부린듯한 느낌도 있지만, 환상적인 영상미와 동화적 분위기, 그리고 유머까지 녹아든 글의 분위기는 오직 '다니엘 월러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Written by. 리니

영미소설/ 환상소설, 동화/ 빅피쉬, 팀 버튼/ 상상력, 마술적 사실주의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비단 덕분에 엘리야는 큰 부자가 되었고 역대 부자들이 그랬듯 그 역시 남자 혼자 살기엔 지나칠 정도로 큰 집을 지었다. 그 집은 우아하고 장엄했으며 부조리했다. 그런 집은 어느 곳에서든 부조리했을 테지만 외딴곳에 만들어놓은 로움 같은 도시에서는 굉장하리만치, 비현실적일 정도로 부조리했다. 한 번 보려면 두 번 봐야할 만큼 거대할 뿐 아니라 무자비하게 아름답기도 했다. 운 좋게 야망을 배출할 통로를 찾은 어느 미치광이의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징표일 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집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집이 모든 것을,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삼키는 꿈을 꾸었다. (111쪽)

헬렌 자신도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전부 다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의 창조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복잡성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세상은 여러가지 면에서 너무도 신비로웠고, 바로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은 그 어두운 몽상이 전체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잔인해서라기보다는 (잔인하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온전히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이 그녀를 즐겁게 했다. 그녀는 자신과 레이첼을 위해 세상을 뒤집었고 이제 그 안에서 아름다운 존재는 헬렌 자신뿐이었다. (174쪽)

사실 그런 사람은 많았다. 많은 이들이 고향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떠났다. 이 골짜기로 온 사람들 그리고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그랬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남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곳에 살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그저 우리가 잃어버린 그 모든 유실물과 똑같이 또 하나의 유실물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 가운데 일부는 갖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여기서든 거기서든 행복해지기 위해서, 혹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이를테면, `여기에 무언가가 있다면 저기에도 무언가가 있을 거야. 여기에는 살아봤으니까 이제 저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자.` 이런 생각을 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애초에 사람들이 이 골짜기로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누구든 어디로든 바로 그런 이유로 가는 것이다.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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