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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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 열린책들

자신의 삶에 우위를 가지는 방법

 

 

 

  책을 읽고 나서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고 읽힌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에도 이 책의 제목은 간혹 내 귀에 들려왔다. 학교에서 준비했던 논술 시간에도, 필독 도서 목록에도 가끔 있었다. 사실 얇은 책인 줄 알았다. 청소년에게 권장되는 책들은 비교적 얇은 두께에, 어렵지 않은 도서일 거라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던 어린 나이의 나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 재출간된 이 책은 (열린책들의 작은 판형을 고려해서라도) 꽤 묵직했고, “용기와 신념의 이야기”라는 추상적인 제목으로 어떤 내용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도록, 어떤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먼저, 이 책은 실화 소설이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주 가운데 ‘남부 앨라바마’의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제가 ‘인종 차별’에만 국한된 이야기라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 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보편적인 가치, 꿋꿋한 용기와 신념, 그리고 현대 사회에도 팽배하고 있는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다루고 있다. 

 화자는 ‘스카웃’이라는, 초등학생쯤 되는 어린 소녀다. 그의 입으로 ‘앨라바마’에 위치한 ‘메이콤’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아빠 ‘애티커스’, 항상 함께하는 오빠 ‘젬’,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캘퍼니아 아줌마’,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는 형식으로 서술되는데, 그녀의 서술이 단순 초등학생의 생각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것은, 어른이 된 ‘스카웃’이 그녀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그중, 아빠인 ‘애티커스’와 형제들의 대화가 가장 많은 의미를 품고 있으며, 중요하게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대화 속에도 남다른 조언을 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자신만의 소신과 꿋꿋한 신념은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초반에는 큰 역경도 존재할 것이다. 남들과 다른 행동으로 인한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이 때로는 결정을 방해하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남들이 no라고 말할 때 굴하지 않고 yes라고 말할 수 있는 소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강한 힘을 발휘한다.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정지우 작가의 『청춘 인문학』 중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이러한 소신과 신념은 "삶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라는 인물과 '흑인을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애티커스)'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평온한 듯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옳은 일과 나쁜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소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슬픈 일을 보고 울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 어떤 사람에 대하여 보이는 대로만 믿지 않고 이해하려는 마음…… 어쩌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들을, 소설은 이렇듯 흥미로운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학생들에게 권장도서로 제시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유혹에서 남들의 시선이나 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선물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Written by. 리니

영미 소설/ 스테디셀러/ 세계명작 

카페 서평 이벤트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나는 그날 있었던 불행한 일들을 하나하나 아빠께 말씀드렸습니다. 「…… 그리고 선생님 말씀이 아빠가 저를 잘못 가르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린 이제 더 이상 함께 글을 읽을 수 없잖아요. 제발 저를 학교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진심이에요. 아빠.」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끝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등나무 덩굴을 살펴보신 뒤 다시 내게로 걸어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65쪽)

「아빠가 그 사람을 변호하시지 않으면, 오빠랑 저랑 이제 더 아빠 말씀을 안 들어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어째서요?」

「내가 너희들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기 때문이야. 스카웃, 단순히 변호사라는 직업의 성격으로 보면 모든 변호사는 말이다,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기 마련이란다. 내겐 지금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문제에 관해 어쩌면 학교에서 기분 나쁜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위해 한 가지만 약속해주렴.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로써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일이란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149쪽)

아저씨한테는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었습니다. 고의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왜 아저씨는 가장 깊숙이 숨겨 둔 비밀을 우리에게 털어놓고 계신 걸까요? 그래서 그 이유를 여쭤 봤습니다.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저 애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아저씨는 딜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뭐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생각한 것도 아닌데 백인이 흑인에게 안겨 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373쪽)


하지만 그때 나는 상당히 정신이 또렷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머릿속에 조금씩 스며 들어오던 그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 거니까요. 지난 겨울에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밤공기가 더운데도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이런 느낌이 점점 강해지더니 마침내 법정 안의 공기가 마치 2월의 추운 아침과 똑같아졌습니다. 앵무새가 침묵을 지키고, 모디 아줌마네 새집에서 목수들이 망치질을 멈추며, 이웃에 있는 모든 나무문들이 래들리 아저씨네 집의 문처럼 굳게 닫혀 있는 바로 그런 아침 말이지요.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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